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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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임기를 마쳤다. 존재감이 좀 부족했다고 느껴지던 헌법재판소가 일약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커다란 공로가 있는 분이고, 여성이다. 8인의 헌재 재판관 중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 우리나라 최소의 여성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대통령.

 

두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이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둘 다 여성이기에 남성이라면 받지 않아도 될 여러가지 관심을 받은 사람들이고 공인이며, 공인이기에 여성성에 대한 논의에 불씨를 당긴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인 박근혜, 자칭 대한민국과 결혼한 대통령.

여성이기에 여성성에 기반한 상생과 협력,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실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다는 점 등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여성성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여성혐오에 시달리기도 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의 가치관이나 행동이 여성주의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증명하는 테제는 여성험오에 기반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여성성에 기반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걸까?

 

통치행위의 문제가 발생하자, 이제 그 변호를 여성의 나약함이나 여성에 대한 예의로 가리려고 했다. 공적인 업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치부하여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는 행태는 여성주의를 지배자들이 어떻게 전유하고 사유하는지 날것으로 드러낸다. 이러려고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여기에 덧붙여 이래서 여자를 대통령으로 삼으로 안된다는 여성혐오도 판을 친다. 문제는 이러한 언설과 행위가 혐오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탄핵결정을 하던 날. 급하게 나오느라 헤어롤을 머리에 끼고 출근하는 사진이 화제다. 이것이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라고 치켜세우고, 그동안 일 못하는 여성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 비교되기까지 한다. 이정미 재판관의 개인사를 잘 모르고 그 가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일반 여성이 아무리 바쁘다고 출근하면서 헤어롤을 끼고 출근했을때 어떤 시선을 보낼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정말 정열적으로 일하는 여성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자기관리 못하는 칠칠치 못한 여성으로 여길 확율이 더 크다. 여기에 이정미 재판관에 대한 환호에 어떤 불편함이 있다.

 

여성이 사회에서 좀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무언가 공적인 일을 하려고 해도 일에 전념하게 만들어 주는 아내가 집안에 있는 남성에 비해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애들까지 돌봐야 한다면 그 여성의 일은 거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일테다. 때문에 일터에서의 경쟁력이 남성들에게 뒤질 수 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고 남성보다 더 많은 스펙을 가지고도 남성에 비해 번번히 유리천정의 벽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아내부족이 크다는 것이 이책의 주장이다. 여성에게도 자신의 일에 전념하도록 가정을 보좌하고 운영하는 아내를 보장하라!!

 

이 책은 단순하게 아내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심층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대한 가치 문제, 사회에서 행하는 노동과 가정노동의 차별을 통한 여성성에 대한 착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궁극적으로 여성성이 행해야 할 노동인가? 아니면 남성 역시 할 수 았는 노동인데 여성에게 미루고 있는 노동인가? 생래적인 본성은 없다. 인간이 사회화를 거치면서 어떤 노동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다만, 남성은 아내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고 사회는 아내는 여성에게 할당된 자리라고 강요하는 것 뿐이다. 남성이 지배적인 성으로서 이 사회에 자리매김되기 까지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아내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남성을 아내의 자리로 돌려보내라고 얘기하는게 아니다. 아내의 자리는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사회적 시스템과 사회적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시스템인데... 요즘 육아휴가 사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핵심으로 대두된다.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노동의 문제이자 의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에 따르면 최근 유력대선후보들의 공약은 유치원 수준이다. 정희진선생이 육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다는 책을 비판한 칼럼을 한겨레에 실은 적이 있다. 가사와 육아의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는 총론에서 이의가 없지만 각론으로 들어가서 다시 여성의 일로 몰아가면 그것은 기만일 뿐이다. 남성들이 가정으로 회군해야 한다. 그 전에 회군의 명분을 주어라. 근로시간 단축과 가사와 육아노동의 가치화를 이루어야 한다. 누가 명분을 줄 것인가? 그야 권력을 가진 남성이 주어야 한다. 여성의 문제가 왜 남성으로 부터 나오는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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