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덕분에 오늘은 자전거 출근을 하지 못했습니다.
퇴근 전에 지난 몇개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도덕의 정치, 좌파/우파,  아버지의 원리/어머니의 원리  

우선, 도덕의 정치라는 책은,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놓고 분석한 책입니다.
이성적인 해석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정책이나 선거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의 가치가 국가에 투영된 아버지의 원리와 어머니의 원리라는 설명을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인 해석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대중의 반응'에 대해 우리 나라 정치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바람 (風)'이라고 부르지요. ^^  )

제가 보기에 도덕의 정치에서 아버지의 원리/어머니의 원리는 좌파/우파의 원리보다는, 바람구두님 서재의 정치성향 평가에서 제시된 '권위주의 - 자유주의'에 해당하는 구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분석한 미국의 민주당만 하더라도 '좌파'라 볼 수 없지 않나요?   

도덕의 정치의 저자 조지레이 커프가 뒷부분에, 어느 원리가 더 '옳으냐?'에 대해 쓴 부분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저는 그 사람의 전공 분야 - 인지과학 - 로는 힘에 부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부분을 파해치다보면 교육, 가정, 문화..... 를 거쳐 또다시 '인간의 본성' 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우파와 좌파의 문제보다는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권위주의를 싫어합니다. -- 이건 가치판단이나 논리가 아니라 그냥 제 감정입니다. 제가 어떤 행동이나 가치를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없이 강요당하거나 따르는 것이 싫습니다.   
물론, 종교나 가정의 연장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이나 신뢰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런 존경과 신뢰를 담보로 '규제화 된' 표현과 강제는 싫어합니다.

2. 종교와 권위, 자발적 가난,   

마립간님의 종교관을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종교의 권위 - 아버지의 세계관 - 를 인정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선택하신 것처럼 나타납니다. 
마립간님의 종교관이나 초창기에 올리신 독서 이력에 대한 글을 보면, 사고나 관심의 방향이 저와는 거의 반대순서로 섭렵하시는 것 같습니다.  참 흥미롭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성당에 신실하고픈 신자였으나, 지금은 불가지론자, 혹은 다원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의 개념도 어려서는 당연하게 여겼으나, 지금은 그 존재에 대해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굳이 지금 답을 말하라면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업(業)'의 개념이 제게는 더 합리적으로 다가옵니다.

마립간님께서 개신교를 택하신 이유들을 보면, 이성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드는 믿음의 전형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이성적인 분석과 대화가 가능한 경우조차 정말 드물어요.... ) 

마립간님의 글에서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네번째 이유, 즉 배중률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선택을 요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마도 계속 회색지대에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신의 뜻을 인간의 머리로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 하듯,  이 우주와 생명체의 신비를 인간의 머리로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불신하거나, 무조건 믿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 이런, 저는 미적분이나 통계도 잘 이해 못합니다 그려.... ^^  )

'내가 아버지로서 너에게 충분히 너를 위한 유익을 행할 것이다' 라고 하는 아버지 원리의 대전제...
저도 부럽습니다.  받아들이고 의탁하면 그야말로 '천국'일텐데요...  
그래서 전에도 썼듯이 '주의 기도'는 공감합니다. '그 나라가 이루어지소서'
하지만.... 아마 마립간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사도신경' 을 identity로 하는 기독교에는 영영 귀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추신: 마립간님, 십계명의 네번째, 다섯번째 계명이 무엇인지 외운지 하도 오래 되어서 가물가물합니다.
게다가 개신교와 천주교의 번호에 따른 계명이 조금씩 차이가 나서 더욱 헤깔립니다.
(이런 차이는, 원래는 번호가 매겨지지 않은 계명을 10개로 묶으면서 나타난 차이라 생각합니다만..)

3. 제 친구요. 아직도 독신입니다.
그 친구 학생때 같이 노숙자 진료도 하고, 달동네 공부방 어린이도 돌보고 했었는데,
요즘은 정신분석 쪽에 심취해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 중에서도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이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신분석자들끼리도 서로를 분석해주고, 분석 받고 한답니다.  마치 도를 닦는 것 같아요. 
'분석을 마친 사람'이 - 제가 듣기에는 마치 '득도했다'는 것과 비슷하게 들리는데 - 아직 우리 나라에는 없다고 할 정도네요.

'누구는 분석을 마쳐가고 있다더라' 라고 말하던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반박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방이 어질러져서 말끔히 치워놓았는데, 그 방이 다시 어질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더라구요.   ^^;;

어쨌든.... 이 친구, 저도 분석을 받아볼 것을 권하더라구요.
일주일에 두번씩, 서울에 있는 분석가를 만나서 분석받으라구요.
제게 하는 말이, '분석을 받으면, 너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돼.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겐 오히려 이기적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너 자신을 찾는 것일 수도 있어.' 

음... 저도 제 속에 있는 것이 궁금하기는 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제 안에 꽁꽁 눌러놓았던 것들이 드러날 때 도질 아픔이 두렵기도 하구요. 

이런 친구이다보니, 자발적 가난 여부는 이 친구 관심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결혼한다고 배우자 가치관을 따라 갈 사람도 아니지만, '사랑'하게 된다면 혹시....  ^^

4. "맹목적 추종이 아닌 무정한 압박"

노빠들이 노무현을 지지한다면, 
개혁을 이루고 노무현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노무현을 추종하기 보다는
비판과 압력을 넣는 것이 더 도움이 될거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 흐흐. 이 지점도 시민단체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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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9-1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단한 답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과 구두님이 좌파, 우파를 일직선(1차원)에서 평면(2차원)으로 만들었듯이 좌,우파를 정의에 많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내포된 의미가 더 중효하다는 의미에서 좌파를 풀어헤치면 진보(보수에 대비되는), 평등(자유에 대비되는), 자유(권위에 대비되는), 분배(성장에 대비하여), 환경보호(개발에 대비하여)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의미를 찾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원리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미국의 민주당을 공화당에 비해 좌파라고 생각하고, 좌우의 개념은 어떤 나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가을산님의 친구 분은 기회가 되는대로 만나 보고 싶습니다. 남녀로서가 아니라 정신분석때문. 그렇지 않아도 언제가 시간이 되면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마립간 2004-09-1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주기도문은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를 생각하면 논란의 여지 없고, 사도신경은 성경에 없는 것으로 나중에 사람이 만든 것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을 identity로 하는 기독교에는 영영 귀의하지 못할 것 같다.'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어느 부분을 뜻하는 것이가요? (예를 들면 천지창조, 동정녀 마라아, 부활?)

가을산 2004-09-13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사도신경에 관해서......

'사도신경'은 기독교와 이단을 구분하기 위해, 그리고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제정된 기도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신앙고백이지요. 신약시대부터 시작되어 5-6세기까지 손질되어 골격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신앙고백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구교나 신교나 교파에 따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구요,
내용을 보시면..... ( 90년대에 손질되기 전의 가톨릭 버젼입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고성소에 내리시어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이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신을 믿으며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사함과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이중에서 제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까지입니다.
범위를 넓혀 제가 '불가지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전능하신 --- 천지의 창조주' 부분입니다.
하지만, 천지의 창조가 창세기에 기록된 방식으로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창조주를 모독하는 것 같습니다.

수십억년의 이 신비하고 광대한 우주의 생성과 그 역사를 왜 창세기라는 수천년짜리 작은 상자 안에 구겨넣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직된 태도는 오히려 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에서 미래에 해당하는 부분들은 전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부활, 영생 ..... 이것에 매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2. 주기도문

주기도문을 인정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메시지, 인간보다도 더 중시되었던 경직된 교리와 관습을 깨었다는 것, 더 넓은 의미의 사랑과 용서, 희생을 몸소 보이신 삶을 존경하고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주의 기도에서는 어떤 내용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열린 기도입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 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인간적인 한계 앞에서 겸손하게 하느님께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기를, 그리고 악에서 구하기를 청합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교파를 가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기도이고, 용서화 화해,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3. 마립간님을 귀찮게 해드리는 건지도 모르지만, 제가 현재의 교회에 장벽을 느끼는 점들을 털어놓겠습니다.

3.1. 구약 성서를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이 '역사적 사실' 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특히 거부감을 느낍니다.
더구나 이른바 '지식인'이나 '과학을 한 사람들' 까지도 이를 무조건 믿거나, 혹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 천주교에서조차 이런 억지는 쓰지 않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덕에 망신을 톡톡히 당한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개신교에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런 식의 믿음을 추구하는 교파는 미국 남부와 대한민국에서만 번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2. 한 이론 안에 갇히는 경우의 문제점.
성경으로만 보면 이 우주의 생성원리와 목적, 미래의 결론까지가 다 나 있습니다.
성경과 교리 안에서는 이것들이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거의 완벽하게 맞아돌아갑니다.
성경에서 제시되는 대로만 살면 구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 교리의 정당성의 근거로 또다시 그 교리의 경전을 드는, 닫힌 시스템 내에서는 자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이도저도 안되면 '믿음'으로 밀고 나가지요.) 하지만, 닫힌 시스템 안에서 설명이 된다고 그게 옳은 것일까요? (마치 천동설도 꽤 그럴듯하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했듯이..)

저는 한 교리나 사고체계가 진정한 진리가 되려면, 그 교리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인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객관적인 진리는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직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있는 인간들은 무척 드문 것 같습니다.

3.3. '이교(易校)'와 '난교(難敎)'

얼마 전, 종교학과 동양사상을 전공하는 분이 종교를 '이교(易校)'와 '난교(難敎)'로 설명을 했습니다.
'이교'는 쉬운 종교라는 뜻으로, '구원자' 혹은 '선지자'의 이끔으로 구원을 받는 내용이 주가 되는 종교로, 유대고, 기독교, 이슬람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난교'는 어려운 종교라는 뜻으로, 스스로의 사유와 수행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종교로, 불교, 도교가 해당됩니다.

그런데, 구분이 이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각 종교 안에서 이교적인 면을 강조하는 교파와 난교적인 면을 강조하는 교파가 분화가 됩니다.
불교로 치자면, 우리나라의 조계종을 비롯한 선불교는 부처나 경전 자체보다도 '깨달음'을 중시하며, 불교 중에서 난교에 해당합니다. 반면 일본의 불교, - 이런, 교파 이름을 잊어먹었네요 - 는 보살의 재래를 기다리거나, 일정한 경전의 귀절을 열심히 외우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에 중심을 두는 이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선승들의 수도생활은 난교적인 전통을 이어가는 방면,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나 절하는 행위 등은 이교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에서도 이교적인 교파와 난교적인 교파가 있고, 각 교파에서도 또 분화가 되겠지요.
뛰어난 신학자들이 매우 정교한 신학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난교적인 요소이고,
부흥회나, 로사리오 기도 등은 이교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교적인 색채가 강한 교파가 대체로 세의 확장에 유리합니다.
어렵게 도 닦고 고민하는 것보다 구원자 혹은 제시되는 방법을 따르는 것을 통한 구원이 더 대중에 어필하기 때문이지요.
하긴..... 이런 경향은 비단 종교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04-09-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도 신경과 기독교에 관해 몇 가지 설명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 내용이 길어 따로이 쓰겠습니다.

瑚璉 2004-09-1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늦었지만 한 귀절만 독송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일본의 종파는 정토종입니다. 물론 자생적인 것이라기 보다 중국에서 넘어간 것이기는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