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 북플 에디터 어떻게 좀 안 되나. 기능이 너무.... 아니, 기능을 논하기 이전에 완성도가 문제다. 왜 html 모드에서 줄바꿈 수정을 해야만 하냐고.... 25년 전에 만들다 방치한 듯한 에디터를 쓰고 있자니 '응답하라'가 따로 없네. 이렇게 불편해서야 나 같이 끈기 없는 사람은 글쓰기 습관 붙이기 전에 떨어져 나가겠네(몇 번 떨어져 나가긴 했지). 
















📖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인간은 모두 다면적이다, 라는 명제를 취준생과 중견 직장인의 시점에서 시차를 두고 풀어간다. 극적 효과를 노린 후반은 작위적인 맛이 나지만 페이지 터너로 제 몫을 하는 소설. 

열정은 이제 개도 안 준다며, 무상무념 일만 하는 노동자가 되고 보니 스피라링크스 인사팀의 삽질과 애로 사항이 십분 이해되는 한편 삽질은 하면서 문제 해결도 않는 현실 회사엔 한숨이.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가상의 회사만도 못하다니. 현실은 잔인하다. 이젠 '초월'했지만. 지원자나 회사나 면접은 최악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 직장만이 자아실현의 무대는 아니니까. 


    

📖 사장을 죽이고 싶나, 망내인, 나쁜아이들

제목 때문에 손이 안 갈 수 없었다. 표지는 ⟨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같은 일상 미스터리+블랙 코미디 누아르쯤 되려나 했는데 의외로 본격 미스터리다.  

예술-금융-기술 요소를 버무려 근미래의 직업 세계, 이에 얽힌 이해관계를 밀실 살인으로 조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독성도 좋다. 다만 소재에 비해 전개나 트릭은 다소 조잡하다. 내 경우 유치원 때 기억은 거의 없는데 9·11 테러 같은 사건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 사장님의 노심초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가 이름값 하는 ⟨망내인⟩과 ⟨나쁜아이들⟩. 

주젠치 아키히코 저리 가라 하는 장광설에 브루스 웨인, 토니 스타크와 맞먹는 부와 장비빨을 갖추고 BBC 셜록 뺨치는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그의 이름은 스투웨이. 안 그래도 국수 좋아하는데 파 듬뿍 국수 간절해지는 소설 ⟨망내인⟩.

사건의 중심에 아이들이 대놓고 등장하면 읽기 주저된다. 그래서 쯔진천 작품 중 제일 나중에 읽은 ⟨나쁜아이들⟩. 염려가 무색하게 선악의 경계와 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책에 눈을 떼지 못한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다 보면 처음 주저하던 그 감정으로 책장을 덮게 된다.

⟨망내인⟩은 여중생의 죽음이 발단이다. ⟨나쁜아이들⟩은 노부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촉발에는 '나쁜 아이들'이 있다. 나쁜 아이들 너머에는 뻔뻔한 어른들이 있다. 



    













📖 화

끝없는 마트료시카, 형형색색 만화경을 갖고 논 기분. 근데 너무 열심히 가지고 놀다 주화입마에 빠졌달까. 일상의 공상에 기발한 상상력이 덧붙어 환상특급이 되더니 급기야 폭주 기관차가 되어 덮쳐든다. 진 빠져. 


    

📖 I의 비극

어? 호! 아...... 하는 의식의 흐름 속에 크리스티 여사가 ⟨ㅇ의 비극⟩을 쓴 적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 순간. 이거 의도인가?


   

📖 기담 룸

가상 공간 버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말풍선을 살린 편집이 돋보인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만큼 IT 관련 혹은 특수 설정 트릭일까 했는데 아날로그식 전개가 반전이라면 반전. 나름 심오한(그리고 식상한) 내용치고 전개가 상냥한데 작가가 ⟨문장교실⟩의 저자더라. 검정고양이 '스노볼'이 등장하는 청소년 대상 글쓰기 책으로 저자가 초등학교 교사인 까닭인지 설명이 쉽고 친절하다. 작가 성향 어디 안 가나 보다.  



📖 유괴의 날

익숙한 설정을 적절하게 버무려 차린 한 상. 트릭과 반전의 줄타기에 긴박감이 넘치지는 않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동력으로는 충분하다. 정해연 작가 소설을 이 책까지 세 권 봤는데 유괴의 날 > 홍학의 자리 > 못 먹는 남자 순으로 줄을 세워 본다. 
















📖 7시 45분 열차에서의 고백, 낯선 자의 일기(+6시 20분의 남자)

⟨7시 45분 열차의 고백⟩ 저자 후기를 보니 딸 이름이 '오션'인가 본데, 동시에 읽는 ⟨낯선 자의 일기⟩ 에 

-- “잘 지내.” 그는 약간 지친 어조로 말한다. “오션이 아직도 밤에 잘 자지 못하고 깨서.” 아이 탓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스운 이름을 지어줬으니 애가 정신적 상처를 받을 만도 하지.--

라는 대목이 있어서 좀 웃기기도 하고, 정말로 오션이라는 독자가 있으면 상처받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잡스런 생각이 스쳤더랬다. 게다가 35실이 넘도록 부모님과 사는 여자 동성애 시크교도 형사라는 설정이 흔한 것도 아닌데 또? 하며 의아하던 중 살인 플롯 짜는 노파를 확인하니 같은 작가다.    


⟨7시 45분 열차의 고백⟩과 ⟨낯선 자의 일기⟩ 모두 자기만의 속앓이를 '낯선 자'에게, 그리고 '일기'에 털어놓는 공통점이 있다. 도메스틱 스릴러의 공식대로 각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그렇다. ⟨일기⟩의 하빈더 형사의 시니컬한 태도에 35살이나 먹고 형사가 왜 저래 싶다가도 그 냉소를 자신에게 향하면서 자아내는 블랙 유머는 제법 인간적이다. 묘하게 정 가는 캐릭터.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 ⟨리스본행 야간열차⟩ 같은 작품 때문인지 제목에 '열차'가 들어가면 장르 불문 일단 끌린다. ⟨7시 45분 열차의 고백⟩을 읽은 이유도 이 때문. 대단한 서사를 기대한 건 아니어서 킬링타임용으로 잘 읽었는데 '열차'와 관련한 내용, 시각이 들어가는 제목이 헷갈려서 읽은 ⟨6시 20분의 남자⟩에 대한 반동인지도. 이다지도 게으른 서사라니. 새벽 4시 운동, 오전 6시 20분 통근 열차 탑승,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헛다리 007) 주인공만 부지런하다. 영상화하면 볼거리는 많겠다. 


    













📖 천 척의 배

“나는 나이를 먹지 않고 죽지도 않으니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지.” 

나는 나이를 먹고 언젠간 죽을 테니 시간은 중요하지. 그래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해. 


ps. 에우리피데스는 얼마나 뛰어난 시인인지!



📖 이름 없는 여자의 8가지 인생

표현 그대로 격동의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 낸 한 여자의 인생 이야기. 저자 후기에 영감을 받은 사건, 작품을 언급하는데 벤 매킨타이어의 ⟨스파이와 배신자⟩에 눈이 꽂힌다. 영드 ⟨친구라는 이름의 가면⟩이 인상에 깊이 남은 까닭에. 위안부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수요시위가 30년을 넘기고 있다. 표현의, 집회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극우 집회 역시 요란하다. 인권위는 이달 수요시위 보호를 인용하는 결정을 3년 만에 내렸다.

교포 2세가 아닌 한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로 원제는 ⟨8 Lives of a Century-old Trickster⟩다. 'trickster'라는 단어가 맘에 든다. 원문이 궁금하여 전자책 샘플을 받아보았다. 영어권 국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지만, 모국어가 아닌 글로 소설을 쓰고 호평을 받다니 그 재능이 부러울 뿐.



📖 살인자의 건강법

일단 너무 웃긴다. 미친 듯이 웃긴다. 에밀리 노통브가 이토록 현란한 장광설과 만담을 구사하는 작가였나. 저 언변, 저 기개, 저 재치를 내 것으로 삼고 싶네. "원자 기호를 이야기할 때나 쓰"는 상징과 인간 시야에 들어오는 "단편화 작용"인 은유는 제쳐 두고. 욕 같지 않은 욕은 원문이 다 궁금해진다. 언제고 써먹고 싶다. "같잖고 시건방진 둔탱이 같으니!"

십 년도 더 전, ⟨적의 화장법⟩, ⟨오후 네 시⟩를 읽고 아, 재밌다 하면서도 손이 안 가던 작가였는데 오랜만에 초기작을 보고 싶어 집어 든 책이다. 근데 이 작품이 데뷔작이네. 난 왜 ⟨적의 화장법⟩이 먼저인 줄 알았지. 이런 뼈 때리기로 등단했으니 '앙팡테리블'이라 할만했구나.













   



📖 명상 살인

명상 책을 검색하던 중 발견...... 시리즈인데 내용이 대체 뭘까. 살인을 한다는데 정말로 그런다는 건지, 은유인지.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

비요른은 명상천재인가. 인생의 고비마다 명상 기법을 척척 적용하고 극복하다니. 나는 할수록 잡생각만 늘어가고 호흡도 더 안 되던데. 요쉬카 브라이트너 선생의 1시간, 12번의 일대일 명상 코칭 나도 받고 싶구먼.

-- 감정은 폭탄처럼 제거가 가능하다. 명상 실천과 폭탄 제거의 근본적 차이는 폭탄을 제거하는 사람이 작업 중에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시도한 명상이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내일은 성공한다. ---



📖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위원장님은 어떻게 혼자 농성 천막을 지키다 문어(비스무리한 생명체)와 조우했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은 ⟨몰락하는 자⟩를 떠오르게 한다. 시간 강사'였던’ 지인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며 이상한 나라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 이 기세로 종장까지? 하던 즈음 적절한 호흡으로 마무리. 작가님 밀당 잘하시네.        

정보라 작가는 화가 날 때 글을 쓰기 때문에 복수 이야기가 많다고 했던가. 이 책은 복수보단 투쟁의 이야기다. 투쟁. 궁극적으로 우주적 복수 이야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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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방랑자가 되어 버렸다. 노션도 데이터베이스 생성하기 귀찮아서 간편 독서앱으로 갈아타 버렸다. 그래도 쓰기 플랫폼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뭉그적대다 어느덧 2025년도 상반기가 지나고 있다. 태초부터 쓴 이곳에도 흔적을 남겨볼까. 2025년 상반기 무차별, 간략한, 임의의 기록. 기억 휘발 주의.
















📖 트러스트

직전에 읽은 ⟨하우스메이드⟩에 '빌헬미나'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여기는 '윌헬미나'가 등장한다. 그리고 문제의 '앤드루'도. 별것 아닌 우연인데 괜시리 ㅇ_ㅇ 이런 표정이 된다.

월가의 거물 앤드루 베벨과 그의 아내 밀드레드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화자의, 다른 시점에서 펼쳐진다. 빌드업을 차곡차곡하고 있구나, 라는 인상을 받으며 3부 자서전 대필작가의 시점으로 들어선 참이다. 이목을 사로잡는 대목에 이르러 요즘의 책 광고는 다 믿을 게 못 되지만, 2023년 화제작인 만큼 뒷심을 믿고 책장을 넘긴다.

믿음은 깨졌다. 예상 대로의 이야기에 맥이 빠진다. '2023년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내가 곡해한 걸까. 소설가-남편-대필작가-부인의 다중 시점에서 진실을 조정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진실이 아니면서 거짓도 아닌, 미스터리를 '재조정'하는 자유를 즐길 수도 있겠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어느 노랫말을 살짝 바꿔 말하고 싶다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고 싶겠냐.




📖 인형의 집의 참극

냉철한 괴짜 천재 우즈키 레이치와 마음 따뜻하고 정 많은 다키 렌지. 고교 2학년인 두 친구는 학교에 '연실 연구회'(일본은 동아리 활동이 정말 '활발'하군) 간판을 걸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사건을 의뢰받고 있다. 학원물 답게 두 고교생 탐정의 티키타카가 훈훈하지만 학원물 답지 않은 사건은 일파만파 번져간다. 일상, 청춘, 본격, 사회파가 조금씩 섞여 이야미스가 된?



📖 스트로베리 나이트

살인마 정체에 관한 트릭이 한니발급이다. 게다가 범인에게 공감과 연민이라니. 사패 범죄자 잡는 사패 형사인가. 이 둘 만으로도 지치는데 가쓰마타 형사는 츤데레의 식상함을 아득히 넘어선다. 지금은 악바리 사패(?) 형사지만 과거 범죄 피해자이기도 한 레이코에게 상처에 소금 뿌리기, 성차별, 성희롱을 난사한다. 다크 히어로를 그리려는 것도 적당히 해야 매력이지. 아, 이쪽은 소패인가. 굿 캅 배드 캅의 변주, 사패 형사 vs 소패 형사?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가 넘쳐나는 건 개성인데 이건 너무 강하다. 레이코팀이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궁금하지만, 다음 편에 선뜻 손이 안 가는 이유. 경찰이 뽑은 최고의 경찰소설이고 드라마도 엄청나게 히트했다는데 무엇이 경찰들의 마음을 산 걸까(드라마를 봐야 하나).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형사물이라는 데 별 반 개 더 주긴 한다.

다음 시리즈를 안 읽을 것처럼 썼는데 감상을 막 적던 시점이라... 이 토막글을 올리는 지금 감정이 많이 휘발되어서 2편 소울 케이지를 펼친 참이다. 독서 기록을 확인하니 ⟨스트로베리⟩를 2월에 읽었더라.

















📖 얼굴 없는 살인자

얼굴이 없는 살인자를 쫓는 데도 정신없는데 온갖 대중문화의 향연에 어질어질.

"벽장에 뼈 몇 개쯤" 원문이 skeletons in the closet 같은데(아, 영어가 아니라 스웨던어겠구나) 심히 정직한 번역 아닌지 

한때 동군연합을 이뤘고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는 옆 나라 덴마크와 심심찮게 엮인다. 수사 주도권을 두고 가깝고도 먼 나라 간 신경전이 팽팽하다. 마침 읽은 ⟨늑대의 왕⟩ 배경이 스웨덴과 러시아(덴마크-노르웨이) 전쟁인데 지금의 노르딕 복지 국가 역시 피의 역사로 이루어졌고 공유할 수 없는 국민 정서가 존재한다는 게 새삼 와 닿는다.



# 비호감 형사들, 자유로운 개인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일본 경찰은 피해자에 감정이입이 지나치고 유럽 경찰은 한 인간으로서 '나'가 우선인 그야말로 마이웨이 성향이 짙다. 내 감상 기준이라 신빙성은 희박하지만. ⟨얼굴 없는 살인자⟩에서 강간+장기 적출이라는 끔찍한 범죄에서 살아남아 입원 치료 중인, 극도의 PTSD를 겪는 피해자에게 형사가 당시 상황을 묻는다. 단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로봇처럼 무감하게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잠재적 피해자를 위해 협조하라는 명분이 당장 눈앞의 피해자의 고통에 절대적으로 앞서는가. 피해자의 과거가 사건의 단서가 된다면 이 부분을 다른 각도로 접근하든가, 피해자가 좀 안정이라도 되면 물어보든가. 냅다 피해자한테 사건 당시를 말해 보라, 범인의 얼굴을 기억해라 닦달하는 건..... 이게 병실에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를 휠체어에 태워 ─ 그렇다. 피해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다 ─  사건 현장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캐묻는다. 결국 패닉에 빠진 피해자는 병원으로 돌아가자고 울부짖는데 이 형사, 왜 그러냐며 '이유'를 말하면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아오....  풋내기 열혈 형사도 아닌 무려 반장이 이러고 있다. 피해자는 끝내 자살하고 마는데. 어찌 됐든 피해자에게서 단서를 얻어낸 투철한 직업 정신의 투베손 반장. 아, 이쯤 되면 경찰도 형사도 AI가 하라고 해.........


그런데 투베손 반장님, 근신(을 빙자한 휴가) 중임에도 수사(무단이탈)하다 다친 파비안은 또 그렇게 걱정한다. 다쳤으니 쉬라고, 휴가를 즐기라고 한다..... 우리의 주인공 파비안 형사가 얼굴 없는 범인의 정체에 바짝 다가갔다잖아. 쉬긴 뭘 쉬어. 실은 파비안의 뻘짓을 투베손 반장이 더는 커버하기 힘들어 수사에서 배제하려는 이유지만. 형사 역시 사람의 직업이고,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무게에 짓눌려 실수하고 헛발질하는 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북유럽이어서 그런가, 경찰도 그 가족도 일단 마이웨이. 파비안은 수사에서 빠지라는 데도 어찌나 범인 찾기에 열중인지 아들 얼굴을 3일이나 못 봤는데 문자에 답이 오니 잘 있구먼, 이러고 있다........ 같은 집구석에 있으면서. 부인과 딸은 타지역으로 떠났고 파비안은 입원했던 터라 집에는 미성년자 아들 혼자 있었는데도 집에 와서 몇 날 며칠 아들 방 한 번 들여다보지 않는다. 사춘기 자녀 사생활 존중의 달인.


수사팀의 다양한 개성, 불안전한 인간 군상을 그리려는 작가의 의도는 십분 알겠다. 근데 답답해. 스웨덴팀 투베손 반장과 더불어 나를 안타깝게 하는 덴마크팀 두냐 형사. 어차피 때려 치는 거 생각만 하지 말고 꼴 보기 싫은 반장 놈한테 멱살잡이라도 할 것이지. 형사라는 직업관에 철저하고 능력도 있는데 "늙고 까다로운 개복치" 같은 인간인 나는 그 우직함이 답답함을 넘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제일 속 터지는 건 역시 파비안이다. 끝까지 뻘짓만 한다(단순 무식한 표현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 ⟨얼굴 없는 살인자⟩는 파비안 리스크 형사 시리즈의 첫 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두냐 형사의 서사가 더 강렬한데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파비안의 과거 행적이 밝혀지고 형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되겠거니, 헤아려 본다. 두나 형사와 콤비가 될지도? (동군연합?)



# 약속된 헤비메탈의 땅

우체부도 마릴린 맨슨의 노래를 척 알아듣는 건 헤비메탈의 성지 북유럽, 스웨덴이기 때문인가. 인물들이 죄다 덕후인지 (록)음악 얘기가 텍스트마다 BGM처럼 들어 찼다. 영화 얘기도 툭하면 나온다. 찬호께이, 이사카 코타로가 그러하듯. 소설에 현실 취향이 양념처럼 반영되면 생동감이 깃든다. 그런데 자주 방대하게 나오니까 이 작가, 자신의 취향(덕후력)을 주체 못 하고 캐릭터와 상황을 이용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 



# 스웨덴의 얼굴 없는 살인자들

재밌는 게 헨닝 망켈의 소설과 제목이 같다. 둘 다 ⟨얼굴 없는 살인자⟩고 둘 다 스웨덴 범죄소설이다. 스테판 안햄의 소설 원제는 얼굴 없는 '피해자'인데 번역하면서 살인자로 바뀌었다. 안햄은 "여러 편의 대본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인기 각본가로 활동했으며 스웨덴 스릴러의 거장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형사 시리즈의 각색 작업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이러면 더더욱 두 책의 제목을 같은 이유가 궁금한걸.

종장마저 어째 고구마를 삼키는 기분이지만 꾸역꾸역 완독한 걸 보면 이력대로 필력이 없는 작가는 아닌가 보다. 다음 작 ⟨편지의 심판⟩에 쉬이 손이 안 가지만. 





📖 아이가 없는 집

성반전 ⟨엘리멘트리⟩라고 하기엔 탐정의 활약이 전무하다. 고전 추리물을 현대로 옮겨 왔다는 데 활짝 열렸던 마음이 책장과 함께 닫혀버렸다. 자기 욕망에 충실한 율리아라는 인물이 흥미롭긴 한데 이후 시리즈에서 탐정의 역량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캐릭터 생명력의 관건이 될 듯. 읽다 보니 이성과 증거에 입각해 사건을 냉철하게 풀어가는 여자 탐정/형사가 간절해진다. 그런 캐릭터 누가 있었더라? 

아, 하무라 아키라가 있었지. 이성의 날을 벼르는 인물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열일하는 하무라. 다음 시리즈 언제 나오나. 일흔일곱 살 탐정을 소망하는 만큼 그 활약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데. 수사 로봇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더니만 또 인간적인 감정에 심취한 탐정을 못마땅해하는 줏대 없는 나. 인간적인 건 좋은데 역시 마이웨이 아닌지. 그러니까 양극단 말고 중간 지점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고 싶은 건데 내가 까다롭게 구는 것에다 그만큼 읽은 작품이 없다는 얘기도 될 것 같다. 에놀라 홈즈도 안 읽었고, 미스 마플이나 제인 마블도 한 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없는 집⟩도 스웨덴 소설이다. 이럴 수가. 자유로운 개인 율리아. 수사야 어찌 되든 전남편을 쟁취해야만. 그래,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그 부메랑에 부디 맞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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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의 시간들 - 상상력과 창의성을 깨우는 39편의 에세이
프랭크 배런 엮음, 김나연 옮김 / 이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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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번의 대화

프랭크 배런의 ⟨크리에이티브의 시간들⟩은 창의성을 주제로 39편의 에세이를 소개한다. 헨리 밀러, 페데리코 펠리니,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어슐러 K 르 귄, 이탈로 칼비노, 이사도라 덩컨 외 (과학자인) 리처드 파인만, 캐리 멀리스 등 '창작자'들이 남긴 39개 글을 6부로 나누어 묶었다. 6개의 테마로 배런의 표현처럼 "창의적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제공한다.


여섯 개 테마는 다음과 같다.

1부 고스란히 드러난 마음

2부 열린 마음

3부 상상력의 그물

4부 창의의 생태학

5부 장인 정신에 대한 헌신

6부 벌거벗을 용기


배런이 쓴 머리글은 '이 대화'에 방향키를 제시한다. 창의력, 상상력에 관한 글을 읽노라면 미궁에 던져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한 가닥이 실이 절실하다. 심리학과 교수이자 창의력 연구가인 배런은 머리글에서 창의력과 지능의 관계, 자신의 연구 지침과 방향성 등을 설명한다. 책에 실린 39개의 글은 '에세이'로 묶이지만, 산문을 비롯하여 인터뷰/대담, 서문, 강연에서 발췌한 다양한 글이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도 있다. 다소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머리글과 더불어 각 부와 글에 관한 개괄이 없었다면 실 한 가닥이 아니라 한 타래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뒤에 실린 창의력에 관한 추천 도서, 각 에세이의 출처는 독후 여흥을 돋워준다. 


글 선정이 특정 집단 — 20세기 서구 백인  — 위주라는 한계도 분명하지만 (배런은 이 점을 쿨하게 인정하고 들어간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독자와 엮은이 모두에게 중요하고 독서의 좋은 지침이 된다. 이렇게 구성한 39개의 글, 6개의 테마는 단계적이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다. 엉켜 있다. 상상력의 그물이 벌거벗을 용기이기도, 고스란히 드러난 마음이 장인 정신에 대한 헌신이기도 하다. 목차대로 읽지 않아도, 아니 내 "마음속으로 선택한" 테마를 좇아 책을 펼쳐도 좋겠다.




#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

상상력은 어떠한 작용으로 이뤄질까. 상상력은 이미지와 사고의 흐름을 조율하는 것이다. 3부 ⟪상상력의 그물⟫은 이 조율 작업을 그물 짜기로 개념화하여 창의성의 본질에 그물망을 던진다. 메리 셸리와 융은 혼돈과 무의식에서 인상을 (재)배열하여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은 과정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은 공허가 아니라 차라리 혼돈이다. '인상의 소나기'라는 표현처럼. 


이 인상의 소나기는 비단 예술 창작뿐 아니라 정신 분석, 인지 과학에서도 유효하다. 이탈로 칼비노는 ⟪가시성⟫에서 "실제 깨달음이란 환상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다양한 이미지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라는 더글러스 호프스테터의 말을 인용한다. 장 스타로뱅스키의 ⟪상상력의 제국⟫을 통해 상상력의 탐구를 이어가는데 여기서 지식 도구로서의 상상력과, 세계와 합일하는 상상력을 발견하고 묻는다. 내 창작의 동력이 되는 상상력은 어느 길에 속하는가. 칼비노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되짚으며 스타로뱅스키가 그린 경계에 또 다른 세계를 세운다. 지식과 진리는 형제이고 현실과 환상은 엉켜 있는 곳. 시인의 마음과 과학자의 정신은 선택과 연결을 통해 패턴을 조립한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며 새로운 가시성의 획득은 이 경계에도 새로운 선을 그을 것이다.


3부에서 ⟨말과 사물⟩의 서문을 맞닥뜨리니 조금 당황스럽다. 푸코가 탐구하는 인식론을 상상력의 그물로 엿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지만, 용어부터 일단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도 사실이라. 보르헤스가 소설에서 인용한 '중국의 어느 백과사전' 얘기에 껄껄 웃었다는 푸코. 일단 '해부대 위 우산과 재봉틀'을 그려 본다. 해부대가 사라져 공통된 기반이 파괴된 채 덩그러니 남은 우산과 재봉틀. 이것이 중국의 어느 백과사전이다. 헤테로토피아다. 현실을 교란하고 틈과 사이, 결핍과 혼돈이 난무하는 공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잠재력을 보여주는 곳. 상상력의 그물이 짜이는 곳.


푸코가 시대의 지식을 구성하는 개념으로 제시한 에피스테메가 그러하듯 창의력 역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에 따를 것이다. 자기 인식의 힌트를 얻게 된 19세기, 자기중심적 사고가 가능해진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는 어떤 창의성의 문이 열릴까. 


지금 시대의 중국 백과사전은 더는 헤테로토피아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이후 서구의 거대한 유토피아로 뻗어나간 이 공간은 급기야 틈은 메워지고 사이는 없어졌다. 이제 다시 새로운 그물망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다음 시대의 과제 아닐까. 추상적이고 난해한 철학 개념을 칼비노가 그런 것처럼 상징(이미지)으로 그려보며 3부의 대화를 마친다.  




# 일상생활의 조직자

기술 발전과 함께 AI 창작에 관해 철학적, 제도적 논의가 활발하다. 문득 다다의 '우아한 시체 놀이'가 떠오른다.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의 시와 다다이스트의 시를 구별할 수 있을까? 창의성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인식과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어린 시절 나도 저렇게 그리겠다고 호언장담한 피카소의 그림은 이제 다르게 보인다. 여전히 피카소처럼 그릴 수 있다고 해도(정말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감상의 역할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적 기교'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스란히 드러난 마음⟫과 ⟪장인 정신에 대한 헌신⟫은 창작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애나 핼프린이 표현한 자아의 침몰, 오이겐 헤리겔이 말하는 영적으로 활을 당기는 경험이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다. 궁사는 과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겨냥해야 한다. 매리언 밀너는 그림을 채색하는 과정은 자신과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형성하는 관계를 인식하는 작업이라고 성찰한다. 


창작과 감상 두 영역은 상호 침투적인 관계에서 고유의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새로운 시대의 창의성 열쇠가 될 수 있다. 39개의 글로 창의적인 사람들의 면모를 보여주는 ⟨크리에이티브의 시간⟩은 나이, 직업, 성별, 지능, 유전 등 생물학적, 환경적 영향에 상관없이 창의력은 하나의 태도라는 것을 시사한다. 창의력은 직업적 능력이기 이전에 삶의 태도다. 누구나 창작자인 요즘, 일상생활의 조직자인 인간은 모두 창의적이다. 


창의력은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자 의미를 찾는 도구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며 창의성의 모습은 다시 한번 꿈틀대지만 스스로 책을 펼치고, 자발적으로 정원을 가꾸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는 인간은 창의적이다. 천재적인 예술가, 과학자, 운동선수만큼이나. 수억 개의 점에서 전에 없는 패턴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자발적으로 일상생활의 조직자가 되는 것. 그러면 날마다 쏟아지는 피드의 홍수 속에서도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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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하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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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는 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힘을 행사한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분명 선악 따위는 문제가 아니리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힘이 없는 일개 개인이 초래한 불이익에 더욱 분개한다.

야리미즈도 자신은 조직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슈지 역시 제대로 틀이 짜인 조직 속에서는 살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슴을 펴고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특별한 뭔가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우리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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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 3권을 몰아치며 읽은 모방범
새벽 두세 시까지 눈 빠지도록 읽은 오르부아르
그 흥이 오래도록 남은 소설. 여기에 <범죄자>를 추가해야겠다.

상권은 정말 이러다 지각인데 불안에 떨면서도, 책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놓지 못했다. 어딘지 <동트기 힘든 긴 밤>이 연상되는, 처절하기까지 한 내용 중간중간 유머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예전부터 알긴 했는데 중국 소설인 줄 알고(...?) 바로 당기지 않던 책. 첫 장을 읽는데 일본 이름, 지명이 나오길래 일본이 배경인가 싶었는데 그냥 일본 추리소설이었다.... 저자 이름도 가만 보니 일본 이름인데 왜 중국 작가라고 생각한 건지.

다음날 퀭한 눈으로 챕터 하나만 읽어야지 하다가 야금야금 하루 만에 다 읽은 하권. 조금 빤한 전개에 사족이 길다 싶다가 또 여운을 주는 계륵 같은 에피들이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마무리. 상권보다 흥은 꺾였지만 쉽사리 가시지 않는 수미상관의 잔향 — <스카페이스>가 떠오르는 — 때문에 과감하게 별 넷.

오타 아이라는 작가 책을 찾아보니 절판이다. 아니 구라치 준 같은 경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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