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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만큼 우울한 일도 없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든 책이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그를, 더구나 그의 '글쓰기'에 관한 글을 아무 사심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랴.

 

 

책을 받아본 날, 정말 기뻤다.

이오덕 선생에 이어 글쓰기에 관한 또 하나의 큰 스승님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문장가'로 칭송받는 그의 이야기를,

문장 작법의 수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바쁜 시기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진귀한 역사유물을 대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집중해서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반복해서 읽은 부분이 여러곳이었고,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대충 넘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의 글을 모아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쩔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작문법'이란 옷을 입힐 것이 아니라

작가, 번역가 혹은 인간 이윤기에 대한 에세이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의 소양과 그릇이 부족해서였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그의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고민들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 글쓰기가 곤혹스러워서 묻는다, 36~37 쪽.

 

 

"소설가 박인홍이 30대 초반에 마주했던 <벽 앞의 어둠>,

바로 그 어둠의 벽이었던 것이지요.

나는 박인홍보다 20년이나 늦게 이제 겨우 면벽합니다."

- 지금의 작가도 옛날 작가와 똑같다, 51쪽.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 껍진껍진한 입말로 글쓰기, 81~82쪽.

 

 

"외국어 번역 공부, 나는 참 어렵게 했다.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많이 절망했을 뿐, 한 번도 만족을 경험하지 못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많이, 그리고 오래 걸었다.

판화가 이철수는 길을 잃고 오래 걸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수도 있다고 위로하고,

시인 강연호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격려하지만

그 위로와 격려는 들을 때마다 슬프다."

- 공부에 지름길을 왜 찾나, 116쪽.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이코노그래피 문화, 이미지 문화가,

유구한 글말 문화의 전통을 드난살이로 전락시킬 것을 위태롭게 여기어 마지않는,

걱정스러운 전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지 문화는 고대 종교의 유구한 구전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뮈토스(옛 이야기)', 근 3천 년 가까이 그 뮈토스를 기록하고 발전시킨 문자 문화(문학)의 적자다.

이미지 문화는 뮈토스와 문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지,

뮈토스와 문학의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203쪽.

 

 

"'유심'과 '무심', 생활과 존재를 아우를 수 있어야,

삶은 강처럼 저절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 같다.

문학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삶조차도.

책은 그래서 있는 것이다."

- '유심히' 또는 '무심히' 바라보다, 292쪽.

 

 

 

 

* 뻗어가며 읽기

 

미셀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김화영 옮김

김화영, <한눈팔기와 글쓰기>, <소설의 꽃과 뿌리>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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