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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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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갈 때마다 낯선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처음 본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고 나를 지나쳐 갔다. 빠른 발걸음으로 걷는 한 남자,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걷는 연인들, 키가 큰 사람, 긴 머리의 여자, 짧은 머리의 남자, 메마른 얼굴, 뽀얀 살결이 통통하게 올라온 사람, 표정과 눈코입의 모양이 모두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사람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존재하는 것이며, 나와 공존하는 것일까? 그러한 의문을 느끼면서 마치 방금 태어나 처음으로 눈 뜬 아이처럼 세상이 낯설게만 보일 순간이 내게는 종종 있었다.

 

      TS엘리엇이 말했듯이, 우리는 '탄생-성교-죽음'이라는 단순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과거보다 현재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삶은 짜여진 각본처럼 어딘가 모르게 부조리한 구석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일정한 나이 때 거쳐야 할 관문을 만들어 직접 자유를 박탈하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예외도 물론 있지만, 관문의 모범적인 모델은 이렇다.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을 반납한다.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다. 저축을 해 집을 마련하고 가정의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회사 생활을 성실히 한다.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크면 대학교를 보내고, 결혼을 시킨다…… 무한반복. 이런 식으로 열심히 관문을 통과하다보면 '나'라는 자아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나'임을 유지할 수 있는 '기억'이라는 통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나만이 가진 유년의 유일한 추억들, 친구들, 연인들, 사람들…… 정체성은 점점 사라지고 '너도 그 마음 알지'하는 이상스러운 연대만 생겨난다. 회사 출입문 앞에 나와 담배를 피면서 서로의 감정을 나누어 봤자 공허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달라지는 게 무언가? 이제껏 너와 나의 삶이 똑같았고, 현재도 같으며, 앞으로도 같을 거라는 암시밖에 더 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인가? 아니다. 그럼 온전히 사회의 잘못인가? 그렇다고만 하기에도 뭔가 껄끄럽다.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았던 그 순간에도, 마지노선이라도 내게 선택의 열쇠가 쥐어지지 않았을까? 이런 물음들이, 세상의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괴로움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김만수는 투명인간이다. 자살 다리로 유명한 마포대교 위에 서 있는 한 남자, 감만수는 엄청나게 흔한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 명, 하나의 인격체,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소설은 김만수의 과거부터 시작된다. 김만수가 태어난 과정, 태어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의 사연을 보여준다. 그를 둘러싼 환경,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유년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가족사까지 낱낱하게 보여준다.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그가 선택해야 했었던 일들. 자식 중에 가장 똑똑해서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형이 베트남 전쟁에서 죽자 가족들은 만수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그것은 김만수의 어깨에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이 내려앉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김만수는 자신의 두뇌에 대한 한계를 느끼지만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김만수의 이제까지의 삶은 누가 만든 것일까? 소설 내에서도 김만수의 목소리는 단 한군데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서 한 사람, 김만수가 만들어지는 형식이다. 자기가 평가하는 나, 타인이 평가하는 나가 있다면, 김만수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매정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그 목적이 타인이었기 때문에 착한 김만수의 삶은 허전한 공허만이 남게 된 것이다.

 

      김만수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서 김만수와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외모와 모습들은 달라도 이 세상에 독창적인 인간이 존재하냐는 물음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엾고 착한 존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들이 소설을 읽은 뒤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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