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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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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았던 〈N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그때는 분명, 모두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p.65)
 
 
사랑에도 신호는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그 모든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더러는 사랑을 병에도 비유하던데, 그렇다면 사랑에도 징후가 있는 걸까. 징후가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한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었다면, 또 사랑해주었다면 그것을 그때 알아차릴 수 있었기를. 그런다고 해서 없던 애인이 생기거나, 지금 있는 애인과 헤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은 그런 것들을 상상하고 바랄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었던 사실을 내가 조금 더 알 수 있었더라면. 저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알았더라면. ‘사랑’이란 감정에 좀 더 확실한 징후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들을 스쳐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맺어지지 않는 사랑은 언제나 아쉽다. 그것이 나의 경험이건, 또 다른 사람의 일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서도 우리는 엇갈리는 사랑에 아쉬움을 느낀다. 어떻게 보아도 사랑인데 맺어지지 않는 연인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나도 한 번은 그런 경험이 있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짝사랑해본 적도 있었고, 그 사람과 행복한 때를 꿈꿔보기도 했고, 그러다 마음을 접겠노라 다짐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랑에 있는대로 끙끙대며 아파했을 그런 날들. 그때라면 누구라도 마음으로 기원하게 된다.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다 해줄 텐데, 저 하늘의 별도 따줄 수 있을 텐데. 저 사람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그때는 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었던 그때.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N들이 있다. N을 위하여, N에게 바치는 그 모든 것들. 이것은 N의 사랑이다. N의 인생이다. N이다.
 
 
“…공유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상대의 죄를 절반 짊어지는 거야. 아무도, 그러니까 상대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 (p.154)


 
'N을 위하여'는 그 제목에 걸맞게 수많은 N들의 이야기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름 속엔 모두 공통적으로 N이 들어간다. 스기시타 노조미, 안도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 나루세 신지. 또 노구치 다카히로, 노구치 나오코. 게다가 들장미 하우스의 주인인 노하라 할아버지까지. 이 N들은 저마다 서로와 조금씩 관련이 있으며, 크고 작게 서로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들장미 하우스의 주민인 스기시타 노조미, 안도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와 노하라 할아버지. 스기시타의 동창인 나루세, 안도의 직장 상사인 노구치, 그의 부인인 나오코. 
 
N은 N을 사랑한다. 허나 이 모든 관계는 일방적이다. 소설의 첫 시작이 일방적인 ‘진술’의 형식이듯, 그들의 관계 역시 그렇다. 이토록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어떤 N은 죽었고, 어떤 N은 죽였으며, 어떤 N은 묵인하고, 또 어떤 N은 거짓말을 하며 모른 척을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N을 위한’ 것들이다. N을 위해 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혹은 그 죄를 대신 뒤집어 쓰지만 끝까지 누구도 말은 하지 않는다. N이 N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행위와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한 쌍인 것일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 뒤늦게 이유를 늘어놓아 봐야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동기다, 경위다, 이유다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p.247)


 

작가의 말처럼, 이 글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며 동시에 N들의 사소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사랑을 대전제로 말하고는 있으나, 그 속에는 N들이 이 세계를 대하는 모든 방식들이 담겨 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스기시타는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하지만 높은 곳으로 올려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장기를 배우는 것으로 자신의 의존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안도는 스스로 그녀를 ‘높은 곳으로’ 올려줄 수 있는 입장임에도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노구치를 경멸하고, 스기시타의 우울했던 십대 시절에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나루세는 남들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를 다니면서도 면접에 족족 실패하며 인생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니시자키는 ‘스스로’ 글을 쓰기 위해 부자들의 높다란 상아탑에서 ‘들장미 하우스’로 내려왔고, 모든 걸 다 가지고도 ‘뭔가를 가지고 싶어하는’ 스기시타에게 질투를 느끼던 나오코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는 남편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고급 맨션에서 성공적인 삶과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노구치는 부하에게 장기를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거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되어 있는데도 들장미 하우스를 오래도록 지키며 떠나지 않는 노하라 할아버지까지.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5퍼센트의 재능과 95퍼센트의 노력, 갈고닦은 능력을 무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정면 돌파한다. 능력이 부족한 주위의 인간들은 모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발판이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그 발판을 자유롭게 조종하면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다. (p.146)
 

 
N들이 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답답하다 못해 미련스럽기까지 하다. 대체 왜,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나은 대안들이 많았는데도 N들은 고집스럽게 그 자리를 지켜낸다. 
나루세, 또 안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기시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구원이었던 나루세에게 가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을 ‘높은 곳으로 올려줄’ 안도의 손도 잡지 않았던 스기시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 모습은 나오코의 태도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던 니시자키의 손을 결코 잡아주지 않고 끝내 위험한 결말에 이르고야 말았던 나오코. 스기시타는 나오코의 모습에서 평생에 걸쳐 벗어나고 싶어했던 자신의 ‘엄마’를 수시로 떠올린다. 그러나 N으로서 N을 사랑하는 스기시타는 놀랍도록 나오코와 또 자신의 엄마와 유사하다. 집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자신이 쓴 소설 속 ‘새’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니시자키도. 
 
 
문학의 세계가 필요 없는 게 아니다. 가공의 세계에 빠져들 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어 본들 배는 불러지지 않는다. 눈앞에 책 더미가 쌓여 있다 한들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가 충분했으면 좋겠다.
(p.216)

 
 
그리하여 자신의 N을 위해, N은 선택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N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위해 선택한 것 뿐이다. 모든 N들은 모든 N에 의해 행위한다. 때문에 N은 N이며, 너는 나이고, 나는 당신이다.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나이고, 내가 이 세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이너스끼리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면 플러스가 된다는 것은 마이너스 인간만이 알 수 있다. (p.282)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N의 이야기이며, 그것은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온전히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 가능하기는 할까. N에게는 N이 있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인간이란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갈망한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 내가 사랑해줄 사람.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혹은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혹은 증오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우리는 모두 N이다. 살아가며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한 우리는 N이며, 우리는 N을 위해 살아간다. 때문에 이 글은 인생이 된다. 우리에겐 이미 N이 있기에. 우리 또한 누군가의 N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어떻게든 살아는 간다.
나를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N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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