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어떠한 목적이 아닌 그 자체를 위해 ‘그냥’ 하는 것이다. ‘그냥’ 하는 공부는 인간의 본질과 가장 비슷한 학문인 역사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하며, 이는 자기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유를 도와주는 《역사고전강의》는 독자와 역사 고전을 함께 공부하고 그 역할이 다한 후, 잊혀지고 버려지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종국엔 잊혀지고 버려질 책을 ‘그냥’ 읽는다는 것은 어떠한 목적, 예를 들어 취직을 하거나 다른 이에게 지식을 과시하는 일에는 쓸모가 없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목적을 위한 공부 대신 우리가 하려고 하는 공부는 이와 다른 것이다.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이가 그렇지 못한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닌, 대중과 ‘함께’하는 인문학이 그것이다. 이처럼 배움을 주변 사람과 자연스럽게 나누기 위해선, 공부 그 자체가 내 머릿속으로 스며들고 내 몸으로 배어들어 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천박한 모습을 가진 동시에 자기 안의 천박함을 스스로 괴로워하며 고귀한 모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가 열망하는 고귀함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바로, ‘그냥’ 공부하는 것이다.
‘그냥’ 하는 공부는 역사책을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역사는 삶의 경험 pathos을 기록한 문학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불변하는 것을 탐구하는 철학 사이에 놓여있다. 불변하는 것뿐 아니라 불변에 이르지 못하고 스러져간 나약한 인간 군상이 기록된 역사는 인간과 가장 닮아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존재의 덧없음을 아는 인간은 자기 안의 불변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 melete 한다. 이러한 불변을 향한 노력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감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황되고 허망해진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시간의 한 지점을 붙잡아 성찰하는 역사적 사유가 필요하다.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자신을 조용히 반성하는 성찰은, 역사 공부를 통해 연습할 수 있다.
《역사고전강의》는 이러한 연습의 일환으로 사람들과 역사고전을 함께 읽고 같이 공부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을 공부하는 방법은, 우선 이 텍스트에 앞서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를 지오프리 파커의 《아틀라스 세계사》와 함께 가볍게 통독하는 것이다. 세계사 기본 지식을 쌓은 후 《역사고전강의》를 문단 단위로 요약한 서술형 목차를 읽어 전반적인 내용을 짐작한다.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발췌독하고, 앞서 읽은 《세계의 역사》와 책에서 별도로 소개한 권장 도서를 꼼꼼하게 읽는다. 이렇게 늘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다시 《역사고전강의》를 비판적으로 읽고 판단한다. 이처럼 독자에게 세 번 읽혀진 후 더 훌륭한 텍스트를 위해 잊혀지고 버려지는 것이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역할이다.
‘그냥’ 하는 공부는 역사 고전을 읽는 것에서 시작하며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불변의 것을 추구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이기에 고귀한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습을 의미 없게 여기거나 좌절에 빠져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움을 나눌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해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