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건재하도다. 이 씩씩한 언니.

어디선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언니.

나, 김현진 팬! 새로 출간한 《뜨겁게 안녕》 독자만남. 응모했고 뽑혔다.

홍대의 커피하우스, 살롱드팩토리. 사실, 이곳의 커피는 내겐 별로지만. 

 

그녀,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알코올 의존은 여전한 듯하며, 수줍고 여리고 참 약하면서도, 그래서 강한 여성.

 

뭣보다 김현진은 김현진이다. 다른 어떤 설명도, 사실 필요없다.

그녀는 그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장도 않는다. 거듭, 멋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사나 글을 통해 보아온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온전하게.

당연, 인간적인 결함 있(을 것이)다. 변덕도 죽 끓으며, 우울도 달고 산다.

그래서 술은 그녀에게 좋은 친구다. 그게 뭐 어쨌다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현진, 상처 입었고, 상처 입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녀는 '자기마음주의자'.

많은 우리는 남들이 하는 뒷담화나 수근거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나.

그래서 끊임없이 포장하고 분장하고 변장하기 바쁘다. 마음도 성형을 하는 세상.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직구.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간다. 덤벼라, 세상아.

 

그녀(의 글)를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 아닌 내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많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 '진짜' 삶을 살고 있니?"

 

물론, 그녀는 그런 것, 의도하지 않는다.

김현진은 그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니까.

 

아마도 그녀, 헤밍웨이의 이 말을 체화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고자 원하는가 말이다. 미친 듯이.

 

우산도 없이 빗속에 뛰어드는 마냥,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그녀, 김현진 스타일.

쩐다! 간디작살. 아름다운 '김꽃두레'양 표현을 빌자면, 마~돈나 섹시해.

 

소설을 쓰고 싶은 그녀, 언제고 소설을 낼 것이고,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소설, 대중을 자극하든 아니든, 나는 그것이 한 인간의 기록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을 벗어나 대중이 된, 지금의 인간에게 그녀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왜? 김현진이니까!

 

김갑수 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리히터(리흐테르)를 경배하며 하신 말씀 인용하자면,

"대중의 사랑과 선망으로 높낮이가 구분되는 '인기'와는 다른 영역"에 김현진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녀는 '비주류'가 아니라, 대중 아닌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다시 김갑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깊이, 인간의 크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녀의 애정, 서울과 술. 그것과 함께 영원하길.

2009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하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이 자리가 더 좋았던 이유.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남긴 고종석 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고샘 팬클럽 멤버다! 고샘은 김현진의 아버지다. 문화적 DNA를 물려준 아버지. 부럽다!)

내 사랑하는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이자 소설가 조선희 선생님도 오셨다.

(씨네21에 싸인을 받았다. 소설이 완성됐다고 들었다. 기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훈훈한 공기하곤.

나는, 남의 시선에 포박당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고종석 선생님도, 조선희 선생님도 그래서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뜨겁게 안녕'할지라도. 

 

 

슬픔

그 어느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한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은 이별을 택하기로 했고, 12월31일을 거사일로 택했다.

 

헌데, 그들은 증언자(?)로 나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날부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애인이 한국 아닌 먼 곳에 있던 나.

함께하자는 제안에 고맙다며 굽신굽신, 종각에서 폭죽을 함께 즐기고 쏘다녔다.

뉴이어는 그렇게 밝아왔건만.

 

그리고 그들, 헤어졌다.

내 대학시절 참 좋은 파트너였던 녀석은 다음날에야 그것을 실토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글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어설픈 기억으로 당시 녀석의 집안형편이 큰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죽자사자 붙어다니던 그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늘 보기 좋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놈,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아니,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상처가 깊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그녈 잊지 못했고, 그 사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 한편으로 녀석의 여자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일반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의 상처는 오래 갔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서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이 한 달 뒤 결혼(식)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어어어~ 하다가 얼렁뚱땅 결혼하게 됐다고.

 

글쎄, 지금 여자와 녀석의 관계. 잘은 모른다.

다만 녀석의 말이 슬펐다.

"형,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니, 다 그렇게 어어~하다가 결혼하는 거라더라. 다 그리 한다 하더라. 뭐, 나도 그리 됐네. 하하."

 

내가 알던 녀석은 자신만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비주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주류'가 됐다.

축복해야 하는데, 축하를 하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슬펐다. 녀석이 아팠다.

결혼이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에 자신을 대입시킨 녀석이 슬프고 아팠다.

 

그래, 오해겠지만,

녀석은, 아직 그 상처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그것이 나는 슬프다.

부디, 잘 살아라. SJ야. 그래도 나는 늘 네가 고마우니까.

너와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나는 잊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아직 유효한 꿈이니까.

 

그래, 뜨겁게 안녕.

너와 나,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 1막은 그렇게 접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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