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온라인에서 연계된 오프 모임에 참석을 즐기는 인간은 아닌데..

영화시사회 정도 말곤 온라인 이벤트 신청을 즐기는 인간은 아닌데..

물만두님의 1주기 추모 행사에 이벤트 신청을 했고..

오늘 (14일) 저녁 다녀왔다.

 

명동에 들렀다 참석할 요량으로 낮부터 길을 나섰는데 12월 날씨 같지 않게 묘하더라..

비..?

짧은 걸음을 되돌려 우산을 다시 들고 길을 나섰다..

마치 우산을 처음 들어본듯..

어색한 기분으로 짧은 비를 우산으로 맞았다.

그러곤 다시 얼마지않아

언제 그랬냐는듯 묘한 하늘만 그대로였고

비는 그쳤다.

 

추모행사는 저녁 7시..

합정역에 도착한 시각은 6시 35분..

2층에 위치한 카페 벤 제임스는 생각보다 쉽게. 일찍 발견되었고

계단 입구에 있는 알림판 위 A4지엔

 " 오늘 카페 벤 제임스는 '물만두 1주기 추모행사' 관계로 7시 부터 9시까지 ... "

란 손으로 쓴 안내문을 보자 반사적으로 시계를 봤다.

 

6시49분

 

언제 시간 칼같이 지켰다고...

그냥 한 블럭을 더 돌았다.

 

6시59분

 

조용한 입구에 다시 돌아와서 계단을 올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들어차있었다.

그들은 7시 이전에 들어와 있었구나...

 

오프라인 모임 참석에 익숙치 않은..

추모 행사 참석에 익숙치 않은..

일면식 없는 이들의 모임에 익숙치 않은..

나는.

 

카페안에 들어서자마자.

 

7시에 딱 맞춰 들어온 스스로의 촌스러움과

추도하는 행위를 함에 있어선 이런 칼같은 마음가짐이 옳지 않을까.. 하는 떳떳함과

편안한 자리들은 객들로 채워졌기에 무대(?) 코앞 자리만 남았네?.. 하는 약간의 당혹감과

간단한 요기를 할수 있을 음식들을 보고선.. 저녁거리 고민이 멀어지는 안도감...

등의 감정들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앞자리에 앉아서 뒤를 가득채운 사람들을 바라봤다.

어쩌면 대부분 나같은 일면식도 없는..

조용한 알라디너들 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파란 여우님이 아니었기에.

아영 엄마님이 아니었기에.

행사 진행자가 아니었기에.

출판 관계자가 아니었기에.

조용히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불펀하고 어색한 앞쪽 중앙자리에 앉아서 무대 옆을 바라보니

넓은 테이블에서 편하게 앉아 다과를 즐기고 있던 친구들이 괜히 부러워 보였다..

저들은 6시 반쯤 왔을까?

그래서 넓고 편안하고 시선에 자유로운 구석자리에 앉을수 있었을꺼야..

초딩스런 생각은 그들이 악기를 들고 나와 오프닝 공연을 시작하려할때

짧은 당혹감과 함께

 

'오늘은 물만두님의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라는 알라디너스런 마인드로 돌아왔다.

 

제일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제일 앞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깐..

정확히 말하면

제일 앞 테이블은 두개였고..

나는 그 중 한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제일 앞 테이블은 비어 있었고..

왜 그 테이블이 비어있는지에 대한 짧은 호기심은..

물만두님과 똑같이 생긴 남녀 두 분이 자리함으로서 사라졌다.

 

그들이 만순과 만돌임을 나는 단번에 알아봤다.

 

나는.

물만두님 생전에 그와 일면식도 없었다.

그의 서평에 댓글을 달아본 적도 없었다.

 

얕은 추리소설 매니아일 뿐인 나는.

물만두님의 좋은 글들을 그냥 읽고 감탄하며..

간혹 땡스 투 정도만 날렸던

조용한 알라디너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물만두님의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7시45분

 

출판사 편집인들의 행사 진행은 이어지고 있다.

내 눈앞엔 물만두님의 추모 영상과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는 만순님

그리고 그 영상과 눈물의 만순님 사이에 위치하고선

눈물이 터질까봐 어금니 깨물고 계신듯한 만돌님.

 

그렇게 내 눈앞엔 그들 삼남매가 모두 보인다.

 

행사 막바지에 그들이 일어서서 짧은 감사의 말을 하면서 울컥인다.

 

한참이나 억누르고 있던 내속에 뭔가도 순간 울컥인다.

 

 

 

8시31분

 

추모행사는 끝났다.

9시 까지 대관한 관계로 남은 시간은 참석한 지인들과 객들의 담소 시간이란다.

물만두님의 글을 조용히 읽기만 했었던 나는

파란 여우님이 아니었기에.

아영 엄마님이 아니었기에.

행사 진행자가 아니었기에.

출판 관계자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만순.만돌님이 아니었기에.

 

8시35분

 

물만두님에 대한 나의 추모행사는 끝났다.

 

 

별 다섯 인생.

 

홍윤.

 

그가 일면식도 없는 조용한 알라디너인 나에게 준 마지막 선물을 받아들고선

 

카페 벤 제임스 를 나왔다.

 

시끌벅적한 홍대거리가 오늘따라 너무 조용하다.

오후에 내렸던 비의 흔적은 아직 남아있다.

집으로 오는길이 유난히도 차분한 기분이다.

 

물만두님에 대한 추모행사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1년 전 그의 소식에 안타까워

뒤늦게 나마 그의 서재에 처음이자 마지막 글을 남겼던..

그 심정으로.

 

내 알라디너의 시작에 큰 알림을 주셨던

물만두님...

 

여전히..

 

당신을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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