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만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날의 시간은 강의나 강좌라는 표현과는 다른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아래 글을 적어주신 즐거운 독서님쪽에 더 공감하는 1인입니다.  

처음에는 글타레를 엮어가는 이재현님의 진행방식에 매우 당황했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회의석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주제의 단위를 닫고 맺어가며 다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열어가며 설명하는 방식이지요. 언제 회의가 끝날지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 마는 형식의 회의운영자라면 매우 어려운 회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의 연사님은 답과 목표를 위한 서술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상을하고 왜 ..를 생각하는 단계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점에서, 발상의 방식이 마인드 맵 브레인스토밍처럼 연쇄적으로 파생되어 가기 시작했다는 점은 되돌이켜생각하면 인상적입니다. 

초등학교 정문의 무리수를 둔 교장선생님의 현수막을 시작으로, 그 현수막을 쓴 교장선생님의 연령대에 영향을 미쳤을 식민지시절의 일본어휘 "잇쇼겐메이"와 우리식으로 스며든 '목슴걸고'라는 표현. 또 정문에 구호를 붙히던 '나찌'로 넘어가서 그들이 사용했던 구호와 그 어원과 발상의 시작, 고대철학자 플라톤이 그 어휘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현대까지 존속한 고대 어휘중의 예제, 휴마니타스,스칼라.네고시에이트 등의 추상개념파생의 역사, 여기에서 다시 학문과 여가의 관계, 그를 위한 자신만의 시공간의 필요성등등..

아주 넘나드는 내용을 머리속에서 쫒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앞자리 착석한 저희에게는 전단으로 준비하신 교안을 빼놓고 배포하셔서 그 수업의 막막함은 더 했지요. 

하지만, 그 통찰과 연상을 끌어내기 위한 사고의 방식을 엿본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판단과 결론적 답을 내고자하는 자리가 아니었기때문이죠. 

제가 익숙한 강의 방식은 분명 아니었습니다만, 통찰과 파생적 연상과 그에 따른 주제전환은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좋은 시간 만들어주신 저자 이재현님과 알라딘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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