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당첨 메일이 왔을 때 나는 길 위에 있었다. 전국 기차여행 마지막 날이었는데 '나 누구게? 얼른 확인해봐' 라는 문자음이 울리더니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때부터 1번과 3번 중 고르다가 1번을 찍으면 3번이 답이 되고 어디 이벤트에 응모해도 지지리도 뽑히지 않았던 그런 내가(참고로 여행인문학스터디 '김남희 씨' 편에도 응모했는데 떨어졌었다.) 저자와의 대화 행사에 당첨되다니!!!!  여행 중이라 메일을 확인할 수 없었고, 여행을 마치고 메일을 확인하자, 맙소사! 진짜다! 

 그렇게 나의 전국 기차여행은 저자와의 대화라는 또 다른 여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21일 당일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가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상암 누리꿈 스퀘어 비지니스 타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 벌써 시작했으면 어떡하지?'(어, 근데 출석체크 안 하나?)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을 배려(?)해주시느라 이 행사는 5분정도 늦게 시작되었고 나는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김남희 선생님의 실물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김남희 선생님이 맨 처음 여행이란 무엇이라 물으셨을 때 나는 물질에 현혹된 것도 있지만 행사 자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손을 번쩍 들어서 '여행이란 일상' 이라는 말을 했었다. 아, 어찌나 떨리던지... 마치 대선배 앞에 선 까마득한 꼬마후배의 느낌이 되어 덜덜덜 떨면서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여행이란 일상이라고 말을 했지만 김남희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여행이란 살면서 쌓아온 성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여행을 다니면서 나 자신에 관계된 것을 모두 끊고 나를 발견하라는 의미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법에는 첫째, 연애가 있고 둘째로 여행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은 자신을 만나고, 타인을 만나고, 그리고 자연을 만난다고. 

그 후로도 선생님이 7년동안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을 말씀해주셨는데 세 번째로 말씀하신 '현재의 긍정' 이 기억에 남는다. Carpe Diem,즉 현재를 즐겨라는 선생님이 사인에도 쓰신 구절이었는데 긍정의 힘을 배운 것 중에 제일 큰 의미로 다가온 것 같다. 사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꿈을 꾸고 망상을 하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여행을 통하여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건 나도 이미 많이 느낀 터라 시험치기 위해 수험생들이 책상 앞에 붙여놓는 그 'Carpe Diem'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다음으로 그녀의 여행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정리한 좋은 여행의 정의는 6가지였는데 그 중에 익숙한 것을 포기하라라고 말하는 '공정여행'의 이야기는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와 같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익숙한 것을 포기한다면 더 많은 길이 열리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이마트에 가는 대신에 시골장터에서 물건을 사고 거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여행지가 살포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건 '현명하게 돈 쓰는 법'과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서만 가능한 일을 하라!' 라는 말에는 거기가 아니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스타벅스'말고 다른 여행을 찾아라는 뜻 아닐까. 

김남희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다.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 위해 아내를 설득하는 방법을 여쭈어보신 내 뒤에 앉으셨던 남성분이라든가 올레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여성분. 좋은 길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 남성분도 있으셨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세'를 여쭤보신 분도 있으셨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앞뒤 추려내면 이것이었다. 

'여행하기 전에는 어떤 생각을 하세요?' 

나도 여행을 미치도록 가고 싶어도 여행 가기 전에는 진짜 가기 싫어죽겠고 내가 왜 이 짓을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왠지 7년동안 여행을 한 그녀라면 뭔가 다른 대답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책에서 자신이 소심하고 까탈스럽다고 과감히 고백하는 그녀니깐 이와 비슷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했던 것도 반쯤은 있었는데 역시나, 떠나기 전엔 내가 왜 이 짓을 해야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안락함을 포기하게 되고 여행이 끄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랬다. 비단 여행 뿐만 아니라 무언가 일을 할 때 항상 나는 그 전에 고민했다. '아, 귀찮아.' '꼭 가야 될까?'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웠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엔 여행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기대했던 일이었고 바랬던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출발할 때 '아, 진주에서 서울까지면 진짜 먼데 꼭 가야 될까?' '나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은데 안 가면 안 될까?' 이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안락함을 포기하고 나섰던 길에서 나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이 시간은 나에게 크나큰 상상력과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존경하고 있었고 한 번쯤 꼭 뵙고 싶었던 분을 이렇게 바로 만나게 된 일은 어떤 몸의 고달픔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간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오늘도 나는 꿈이라는 별을 먹고 한 뼘 한 뼘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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