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으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날이 영향력을 잃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성하고, 교회와 세상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해본 책입니다"
지난 1월, 한국 교회를 "애통한 마음"으로 꼬집은 책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선보인 법학자 김두식 교수. 그는 출간 후 굉장히 바빠졌다고 한다. 독자들로부터 이메일과 전화가 폭주한다는 것. 독자들의 열띤 부름을 받은 김 교수가 지난 22일 밤 서울 명동 '청아람 아카데미'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가장 먼저 그는 이 책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만 그치는 건 아닐까란 고민을 털어놨다. 책이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지만 "우리끼리, 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조그만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이 책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란 의문도 떠오른다고. "예수님도 시작은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었나"란 생각을 하면서도 힘이 쭉 빠진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찻잔 속의 태풍"을 넘어서서 "어떻게 이 범위를 넓힐 수 있을까란 생각을 같이 해주길" 부탁했다.
목사님께 선물하고 싶은, 하지만 못하는 책
그가 독자들로부터 숱하게 들은 말은 바로 "이 책을 목사님께 선물하고 싶다"라고 한다. 하지만 "선물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다고. "선물하고 싶기는 하지만 선물하지는 않는 책"이 된 것이다. 목사님께 책을 드리게 되면 "교회 내에서 전혀 좋을 게 없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덫은 독자만이 아닌 저자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그 역시 목사님들께 책을 드리기가 조심스럽고 목사님들의 눈빛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고 한다. 독자들과 만남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악성댓글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닙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책입니다"란 저자의 말이 겹쳐진다.
"이것이 이 책을 쓰면서 제 마음에 있는 공포, 자기검열입니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이 정도 책을 가지고도,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할까란 두려움. 이런 공포는 어디서 왔을까요? 함께 나누고 싶은 고민입니다."
그는 이 책이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일 뿐이라고 한다. "대단히 특별한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습니다. 평신도들이 똑같이 고민하는 내용, 평소 생각했던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책의 독자나 저자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 교회에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현실. 그는 여기서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한국 기독교"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 기독교는 미국의 아주 보수적인 교단보다도 보수적인 면이 있다.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만들고, 말을 못하게 만듭니다. 아주 상식적인, 기본적인 이야기도 자신 있게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억압적인 사고 구조 안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입니다."
같은 이유로,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한 목회자들도 한국에 오면 배워온 내용들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신학자가 아닌 김 교수가 '감히' 이런 책을 쓰게 것이다.
"오죽하면 저 같은 사람이 나서서 이랬겠습니까. 이런 무식한 사람이 나서서 떠들도록 그냥 놔둔, 이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방치한 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해야 하지요."
이렇듯 지금과 같은 한국 기독교 현실에선 반드시 '써야만 하는' 책이었기에, 거꾸로 말하면 결코 "내가 쓰고 싶어서 쓴 책"은 아니었기에 저자는 "이 책의 인세는 높은뜻푸른교회,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전액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꿈꾸는 교회... 마음이 따뜻해지는 교회
그렇다면 김 교수가 꿈꾸고 있는 한국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교회", "돌봄의 공동체로서 교회"를 강조했다.
"한 장로님이 사정이 어려운 어떤 학생한테 다달이 돈을 대주는 얘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가 2100억 원짜리 건물을 짓는다, 가슴이 따뜻해지는가? 안 따뜻해져요, 이상하게. 아까는 100만 원, 200만 원짜리 얘기고 이건 2100억 원짜리 얘긴데 왜 가슴이 따뜻해지질 않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그는 교회가 할 일을 보험회사와 국가에 내어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 아내와 어린아이들이 딸린 한 교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 교회가 단순히 교인의 장례를 집전하는 것에서만 그칠 게 아니라 남겨진 가족의 생계문제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 이렇게 서로 돌보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교회가 "돌봄의 공동체"이다.
"교회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주면 많이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몰려오는 거고. 실제 초대교회를 보면 전도보다 훨씬 중요한 게 갑자기 몰려오는 밥만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거였어요. 그런 모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교회"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권력, 정치, 돈과 거리를 두는 교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
그는 먼저 어린 시절 소망교회에서 목격했던 한 장면을 회상했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소리가 울려 퍼질 듯한 아주 고요한 예배당, 그 안에서 엄숙히 깔리는 목사님의 설교. 그때 갑자기 예배당 한 구석에서 한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순간 목사님의 일그러지는 표정. 울음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며 설교를 멈춘다. 아기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져 아이를 안고 예배당을 급히 빠져나간다. 김 교수는 이를 "고상한 폭력"이라고 부른다.
"아주 품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폭력적인, 제가 목격했던 소망교회의 고상한 폭력. 그 특성이 이명박 정부로 그대로 옮겨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품위 있게 진행되지만 사람이 죽어나가고, 검찰이 조용히 사람을 잡아가 불구속 상태에서 아주 편안하게 수사를 하고, 사회적 생명을 끊고. 굉장히 위험한 식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상당히 위험한 기초 위에 쌓인 기독교 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대통령이 배출됐지만 이는 굉장히 위험한, 교회와 권력·정치가 결합한 결정적 악례일 뿐이란 말이다. 이외에도 돈과 거리를 두는 문제도 남아 있다. 그는 "국가보다 위험할 수 있는 세력"인 '삼성'을 언급하며 교회와 돈의 문제를 지적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입을 닫아버린 언론에 대해 그는 "도둑이 들면 개가 짖어야 되는데 짖지 않는 상황"이라며 교회는 과연 이와 얼마나 다른지 되물었다.
"신문사는 먹고살기 위해 그랬다,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데 혹시 교회에서 삼성에 대해 설교하는 걸 들어본 적 있나요? 삼성이 교회에 광고 안 내거나 할 일도 없지요. 아무 제약이 없는데도 교회에서는 돈에 대해서, 돈의 위협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습니다. 섹스의 위협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얘기해댑니다. 뭐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 얘기하신 게 훨씬 많은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한다는 거죠."
이렇듯 지금과 같이 권력, 정치, 돈과 결합한 교회라면, 그 위험함에 깨어 있지 못한 교회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교회", "돌봄의 공동체"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안은 '제시되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안은 무엇인가. 김 교수는 "책의 대안 제시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질문·지적을 많이 받지만, 부족한 대안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탁탁탁 하면 탁 되는 해결책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대안이 별로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안은 같이 고민해야지요."
"설교 끝난 후 질문 받기, 지정헌금제도 등 새로운 실험이 필요합니다. 작은 교회공동체부터 실험을 해보는 거죠. 되든 안 되든, 우리 교회가 정말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해보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안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는 "오늘 당장 교회에서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줄 것을 부탁했다. "교회의 현실에 절망"하고 절망하더라도 "재도전의 용기"를 품어줄 것을, '감히' 부탁했다.
"물론 치밀한 기획 없이 시작하면 실수도 많고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실험도 우선은 누군가 용기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