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여졌다.
혹여나 실망하지는 않을까.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친한 친구여서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중에서 
 


나에게 박민규라는 작가는 너무나 친밀하게 느껴져 눈물이 날 지경인 친구였는데, 
막상 보면 왠 중년의 작가가 짐짓 근엄한 체 하며 앉아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다시는 그 책들을 친근하게 읽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과 오랫동안 편지만 주고받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설렘이 뒤섞인 채 홍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에는 쭈뼛쭈뼛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그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면 독특한 안경을 제외하고는 어떤 주의도 끌지 않았을 첫인상으로, 어떤 편견도 주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어수룩한 모습. 
그래서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진행될까?

잔뜩 긴장을 하고 있어 등뼈가 쑤셨다. 나의 친구는 어떻게 말할까? 정말 나의 친구일까? 의례 부자연스러우면서 자연스러운 척 가장되기 마련인 '문화초대석'이란 자리에서 그는 어떤 모습일까? 실망이 커지지 않도록 애써 공격적인 준비 자세로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은 소설 속에서 만난 『핑퐁』의 '못'이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푸쉬맨 소년'처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착하고 여린 내 친구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득의만만하여 고상한 척하는 작가도, 마흔 두 살의 중년의 아저씨도 아니었다.  

그는 차라리 '너구리'거나, '기린'이거나, '슈퍼맨'이거나 '요한'에 가까웠다.

그는 스스로도 세계와 생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계와 생활에 대해 쓰면서
때로는 그 세계로 달콤하고 푹신한 카스테라를 만들어 먹으며 울거나
외계인과 함께 펑~하고 세계를 날려버리기도 하는 사람이었으며,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신춘문예에 수 십번을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콧방귀를 뀌는 열정적 소설가였다. 

진심으로 사람과 세계를 대해고 글을 쓰는 사람냄새가 나는 작가였다. 

그날의 시간들은 단순한 청강 형식이기보다는 대화하듯 질문을 하고 답하는 형식이었고
박민규 작가는 거드름을 피우게 되거나 반대로 취조 당하는 기분을 들게 할 '앉아 있는 자세'를 거부하고
거침없이 일어서 마치 공연을 하듯 이야기를 했다.
그런 방식과 마치 오광록 같은, 그러나 그보다 더 어눌한 말투로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을 말들과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해주었던 것 같다. 
 

그 중 몇 가지가 소설보다 날카롭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전업 작가로서의 생활에 대한 불안함은 없습니까?"
"분명 저도 생활 속에 있습니다. 세계를 극복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글을 계속 씁니다. 겁나지는 않아요. 어떻게든 살 거라는 걸 아니까요. 작가라는 것은 분명 힘든 직업이지만 그렇게 열심이 글을 쓰면 언젠가 세상이 나에게 타협을 해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굵어죽지는 않아요. "


"작가지망생인데요, 저를 위해 조언을 해주세요."
"작가지망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자신감'입니다. 저는 신춘문예에서 떨어질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흥! 내 작품을 몰라보고'하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리고 더 날카로워지세요. 나이를 먹으면 어차피 둥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자신감 있게 글을 쓰세요. 질문하신 분이 마흔 두 살이 된다면 저보다 덜 둥근 작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전 제 경험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쓸 게 없어요. 소재를 어디서 찾으시나요?"
"자신의 경험으로 글을 쓰지 마세요. 우리는 대부분 학교-학원-집-학교-학원-집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6.25에 월남전까지 겪었던 윗세대 분들과 삶의 바운드가 달라요. 가장 안정된 형태의 사회 속에서 천편일률적인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구인을 대상으로 글을 써야합니다. 쓸 것이 없다는 것은 이 세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이 넓은 지구에, 그 수많은 사람들을 두고 쓸게 없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이야기덩어리입니다." 
 


그 말들을 듣기 전에 내가 기대한 것은, 실은 이런 게 아니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실린 작가의 이력을 보면서 줄곧
'내가 지금 이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도 다 삶을 알기 위한 경험일 거야. 지금 먹고 살기 바빠서 허우적대는 이 경험들이 내가 문학을 하는 데에 밑거름이 될 거야. 이 사람도 먹고사는 게 문학보다 백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이일 저일 하다가 30대에 펜을 들고 이렇게 멋진 글을 보여주잖아.'
그렇게, 문학을 하겠다는 내 삶의 목표는 뒷전으로 한 채 뉴스에 나오는 88만원 세대, 청년 실업의 낙오자가 되기 겁이 나서 세상에 타협을 한 채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변명으로 인용한 문장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아픈, 구구절절이 다 옮은 말들이어서 더 아픈 가시 같은 말들이었다. 스스로도 아니란 걸 알면서 억지 부리며 위로를 받으려 했다가 된통 혼이 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마, '저 역시 천편일률적인 학창시절을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9시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야근하는 지리멸렬하고 천편일률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작가님도 20대에 했던 사회 경험들이 글 쓰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나요?'라는 내 스스로 너무 뻔한 질문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렇게 초라한 내 모습을 직면하고 마음이 아파 조금 떨고 있는데,  

슬럼프에 빠졌다는 여고생이 귀여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를 달래주었다.

"저는 30대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신춘문예, 등단.. 이라는 건 석유를 뽑아내는 유전기계 같은 것입니다. 만약 석유를 뽑아냈더라도 땅 속에 묻힌 석유가 얼마 없다면 그건 아무 소용없을 거예요. 반면 썩고 썩어서 석유가 많아지게 되면 내부압력에 의해 유전기계가 없이도 세상으로 뿜어져 나오게 되어있어요. 연륜,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부에 석유가 생기면 그 이야기들이 연료가 되어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

그래, 나는 지금 썩고 있는 거야.

아침마다 만원 지하철에서 낑겨 가다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새벽까지 야근을 한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리며 힘없이 한강변을 바라볼 때마다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빡빡한 생활 속에서 내 존재감도 없이 기계적으로 살다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왠지 눈물이 난다. 비밀기지에 있던 바나나맨처럼 나도 계속 문학만 할 수 있을 거 같던 스무살 그쯤이 그립고, 또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때를 밀어주던 너구리를 박민규 작가의 소설 속에서 만났다.

그래, 그렇게 바보 같은 내 생활이 내 안에 썩고 썩어 글을 쓸 수 있는 연료가 될 거야. 잠시 미뤄둔 게 아니라,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거야. 만약 그냥 혼난 채로 그 시간들이 끝나버렸다면 나는 부끄러워 차마 마지막에 박민규 작가에게 악수를 청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 모든 행사가 정리되고 책에 싸인을 받는 시간에 줄을 설 수 있을 정도로는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줄 선 사람들에게 이름을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성의를 다해 들어주는 그의 앞서 섰을 때, 나는 정말 미련스럽게, 그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힘껏 용기 내어

"저도... 지금은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저도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은데, 제 이런 삶이.. 문학을 귀결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저한테 힘내라고 써주세요."

라는 더 웃긴 소리를 해버렸다.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는데 더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목욕탕에서 때밀이 너구리를 만난 인턴 청년처럼, 분명 아빠같은 기린을 만난 푸쉬맨 소년처럼, 한국에서 수퍼맨을 만난 영어강사 바나나맨처럼, 눈물이 났다. 정말이지, 창피하게.

그런데 다행이, 그는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그려려니……하고 살아. 알겠지?', '불합격!'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울먹이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당황하며 스스로를 믿으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행사가 처음이라는 박민규 작가에게 나는 앞으로 그가 만날 수많은 작가 지망생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 다시 꿈속을 걷는다.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같은 것들을 혼자 학교 뒷산에 올라 조회하는 학생들을 내려다보듯 슬프게 바라보면서도 나는 인간들을 믿는다고, 인간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이든 없어지게 되어 있다고, 우리가 그런 것들을 시시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믿음, 세계에 대한 애정과 신념.
그처럼 나도 밥벌이의 지겨움 속에 있는 생활인이지만 생활에 시간을 내주었어도 영혼을 내주진 않았으니 괜찮다고, 계속 걸어 나갈 수 있다고, 그렇게 내 생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속 언제나 어두운 면만 보어야 했으나 이젠 마음에 빛을 품게 된 여자처럼.

대학시절, 현대문학 시간에 교수님께 들었던 말,

‘문학은 삶을 닮는 총체적인 그릇이다.’

그래서 나는 생을 살고 있고 문학으로 걷는다. 언젠가는 시루 구멍 사이로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했던 내 삶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있는 걸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그의 글을 계속 해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때엔 멋진 콩나물이 되어 다시 박민규 작가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고마워. 과연 박민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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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264 2010-10-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열정, 이런 것들을 놓지 않고 꾸준히 쌓고 쌓고 쌓아간다면, 언젠가 그것이 분수처럼 터져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말로든 음악으로든, 그 어떤 것으로든지 간에 우리의 생 위에 넘쳐 흘러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좋은 글을 쓰시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