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가 처음 발견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그저 침팬지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가 계속될수록 보통의 침팬지들과 다른 보노보들만의 사회적 습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아가 유전학적으로도 두 종은 전혀 다른 것임이 밝혀졌다. 뚜렷한 남성중심의 사회로 약육강식, 상명하복 등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침팬지 사회와 달리 보노보들은 서로간의 유대가 살아있고 약한 동료도 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보노보는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인간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침팬지보다 오히려 유전학적으로 더 가까운 보노보들의 ‘다른’ 세상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오게 된 것 같다.  

 

 우리 사회는 70년대의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고 87년 체제를 맞이하면서 절차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국민들은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그리고 IMF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물질만능’이라는 새로운 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게 되었으며, 그것을 조국교수는 ‘맘몬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했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고용의 불안과 사회양극화 현상은 심화되었고 자본의 논리에 밀려 민주주의는 점차 위축되었다. 노동이나 복지와 같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이슈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진행시켜야 할 이른바 진보진영은 비전과 계획의 부재로 대중들에게 호응과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  오히려 대중들은 스톡홀롬 신드롬에 빠져서 결국 본인들을 망치게 할 성장 제일주의와 효율 만능주의에 대한 믿음을 더욱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 ‘정글자본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비판했다. 정글자본주의는 오로지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싸고 통제가 가능한 노동력을 요구한다. 즉 비정규직,청소년,이주노동자들이 그것이다. 또 정글자본주의와 더불어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서 ‘과잉범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정권이 바뀐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미네르바,언소주 수사,불온서적 지정 및 군법무관 징계-은 아무리 후에 무죄가 선고된다 하더라도 그와 별개로 그 과정에서의 ‘사회적 냉각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런 수사와 처벌 논란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점차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인권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인권이 다수자의 이익과 편의의 틀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때 민주주의는 언제든 다수자의 전제로 변질될 수 있다. 그는 인권은 소수자의 기준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권문제 개선의 제도화에는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므로 우리가 불이익은 참더라도 불의는 못 참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침팬지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하나의 세상에 길들여져서 살아왔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강연을 마치면서 조국 교수는 그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20대들에게 ‘보노보 세상’과 같은 다른 세상, 다른 꿈을 마음껏 꾸고 그에 대한 제도화를 이뤄가야 한다고 당부 아닌 당부를 했다. 사실 누구나 어떤 세상이 이상적인 것인지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넘치는 사회, 경쟁만이 전부가 아닌 사회, 물질보다 소중한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  


'다른 세상을 생각하고 다른 꿈을 꾸자. 보노보 세상을 꿈꿔라.' 라는 말은 듣기에는 참 쉬워보이지만 그만큼 공허하게 들릴 수 도 있는 얘기다. 사실 아무리 다른 세상을 꿈꿔봐도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너무 많이 경험했으니까 말이다. 특히 나와 같은 20대들은 현실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을 늘 안고 산다. 분명히 지금 이런 세상은 옳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데, 그럼 정말 세상이 달라질까 하는 의구심, 그런다고 세상 안 바뀐다는 어른들의 얘기에 대한 불안감, 당장 내 눈앞에는 굳게 닫힌 취업문.  


 그래서일까,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 묻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에 대한 조국 교수님의 대답은 의외로 엉뚱한 것이었다. ‘세상이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쉽게 분노하지 말고 억울해하지도 말고 그저 길게 보고 체력을 키우고 있으라’는 얘기였다. 


 맞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만 안 그러면 불안하다는 것'- 결국은 이것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조금씩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 갈수록, 보노보 세상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조금씩 조금씩 세상은 변해갈 것이다.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마이클 잭슨의 노래 <man in the mirror>의 가사처럼 변화는 우리 자신에게서,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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