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그가 내 안에 가득하다. 밀물이듯이
밤새 내 머리맡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치 터질것만같이 가슴이 벅차 오르다니
내가 그의 거처가 되고 그릇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의 이름만 불러도 내 눈에 금세 눈물이 넘쳐 흐름은,
이미 그가 내 안에 아침 꽃잎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까닭이리
'아침 꽃잎'-양성우-
계화리 사람들과 바다의 마음은 이 시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밤새 별고 없었나, 오늘 갯벌에는 어느 새가 찾아오려나,
간밤 물 머금은 그것들은 얼마만큼의 생명력을 보여주며 눈에 뜨일까.......
계화도 사람들이 이 아침에는 어떤 가슴으로 눈을 떴을까,를 생각하니 모든 것이 먹먹해 보입니다.
가야할 곳을 잃었음은 부표의 상실과 같지 않을까요.
멀리 물러난 바다를 앞에 두고, 잡초가 무성할 갯벌을 둥둥 표류하는 그네 가슴은 순덕이모의 말대로 돌무덤입니다.
새만금 간척지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논란입니다.
환경 단체는 물론이고, 육지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그 문제는 간간히 내비쳐졌지요.
사업의 완공이 다가올수록 점점 다양한 목적들이 그곳을 향해 이빨을 드러냅니다.
농지를 떼어달라, 공장부지로 쓰게 해달라, 미군부대에 우선권을 달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정부의 간척사업 계획서에는 파급효과들만 줄줄 늘어져 있습니다.
누구의 문제를 막론하고 근본의 부정 위에 세우는 것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새만금 간척지'라는 허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귀신을 향해 울부짖는 것은 투쟁으로 인정받을 수도, 극복이냐 좌절이냐를 가릴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이 긴 투쟁은 맥없이 기억되겠지요.
뚜렷한 명분도 없는 썩은 부표는 굴러들어와 박혀있던 우리의 부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어떠한 신념으로 누구나가 바라는 행복을 어그러뜨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새만금은, 이용해야할 국토이기 이전에, 하나의 삭막한 사업이기 이전에,
옛부터 지켜왔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은 계화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아닐까요.
'살기 위해 살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이강길 감독님의 말씀이 마음에 닿습니다.
펄이 없는 계화리 사람들의 '살기 위하여'가 다시 그레질을 하는, 그날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