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안. 밤.
 
(off sound) "(앵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마지막 남은 새만금의 물길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딸(11)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고, 홍선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tv를 바라보고 있다.
 
홍선장 : 어민은 사람도 아니란디. 아가야, 어민의 딸은 사람도 아닌거여.
홍선장 :  니는 커서 공부 잘 해두 판사 같은거는 절대 되지 마라.
딸 : (관심도 없이) 판사가 뭐야?
홍선장 : 니가 판사 된다고 하면 내가 너랑 확 연을 끊어버릴텡게.
딸 : (바다 그림만 열심히 그린다)
홍선장 : 그려,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그라. 그라서 세상에 대한 비판 좀 하고 살아라.  
딸 : 시인이 뭐야? ... 난 바다가 좋단게! 
   

 
다큐는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한줄기 빛 같은 거다.
그래서 투박한 질그릇에 담겨있더라도,  진실한 삶의 내음이 담긴 인간의 냄새를 맡고,  온기를 느끼는 우리는 감동하게 되는 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0년이 넘게 싸워온 그들의 일은 그저 신문 한 귀퉁에서 슬쩍 보고 넘어가는 무관심 사건이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중인데,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고, 어민들의 터전이 막막하다 라는 그저 피상적인 정보 뿐이었다.
그건 그저 그들의 일일 뿐, 내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그저 창문밖 불구경이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게 전복된건, 바로 작년 촛불때였다.
꾹 참다가, 도저히 그대로 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듯 해서 호기심 반 거리에 나갔다가 첫날 물대포와 방패세례에 호되게 당하고 줄기차게 나갔었다.  


그저, 말도 안되는 꼴통들의 짓거리가 꼴보기 싫어 소수정당에 투표를 꼬박꼬박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 촛불은 충격이었다.
평생 책상머리에서 배운것을 거리에서 단 며칠만에 다 배워버렸다고 해야 할까...
 
헌데,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이면, 나와 상관없는 것은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 세계 4대 갯벌인 서해안.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이후 그 갯벌은 육지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필터였고, 소금과 어패류, 생선을 주던 생존의 일터였고,
새와 게, 조개와 미생물까지 동거동락하던 생명의 보고 였었다.
 
헌데, 일제의 식량 수탈을 위한 간척사업으로 시작해서  박통의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간척, 그리고 현재의 시화호, 새만금 등 부동산 간척까지... 
 

도대체 이 매번 반복되는 약자에 대한 수탈과 핍박의 싸이클은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터져버릴듯 답답했다. 
 

전국 300만을 기록한 메가톤 흥행작 다큐  '워낭소리'는 시골에 대한, 늙어감에 대한, 노부부에 대한, 정서적인 울림으로 따듯했었는데,
이 영화 '살기 위하여'는 따듯하기보단 한 여름에 사막에서 팔팔 끓는 가마솥에 맨손을 넣는 느낌이랄까, 먹먹함 그 자체였다.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과 리더들의 정치적 술수에 대한 분노, 생명에 대한 엄숙함 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울렁거리고, 호흡도 쉽지 않게 만드는 꽤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불편함이 엔딩크레딧에 이르면 죽어버린 갯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막걸리 한잔에 활짝 웃는 이모들의 얼굴로 인해 화악 따스함으로 변해간다. 
 

바닷물이 없어 말라 비틀어 가는 조개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제 몸의 수분을 빼내며 끝까지 버텨가고 있듯이,
달랑 보상금 몇백만원에 평생 해온 일자리가 없어지고, 새와 조개들과 노닐던 천국이 없어지고, 동료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더라도, 
 

살기 위하여, 죽음 속에서 생명을 일으켜야 하고, 울음 속에서 웃음을 터트려야 하고,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와 여전히 함께 버텨야 하는,
바로 우리의 이모들, 형님들처럼 말이다... 
 
지금 이 땅이 바로 이 새만금이다.
촛불이 그랬고, 용산이 그랬고, 대운하도 그렇고, 경제불황도 그렇고...
 
말라 비틀어진 갯벌에서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백합조개처럼, 우리 모두는 지금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들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삶에 위기가 닥치면 생명체는 저항을 하게 마련이고, 진화를 통해 변화하게 마련이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니까...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바닥을 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을 꺼다.
 
' (남들을 죽여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 가 아닌,
'(남들과 함께 제대로) 살기 위하여'
 
잘 먹고 사는게 행복이 아닌, 제대로 사는게 행복이 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판사가 아니라 시인이 된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사랑으로 넘치게 될까...

[출처] [시인이 된다면...] 새만금 다큐 '살기 위하여' |작성자 mov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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