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행사에서 세 명의 작가를 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는 여간해서는 오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세대도 아니고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마치 일부러 그렇게 고른 것처럼 세대를 넘나든 만남이었기에 더욱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일찌감치 두 작가의 책을 읽었으나 리뷰를 쓰는 속도가 책 읽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요즘인지라 읽기라도 했으니 다행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 행사에 나갔다. 다른 한 분, 평론가인 그 분의 책은 감히, 읽어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내게 평론은 너무 어렵고 높은 벽이다.-.-;)  

작지만 예쁜 북카페 <토끼의 지혜 홍대점>에서 가진 이번 행사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도서출판 문학동네가 주최한 행사였다. 작년 말에 평론집을 낸 신형철 평론가와 이미 열권이 넘는 책을 펴냈으나 내겐 너무나 생소하여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했던 한창훈 작가, 그리고 이제 겨우 한 권의 소설집을 냈을 뿐이지만 많은 독자와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신예 작가 염승숙과 대화를 갖는 시간이었다. 평론가이신 신형철 님의 질문에 두 작가가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세대가 다르고 추구하는 문체도 달랐지만 두 작가의 작품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아주 만족스런 행사였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웃음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 한창훈

리얼리즘 작가로서 농경사회의 작품이 많고 그동안 펴낸 책들의 70% 이상이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리얼리즘 작가,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이으며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한창훈 작가는 현재 살고 있는 거문도에서 1박 2일을 투자하며 독자와 만남을 위해 올라왔다. 거문도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데다 3년 전에 아예 그곳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덕분에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
나는 여기가 좋다』를 읽으면 그곳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63년 생으로 놀면서 일하기 좋아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는, 언제쯤 고향에 정착할 수 있을까가 인생의 화두였다고 한다. 등단하고 펴낸 책만 해도 열권이 넘는 중견 작가이지만 책으로 재미(!)를 못 본 탓에 지난 작품집인 『청춘가를 불러요』의 작가의 말에 ‘이 책이 잘 팔리면 딸에게 피아노를 사 주겠다’까지 했음에도 책이 안 팔려서 다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딸에게 피아노를 사줬다며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약간 야한 소설인데 그것에 승부를 걸어보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한창훈 작가는 남들보다 늦게 문학을 시작했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습작도 많이 했으나 쓴 글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소설 수업을 받았을 때 그는, 숙제로 단편소설을 써서 제출하라는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단다. 남들은 모두 괴로워했지만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소설 써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얼마가지 못했다. 막상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하니 한 줄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소설은 그저 잘 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언어로 글을 써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우연히 이문구 선생의 『관촌수필』을 읽게 되었고 백석의 시집과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며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한창훈 작가를 보고 다들 이문구 선생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고 한다. 그 점에 대해 그는 계보 같은 것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다른 작가의 책을 읽고 감동하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박상룡 작가의 글이나 박경리 선생, 체홉과 칼 세이건의 글들이 좋았다고 했다.

한창훈 작가의 글엔 리듬감이 있다. 시적이고 아름답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사용한 고향의 사투리가 다른 지방의 사투리보다 리듬감이 있어서 그렇단다, 그 언어에 어렸을 때부터 노출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것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다보니 리듬감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언어의 맛이란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 문장을 표현하더라도 3~40년이 지나 그 문장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게 진정한 언어의 맛이라고 한다.  

 


 

그렇듯 그의 작품에는 사투리가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사투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쓰는 이야기들이 변방의 이야기들이고 그걸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레 사투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한창훈 작가의 작품에는 섬 이야기와 위트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나는 여기가 좋다』에 수록된 단편들 중 표제작과 「섬에서 자전거 타기」마지막에 단편인 「아버지와 아들」은 연작으로 보인다. 그렇게 쓴 의도를 물어보니 그는 얼떨결에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쓴 작품을 평론가들은 항상 정리를 잘해준다며 웃었다. 그가 생각하는 섬은 제주도와 같은 큰 섬이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5분 정도의 거리에서 바다가 보여야만 섬이라고 할 수 있단다. 그런 섬에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작처럼 보일 뿐이다. 더구나 섬 생활은 고달프다. 하루 종일 일을 한다.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고 버티기 힘들다. 그런 삶을 섬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버티는가? 바로 웃음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웃는다.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웃음, 별 것도 아닌 것을 깔깔거리는 요소로 만든다. 그게 강할수록 슬픔의 강도는 강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최근에 그는 80년대에 등단한 사람으로서 보편적인 책무를 떠나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즘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문화가 비슷하여 글들도 비슷한데 그들이 한 자리에서 글을 쓰지 말고 여기 저기 방방곡곡에 흩어져서 각기 다른 내용의 개성적인 글들을 썼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누가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은 작가, 염승숙

1982년 생으로 80년대 작가군인 한유주, 김애란, 정한아와 같은 또래이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른 형식의 소설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염승숙 작가는 어릴 때부터 문예반 활동을 했지만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이상하게도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고 한다. 소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수능 후에 하게 되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공부보다 분과 활동을 하며 각자 쓴 소설에 대한 합평하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문학에 글 잘 쓰는 작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들이 김소진, 최인호, 오정희, 전상국 같은 작가라고 한다.(아, 물론 한창훈 작가도!^^)

신형철 평론가는 언론에서 최근 출간된 첫 소설집『채플린 채플린』을 두고 환상적인 소설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그의 작품을 보면 새롭긴 하지만 전통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염승숙 작가는 그런 반응에 대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현실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현실의 절망감을 극대화 시키다 보니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갔을 뿐이며 환상 속에서 현실의 자기 위치 발견하고픈 욕망이 커진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염승숙 작가의 어휘를 보면 젊은 작가답지 않다. 낯선 단어들이 많이 보인다. 그 점에 대해 염승숙 작가는 소설을 읽거나 공부할 때 낯선 단어를 발견하면 꼭 적어두고 써먹을 생각을 했단다. 그게 낯설다는 것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알았단다. 학교 다닐 때부터 유별나게 단어에 집착했는데 그래서인 것 같다고 했다. 소설 습작 시절부터 국어사전을 끼고 살았으며 적재적소에 발견한 단어를 넣었을 때 만족을 느끼게 된다며 웃었다.

이번 그의 첫 소설집은 문학지에 실린 순서대로 묶여 있다. 그런 까닭에 첫 단편에 대한 말들이 많다.(뭔 내용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실린 덕분에 염승숙 작가의 첫 단편에서 보여준 문체와 그 이후에 나오는 작품들에 쓰인 문체의 변화를 볼 수 있어서 독자나 작가로선 오히려 잘 된 셈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게 농담이라고 했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 행복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래서 소설 쓸 때도 재미있게 쓰고 싶었단다. 표제작인 「채플린 채플린」이 그렇다. 채플린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는 경외감이 들었다고 한다. 목소리를 배제하고 동작하나에 울리고 웃기는 채플린을 보며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쓴 것이다. 그는 채플린처럼 웃음을 위한 웃음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염승숙 작가는 첫 소설집을 묶고 보니 이렇게 밖에 쓰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단다. 첫 책을 내고 스스로 혼란스러워하며 부족함을 확인하느라 그 후에 다른 소설을 한 편도 못 썼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누가 봐도 재미있는 이야길 써보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몰락의 에티카』를 펴낸 신형철 평론가는 좋은 평론이란 그 작품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서 작가가 얼마나 잘, 호소력 있게 글을 썼는가를 짚어내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평론가가 되겠다며 행사를 마쳤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흘렀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로 인해 ‘벌써 끝났어?‘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품에서와 그다지 차이 없이 위트 있는 한창훈 작가와 의외로 차분하게 시종일관 웃으며 말도(!) 잘하던 염승숙 작가, 그리고 너무나 매끄럽게 진행을 해준 신형철 평론가, 각기 세대가 다름에도 너무나 잘 통하던 대화들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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