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호(號)가 없다. 난체하는 사람들이 먼저 짓는 것이 호인 세상에 리영희 선생은 그 흔한 호가 없다. 스스로 짓지 않으셨으리라. 설혹 지었다해도 앞다퉈 새기는 모습은 저서의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 행위조차도 허영이라고 보셨던 것일까? 그 만큼 자신의 삶에 철두철미한 사람은 흔치 않다. 선생의 평전을 읽으며 내내 남아 있는 것은 그 철두철미함이다. 천성이 그러한 사람도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 도 있겠지만, 대개 사람은 어려움에 빠지거나 유혹이 있을 때 자신에 대한 철두철미함이 와르르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것이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와 역사의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선생의 지사적 삶에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무너짐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이 선생이 살아온 궤적이 필부들과 다른 이유가 아닐까? 어쩔수 없이 선택한 군대시절에 선생은 그 지조를 지키는 계기를 만난다. 그것은 술자리에서 있었던 기생과의 일화이다. 그 명민한 기생은 호기를 부리려는 선생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선생은 그 일을 통해 전존재가 내면에서 산산히 부셔저 내리는 심정을 감싸안고 인간적으로 더욱 숙성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7년간의 군생활, 사실 전쟁통의 군대라는 것은 온갓 부정가 비리가 만연했으리라. 그 속에서 자신을 다잡고 철저히 개인의 일에 매진하는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것이다. 그만큼 선생의 픔성은 특출났다고 본다. 제대후의 삶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요, 형극의 길이다. 시대의 부름과 역사의 격동에서 가련한 한 인간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1인분 만큼의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다짐과 실천은 특별하다. 선생의 그것은 단지 지사적 객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대항하고 민중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커다란 시각으로 견지되었다. 선생은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아 주야로 획득한 어학, 글쓰기 실력으로 누구보다 빠르고 치밀하게 세상을 앞날을 예측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필봉을 휘날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귀감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필연적으로 권력자들의 미움과 시기를 동반한 강한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그 탄압은 본격적으로 박정희정권때부터 시작하여 군부정권 30년 내내 계속된다. 투옥과 해직을 반복하는 와중에 생계를 꾸리기 위한 선생의 일은 지식인으로써 자신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다. 철저히 지식인됨을 자각한 선생의 각오와 생활에 대한 자세는 더욱 견고해진다. 가히 철옹성같은 성정을 가꾸기에 이르는 선생이다. 탄압과 더불어 선생의 기자로써의 예리한 감각, 정세에 대한 탁월한 분석들은 내외의 관심을 받게되고 지천명에 이르러서는 사상의 은사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화갑을 지나면서 선생은 우상과의 싸움을 평생했지만 스스로 그것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자각하고 철저한 반성과 회한의 시간을 갖는다. 어느 정도의 명성을 획득한 사람들이 나이을 먹을수록 눈앞의 그것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말년을 그야말로 추하게 보내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생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반성과 연구에 게을러하지 않는다. 억세고 끊임없이 부딪힌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좀 더 부드럽게 사고하고 쓰자는 속내를 많이 드러내고 있다. 어느덧 병약해진 자신을 돌아보며 선생은 자신의 역할은 이제 다 되었노라 선언한다. 이제는 후대의 몫이 남아 있고, 자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면 되는 것이라고. 부드러움과 강함이 이토록 적절히 조화된 예는 매우 드물다. 선생이 일생의 스승으로 삼은 뤼쉰과 장일순 선생들 처럼, 아니, 선생은 어느 면에서는 그들을 뛰어넘으신다. 누구의 말처럼 종교인이 아니면서도 여는 종교인보다 더 뛰어난 깨달음을 보여주시는 선생이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써의 선생 같은 역할을 맡는 사람이 앞으로는 나오기 힘들것이다. 그것이 서글퍼 저자인 김삼웅선생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저자의 노력으로 선생의 삶과 더불어 압축된 현대사와 잘 모르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한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육성으로 행한 현정부에 대한 매서운 질타는 그들에게 뜨금함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또한 현실에 안주하고 욕망에 들끓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깨우는 사자후로써 한반도에 메아리쳤다. 그야말로 마지막 가시는 그날까지도 시대속에서 선생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셨다. 이 위대한 삶을 산 거인은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씀을 힘겹게 하셨다. 그 말씀을 아로새겨 최소한 불의에 타협하거나 욕망의 용광로를 끓어 안는 짓은 안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