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백승남 지음 / 예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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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이 말은 도덕 교과서에서 나올 만큼 낡고 닳은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청소년기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과 성난 듯 거칠고 세찬 물결' 같은 청소년기는 불안하다. 그들 안에 있는 본성을 제어하기에 그들의 이성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세상은 낯설고 매혹적이다. 발 한번 잘못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듯 위태롭다. 이 소설은 그 불안함을 우리의 전통신화를 빌려와서 보여주고 있다.

서양 신화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흑문도령이니 흑수문장, 자청비라는 신의 이름은 낯설고 어색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에게 조금 친근함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신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생은 나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만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검은 수첩을 발견한 ‘나’는 그 후로 자신 안에 새로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수첩은 문신, 즉 명계의 문지기 신이 놓쳐서 이 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나’가 거울 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뒤부터 ‘나’는 문신의 주인이 되고 문신은 ‘나’의 명령에 복종하게 된다. 나의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는 힘, 그 덩어리는 정의의 사도도, 악의 화신도 아닌 나의 상태나 감정에 따라 선한 일에 쓰이기도 하지만 악의 도구로도 쓰인다. 나는 그 덩어리의 부추김으로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고 지극히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특징인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자아를 검은 수첩(괴물)으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무협지나 판타지, SF소설을 즐겨 읽던 ‘나’는 마치 판타지소설의 주인공인양 그 폭력의 세계에 빠져든다. 문신의 이름인 흑문도령은 나의 불온한 기운을 감지하면 ‘나’를 화나게 한 대상(선생이나 친구 등)에게 화를 입히게 한다. 말로써가 아니라 ‘기’로 명령체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검은 수첩을 손에 넣은 뒤부터 몇 배의 힘을 가지게 되어서 손길 한 번, 발길 한번에 상대방은 만신창이가 되며 곤두박질치곤 한다.

한없이 강해지고 싶은 욕망은 결국 나쁜 녀석을 손 봐줄 때면 자기 안에 감추어진 엄청난 에너지를 표출하게 만들고 점점 나는 반 친구들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나’가 점점 강해질수록 반면에 문신은 점점 약해진다. 내가 강해지는 건 내 안에 있는 힘, 덩어리(검은 수첩)가 계속 유혹하는 것이고, 그 힘의 정체는 이제 괴물이 되어서 ‘나’를 부추긴다.
 “넌 신의 아이야. 세상의 악을 다스리도록 신이 너를 선택한 거라고”
라면서... 그것을 안 문신은 말한다.
 “빛에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강한 힘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대왕님 말씀이야. 넌 원한  만큼 힘을 얻었지만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할 지도 몰라. 더 늦기 전에 그걸 돌려주고 날 놓아주지 그래.(P71)

그러나 '나'는 검은 수첩을 손에 쥔 뒤부터 자신 안에 있는 괴물 같은 힘의 정체가 어디서 온 것인 줄을 알기에 아직 버리고 싶지 않다. 그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악의 무리를 응징하는 고독한 기사가 되어 썩은 세상에 홀로 저항하는 무림의 떠돌이가 되어 나는 창을 던지고 칼을 휘두른다”(P75)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법. 폭력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 병원에서 자기처럼 신의 도움을 받고 있는 완수형을 만나게 된다. 그 형을 만난 뒤 나는 검은 수첩을 문신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내 안의 덩어리, 그 괴물은 ‘나’를 떠나기를 거부한다. ‘나’는 검은 수첩만 있다면 ‘내’ 안의 에너지가 증폭되는 것을 느끼지만 그 에너지는 결국 자기를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감지하고 떠나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선 자신과 괴물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폭력배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과 도전을 받지만 ‘나’는 그 괴물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결국 그 힘이란 자아와의 싸움이다. 내 안의 덩어리의 실체는 주체할 수 없는 10대의 광기, 폭력성,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원초적인 본능 같은 것이다. 아직 이성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청소년기의 본능은 이성적인 인간과 대립하면서 지독한 통과의례의 한 과정을 보낼 것이다. 이 소설의 ‘나’는 덩어리의 유혹을 이기고 자유의지로 자신을 선택한다. 그 자신이란 ‘신의 아이’로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의 아이’인 것이다.

이 소설엔 주인공의 이름이 없이, 그저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나’로 서술된다. 작가는 ‘한 순간 삶의 균형 감각을 잃고 헤매다가도 다시금 비약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15세의 청소년들이 이 소설의 ‘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안에 또 다른 나,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부분에서 중간부분까지는 리얼하게 묘사된 폭력과 흑문도령, 검은 수첩에 대한 묘사가 너무 섬세해서, 아무리 판타지를 차용했다고는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결국 자기 안의 또 다른 ‘나’인 괴물(즉 본성, 충동성 등)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버티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제와도 잘 녹아들어 감동을 준다. 무협이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또 다른 흥미를 갖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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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2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내용이군요~~~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카라 2007-11-2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순오기 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다니요^^
사고 싶은 책을 공짜로 살 수 있게 되어서 참 기쁘네요. 알라딘은 잊을만 하면 1년에 한 두번씩 이렇게 기쁨을 주는군요. 더 열심히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듭니다.ㅎㅎ
저도 순오기님의 리뷰를 보고 새로운 책 소개를 많이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댓글도 달아 주시고, 기쁜 소식도 전해 주시고... 행복하고 따뜻한 겨울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