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열 여섯의 아이들은, 17세기 조선시대 춘향이와 이몽룡이처럼 달밤에 취해 사랑을 나누며 황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 아니다. 굴러가는 가랑잎에도 허리를 꺾으며 웃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구도자일 수도 있는, 지나치게 가볍거나 지나치게 무거운 극점에 있는 나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규칙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제어할 수 없는 뜨거운 피를 오직 미래를 담보로 제물로 삼고 있다. 공부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기성품처럼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대량 생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모범생이 될 수 없는 아이들은 일탈을 꿈꾸며 규범 밖에서 맴돌고 있다. 누군가 봐주기를 기다리듯이...  아니, 우리도 살아있는 생물체라고 절규하고 있다. 그 절규는 노래로, 춤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침묵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사생아로 태어나 외증조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연호, 가수가 꿈이지만 한사코 집에서 반대하는 민기와 현중, 얼굴에 커다란 반점이 있어 점박이, 혹은 달마시안이라고 부르는 공개 입양아 준희. 이들은 환경과 처지는 다르지만 모두 16살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탄하거나 찬란하지 않다. 한없이 비루하고 위태롭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단 한번의 실수로도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할 것 같은 아찔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환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꿈을 찾아 고뇌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삶의 위대함이란 이런 비루함 속에서 오히려 보석처럼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사생아로 태어난 연호는 자기보호 본능이 누구보다 강하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싸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타인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그런 연호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차라리 애처롭다. 그러나 연호가 마음문을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으로 나올 때, 세상은 그리 삭막한 곳은 아니었다. 친구가 있었고, 연호의 꿈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은 꿈꾸는 자에겐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각자 환경과 처지가 다른 아이들이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주머니 안에 있는 고래 때문일 것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그 고래가 너무 작아 살아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고,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래는 크든 작든, 어떤 모습이든 간에 꿈틀꿈틀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워 호흡조차 힘든 우리들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주머니 속을 만져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이 만져지는지... 무엇이 만져지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 주머니를 뒤집어서 현미경이라도 꺼내 자세히 관찰해 보라.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작은 고래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인생을 다 살아보기 전까진 우린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것, 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속단하지 말라는 것... 작가는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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