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회복력 시대 -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야생에 자연적으로 매달린 열매를 먹던 원시시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 후, 식량을 집단으로 재배하던 농경사회를 거친 인류사회는 마침내 석탄과 증기기관, 전기의 발명으로 개인의 소유를 중시하는 ‘경쟁사회, 효율성이 중시되는 산업화 사회’로 진입한다.
이 시기를 분기점으로 호모 사피엔스들은 지하에 묻힌 석탄과 석유를 채굴하면서 대지를 휘젓기 시작하고, 동족인 인간도 (인적)자원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서 각종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영구 불변할 것 같은 효율성을 최대의 가치관으로 삼고, 자유시장 지상주의’ 라는 명제 하에 한 몫 단단히 거들기 시작한 이래 지금 21세기까지도 그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석탄, 석유 등 온갖 지하자원을 헤집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주인없는 땅(대지)을 소유하고자 도심 외곽지역 개발이라는 명제하에 멀쩡한 땅과 숲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공장, 주거단지, 대규모 도시를 건설하면서 인류는 자본가, 투자가, 경영자에서부터 부채 상환능력이 많지 않은 일반 서민들까지 모두 참여하여 과도한 생산과 소비로 인해 대기의 흐름과 지구의 환경을 바꾸는 주역이 되어 버렸다.
180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그칠 줄 모르는 ‘소유에 대한 욕망’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 지상주의’로 무장했던 사람들이 2020년을 전후로 불어닥치기 시작한 ‘기대를 훨씬 벗어난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 흑사병 이후로 최대의 사망자 숫자를 기록한 바이러스인 코로나(Covid-19)사태를 목격하면서 웬만한 ’그들만의 대책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구라는 대지에 세웠던 인류의 자랑스런 흔적인 도시 건축물, 도로, 주택 등 각종 사회 인프라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폭염, 폭설, 폭우, 강도 높은 태풍, 녹아내리는 빙하’등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황폐화가 되고 있는 현상을 예전보다 부쩍 자주, 그리고 많이 목격하는 중이다.
석탄과 증기 기관차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 석유, 원자력과 자동차, 무선통신,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혁명을 지나 인공지능,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까지 진행된 초고속 연결 사회인 3차 산업혁명 시기로 진입하는 동안 축적한 경제 시스템으로 최대의 부자가 되었던 이익집단과 조직, 국가들이 이제는 풍력, 태양광 같은 자연이 공짜로 주는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시대가 왔다.
호모 사피엔스로 인해 망가진 지구의 하늘과 대지, 오염된 바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많은 개체로 이루어진 다양한 생물군들은 인류에게 소리없는 외침을 계속 발신 중이다. “이젠 좀 그만하고, 자연의 순리대로 더불어 살자고….그래야 당신들 호모 사피엔스도 우리랑 같이 살 수 있다고…”
책 제목 ’회복력의 시대‘는 단순히 자연의 회복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 속에 오랜 세기 동안 축적되어 각인된 ’효율성 지상주의로부터의 가치관, 이데올로기, 철학, 사상,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 그리고 개인 생각의 관점‘으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한다.
기후변화 혹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환경보호도 중요하고, 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선행이 되어야 할 것은 기존 경제학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세뇌시켰던 ’효율성 지상주의‘라는 인류 스스로 만든 생존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각의 틀’에서 먼저 탈출하는 것이다.
지구의 수 많은 생물군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포식자 집단인 ’호모 사피엔스‘가 하늘과 땅, 지하자원,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동식물을 ’쟁취하고 소유해야 만 직성이 풀리는 자원‘이 아니라, 비록 DNA는 다르지만 그들을 인류와 동급으로 대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이 비로소 ‘우리 인간의 생존을 지원하고 있는 지구의 생명력이 회복될수 있는 전환시점’이 된다.
그런 후에야 ’지구를 지배하고자 했던‘ 호모 사피엔스(인류)들은 효율성 중심의 시장지상주의와 이를 뒷바침했던 기존의 경제학과 사상, 과학적 방법,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의 틀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다.
이에 따른 행동의 결과로 인해 ’인류가 지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선물‘은 ’지구에 적응하는 인류‘가 만들어 가는 ’ 복합 적응형 사회와 생태 시스템‘이라는 이전과는 많이 다른 우리의 새로운 삶이다. 아울러, 그렇게 환경을 같이 만들어가는 동안 ‘지구는 지구대로 스스로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고, ’호모 사피엔스들‘도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회복력’을 갖춘다.
지구가 여러 분야에서 회복력을 상실하면,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인간의 무수한 노력들도 결국에는 무용지물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는 책이다.
총 4개의 장과 13개의 주제, 430여 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의 문명사와 문화사, 과학사, 생명공학, 유전공학, 생태학, 그리고 경제학 등을 수시로 넘나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폭 넓고 깊이 있는 서술로 인해 각각의 페이지 마다 각종 데이터와 인용하고 싶은 문구들이 넘쳐난다.
지은이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을 일컬어 ‘현재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경제. 사회사상가’ 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많은 지식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문장 간의 호흡이 비교적 긴 편이고, 한국어로 번역된 표현이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어 조만간 영문 원서를 구매하여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한다.
한글 번역본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를 접했을 때에는 ‘근거없는 성취감’을 맛보았다. 마치, 지식의 향연이 넓게 펼쳐진 낯설은 댄스장에 들어갔다가 프로 댄서가 추었던 멋진 동작 하나를 제대로 배워 나오는 느낌이랄까…
크로퍼드 스탠리 홀링(Crawford Stanley Holling): 캐나다 출신의 생태학자. 1973년에 ‘생태계의 회복력과 안정성(Resilience and Stability of Ecological Systems)’ 라는 제목으로 자연환경의 발생과 작용에 관한 새 이론을 발표했다. (중략) 그 이론이 바로 ‘복합 적응형 사회.생태 시스템(CASES)‘이다.
- P216
"인류가 모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 다음에 일어날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회복하는 일련의 생리적, 행동적, 생태적, 유전적 변화에 착수하는 것이다…시간과 공간 내에서 환경이 균일할 수록 시스템의 변동과 회복력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 C.S. Holling
- P217
Holling 홀링이 초기 이론을 개진한 후, ‘회복력’은 시스템이 거대한 파괴에 충분히 대응하고 최초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능력으로 잘못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략) 그러나 자연과 사회, 우주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주체는 결코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호작용 자체가 아무리 미미해도 역학을 바꾸기 때문이다.
- P219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듯이, 회복으로 가는 길은 뒤로 돌아가는 법이 없다. 누구도 결코 되돌아갈 수 없으며 감정적으로 그리고 인지적으로 학습된 교훈이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주체성을 향해 전진할 뿐이다.
- P220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기후는 따뜻해 지고 있으며 지구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자연계를 인간 종에 적응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자연계에 적응해야 하는 굴욕적인 운명을 직면하고 있다. 인간 종은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혼란에 대책이 없는 상태다. - P9
평등의 가장 순수한 표출은 법률과 선언을 통한 인정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공감의 행위’에서 비롯된다.
- P353
민주주의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공감하는 문화일 수록 사회적 가치와 통치의 관습이 민주적이다. 문화적 공감력이 떨어질 수록 사회적 가치와 통치 제도가 전체주의에 가깝다.
- P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