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지혜의가르침으로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동정심이라는 내적 충동을 억제하지 않는 한, 타인이나 어떤 감성적인 존재에게 결코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자기 보존이 걸려 있어 스스로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 정당한 경우는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상 내가 동포에게 어떤 종류의 해도 입혀서는 안 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동포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같은 특질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므로, 적어도 동물은 인간에 의해 불필요하게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을 서로에게 맡겼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볼 때, 그 자비로운 손길로 우리의 제도를 바로잡고 그 제도에 흔들리지않는 지위를 부여하여 만약 그러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일어났을 혼란을 예방하고,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인류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나이·건강·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권력을 더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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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문이란 서재에서 출발하여 장터에서 마감되어야 한다는 헤셸의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거꾸로 장터에서 출발하여 서재에서 마감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서재와 장터 사이를 잇지 않는 학문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인류에게 던져진 과제가 있다면, 기도와 생활, 명상과 사회운동의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가 그것이라고 본다. 이 과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인류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처럼, 무너지는 물질문명과 함께 멸종되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 조사하기, 정면으로 대결하기, 자세히 살펴보기, 보이는 그대로 순수하게 들여다보기는 우리에게 현상의 있는 모습을 사실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것의 독특한 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좀더 날카롭 고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 실로 어떤 질문을 하면 안 되는지,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지를 알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보는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은 관찰 대상과 함께 관찰 습관이다. 우리의 시야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 늘 품고 있어야 하는 원리는 아는 것을 볼 게 아니라 보는 것을 알자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분명하지 못하다고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끌어들인 타성의 노예가 되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탓해야 한다. 하나의 단순한 상(像)을 잡기 위해서는 많은 상투어구를 잊어버려야 한다. 꿰뚫어본다는 것은 어제 있었던 어떤 인식들을 길게 늘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올 인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물을 어떤 고정관념에 따라 습관적으로 보는 것은 현재를과거 시제로 보는 것이다. 꿰뚫어본다는 것은 현재 시제로 생각하려는 한시도다.

꿰뚫어본다는 것은 하나의 돌파 작전이다. 그것은 상당한 지적 장비와 위치 이동을 요구한다. 그것은 낯선 것, 전에 못 보던 것,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을 느끼는 감성이 성숙해야 가능하다. 그것은 현상 속에 휩쓸려들어 감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현상과 직접 만나고 부딪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하여 많이 당황하고 어리둥절한 뒤에 비로소 우리는 꿰뚫어보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현상을 안에서부터 보는 것이다. 놀랄 줄 아는 눈만이 사물을 꿰뚫어볼 수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닫혀 있던 것이 갑자기 열리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순수한 지각, 곧 새롭게 보는 것이라야 한다. 똑같은 것을 두 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보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꿰뚫어보는것은 처음 보아 아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말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상황이란 끊임없이 깨어지는 무관심의 파편 조각들 속에 알몸으로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런 가운데서 태연하게있으려면 그의 머리가 돌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내가 도달한 하나의 결심이 나의 실존에 치명적인 것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살아남기 위하여 다음 숨을 들이마실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물음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것이 예언자들을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 문제 같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는 채 죽어갈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네 능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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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에 대한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를깨부수려는 도전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개입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여성해방운동 이전에는 젊고 늙은 모든 여성들이 성차별주의적인 사고를 주입받아 우리의 가치가 외모에만 달려 있으며 어쨌거나 보기 좋아야 하고 특히 남성이 보기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건강한 자존감과 자기애를 키우지 않으면 여성은 절대 해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문제의 본질로 곧장 파고들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건설적인 전략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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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다시 지피려면 임신선 택권을 페미니즘 의제 한가운데에 놓아야 한다. 자신의몸에 일어나는 일을 여성들이 선택할 수 없다면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워진 페미니즘 운동은 임신선택권과 관련된 전반적인 이슈를 그 어떤 개별 이슈보다 우선시할 것이다. 그렇다고 합법적이고 안전하고 저렴한 임신중단 수술을 중점에 두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그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모든 여성이 성교육과 예방의학, 피임약과 피임기구에 접근이 더 쉬워진다면 원치않은 임신을 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임신중단 수술의 필요성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합법적이고 안전하고 저렴한 임신중단 수술을 받는 문제에서 한번 밀리게 되면 여성들은 앞으로 임신선택권과 관련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장을 꺾어야 한다. 임신중단권 반대운동은 근본적으로 반페미니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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