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7시간반짜리 연극 ‘형제자매들’ 연출 레프 도진
[동아일보 2006-04-19 04:43]    
[동아일보]

《‘7시간 반짜리’ 연극이 온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의 ‘형제자매들’. 다음 달 2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이 작품은 국내 공연 사상 가장 긴 연극이다. 휴식시간을 뺀 순수 공연만 6시간. 대학로 연극 네 편을 하루에 보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다. 이 작품의 연출가인 레프 도진(62·사진)은 말리 극장의 예술 감독이자 러시아의 신화적 연출가. 러시아 연극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황금 마스크 상을 3차례나 수상했고 피터 브룩, 피나 바우쉬 등이 받은 유럽연극상과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거머쥔 인물이다. 10시간에 이르는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의 연극 ‘악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 그에게 왜 이렇게 긴 연극을 하는지 e메일로 물었다.》

○ 5월 20일 서울 LG아트센터 공연

―‘7시간 반 연극’은 관객 입장에서도 도전이다.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나?

“요즘 연극들은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모두들 TV의 영향으로 단절적 사고를 한다. 우리는 점점 더 속도전에 휩쓸려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과 예술은 속도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변화의 시기에 예술가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연극인들조차 빨리 생각하는 것 같다. 빨리 생각하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대가 빨라질수록 연극은 점점 더 느리고 진지해져야 한다.”

공연작인 ‘형제자매들’은 1985년 초연 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그의 대표작.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빈곤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민중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느 연극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로부터 개인을 지키고, 타인을 모욕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만큼 스스로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인간도 없으니까. 연극이 하는 가장 값진 역할은 관객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안에서 진정한 인간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인간 본성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인간의 영혼은 연극의 가장 중요한 탐구 주제다. 인터뷰에서 말하기엔 너무 광범위한 주제이고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7시간, 10시간짜리 긴 연극을 만든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다. 영혼은 태어나면서부터 투쟁해야 하며 이는 인간의 숙명이다.”

―한국은 뮤지컬에 밀려 연극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러시아는 어떤가? 연극의 앞날을 낙관하나?

“한국이나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극하기는 힘들다. 매스미디어, 대중문화의 공격을 받고 있고 연극인들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럴수록 자신감을 갖고 저항해야 한다. 연극은 사람들의 영혼에 필요하다는 믿음을 간직해야 한다. 연극에서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연극이란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 매스미디어의 속도공격에 맞서야

―최근 오페라 연출도 활발히 하는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오페라도 공연 예술의 한 갈래이고 위대한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오페라 작업은 연극과 모순되는 부분도 많아 최소한으로 맡으려 한다. 가을까지 오페라 ‘살로메’를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끝내야 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카체리나 이즈마일로바’를 완성해야 한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며 한글 자막으로 대사를 보여준다. 공연은 5월 20, 21일. 5만∼9만 원. 02-2005-011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국내 최장 연극작품은

7시간 반짜리 연극 ‘형제자매들’은 공연 시간이 길다보니 공연 시작 시간을 몇 시로 할지도 고민거리.

LG아트센터 측은 관객의 귀가시간을 감안해 공연을 낮에 시작할 수 있도록 내한 공연 날짜를 일부러 주말로 잡았다. 공연은 오후 2시 반에 시작해 밤 10시에 끝나며 각 3시간인 1, 2부(각 휴식시간 20분 포함) 사이에 1시간 30분의 저녁식사 시간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공연된 작품 중 가장 길었던 연극은 1990년 극단 뮈토스(연출 오경숙)가 창단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 그리스 비극 ‘사람들’로 7시간이었다.

2004년 국립극단의 5시간짜리 연극 ‘뇌우’(연출 이윤택)도 긴 연극으로 꼽힌다. 4막으로 이루어진 ‘뇌우’는 2막 후 35분간의 저녁식사 시간만 한 차례 주어졌다.

국립극단은 저녁시간이 짧은 것을 고려해 미리 잔치국수를 준비했다가 관객에게 제공했다. 같은 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됐던 ‘갈매기’도 3시간 40분으로 비교적 긴 연극으로 꼽힌다.

연극평론가 김윤철 씨는 “러시아나 유럽에서는 아직도 3시간 안팎의 연극이 흔하고 2시간은 짧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연극은 짧아지는 추세다. 공연 예매사이트 티켓링크에 따르면 2002년 연극 평균 공연시간은 1시간 35분, 2003년과 2004년은 1시간 34분, 지난해에는 1시간 29분으로 3년 사이에 6분이 줄었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기획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이라며 “그 시간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져 관객들이 지루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7시간 반짜리 연극 ‘형제자매들’은 과연 누가 와서 볼까? LG아트센터 측은 “예매자는 모두 개인”이라며 “연극 마니아나 연극계 종사자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연극은 14일 현재 총 2000장 중 800장이 예매됐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리스 2006-04-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홈, 예매율이 저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나는 도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로다. --;;;

해적오리 2006-04-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네요...저 연극을 보러간다면...저 날은 극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날이되겠어요.

이리스 2006-04-1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 그러게요, 저 연극만을 위한 날이되겠죠. ^^
 

어느새 내곁으로 미술이 다가왔다
[동아일보 2006-04-19 04:43]    

[동아일보]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현대고교에서 길을 건너 가로수 길을 따라 3분쯤 내려가니 오른쪽에 색다른 플래카드가 걸린 건물과 마주친다. 밖에서 얼핏 보면 가구점 같은데, 전면에 ‘안윤모-도심 속 부엉이전’이란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다.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부엉이들이 숨어 있다. 물론 실제 동물이 아닌, 부엉이를 주제로 만든 회화, 오브제, 조각 작품들이다. 소파 앞에, 책장 옆에 부엉이 그림이 걸려 있다. 입구에는 부엉이 형상의 탁자와 의자세트가, 계단에는 부엉이 조각과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엄갤러리가 ‘찾아가는 전시, 생활 속의 갤러리’의 첫 기획전으로 5월 1일까지 인테리어 회사 ‘이노필’ 1, 2층 이미지숍에서 마련한 전시다(02-533-3453). 화랑 측은 갤러리 밖으로 외출한 미술 작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지만, 관객들은 작품 감상뿐 아니라 작품 배치의 아이디어까지 배워 간다며 즐거운 표정이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미국 뉴욕시립대를 졸업한 안윤모 씨에겐 이번이 19번째 개인전. 갤러리가 아닌 공간에서 전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의 격이 떨어져 보일까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 씨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불손한 거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건 작가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미술이 생활 속으로 더 가까이 파고들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갤러리의 변신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엄갤러리의 경우 한 달 전 아예 신사동 갤러리의 문을 닫았고, 대신 다양한 생활공간을 전시공간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갤러리에서 일반 비즈니스 행사가 열린 것도 주목되는 변화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줄리아나갤러리에서 열린 현대백화점의 ‘라이프 포털 사이트’ 구축 사업설명회가 그것. 이날 행사를 주관했던 웹 에이전시 ‘ID369’의 조영주 대표는 “회의실에서 열리는 딱딱한 사업설명회 스타일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던 중 갤러리를 생각하게 됐다”며 “처음엔 어색해 하던 참석자들도 행사가 끝난 뒤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전시 중인 앤디 워홀, 호안 미로 등의 작품을 감상하며 즐거워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흔하지만 요즘은 상업화랑들도 미술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변신 중이다. 유럽에서 호평 받아 온 유선태 작가의 개인전이 5월 31일까지 열리는 경기 양평군 엘렌 김 머피 갤러리(031-771-6040).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1층 전시장에는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한순간을 길어 올린 회화와 조각 작품이 전시 중이다. 2층 카페에서는 8일 오후 6시 반부터 ‘4인 4색-4월의 향기’ 유료 콘서트가 열렸다. 50여 명의 관객이 둘러앉아 마치 작은 가족음악회 같은 분위기였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 씨 등 4명의 연주자가 곡 설명과 더불어 마음이 담긴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2003년 양평으로 화랑을 이전한 엘렌 김 머피 대표는 “먼 길을 온 관객들이 전시회만 보고 가는 것이 아쉬워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엔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를 마련하고 있다”며 “미술이 삶 속에 깊이 들어가는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갤러리에서의 재미난 이벤트도 있다. 20일부터 5월 31일까지 국내외 작가 12명의 작품으로 ‘P&P 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전을 개최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는 20일 오후 6시 오프닝 행사로 재즈 공연을 연다(02-323-4155). 전시 기간 중 관객들을 위해 어느 것이 사진이고, 어느 것이 그림인지 맞혀 보는 이벤트 행사를 진행하고 추첨을 통해 기념품도 준다.

엄갤러리의 엄은숙 대표는 “미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려면 갤러리라는 수동적 공간에서 관객을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물원 늑대도 ‘상상 임신’
[조선일보 2006-04-19 03:10]    
배 불러오고 젖꼭지 커지고 굴도 팠지만…
올해 초 인공수정 새끼 안들어서 한국늑대 2세꿈 물거품

[조선일보 최형석기자]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한국 늑대 암컷이 ‘상상 임신’을 하는 바람에 2세 출산을 고대하던 관계자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출산에 성공했다면 국내 최초 인공수정 한국 늑대가 태어나는 것이었기에 안타까움은 더 컸다.

이 한국 늑대 암컷은 작년 12월 수컷과 신방을 꾸렸다. 하지만 올해 초 수컷이 갑자기 죽었고, 대공원은 사체(死體)에서 정액을 받아 정자은행에 보관했다. 1주일 뒤 암컷이 발정하자 바로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50일 후 암컷의 배가 불러왔고, 젖꼭지도 커졌다. 호르몬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왔고, 새끼를 낳기 위해 굴을 파는 행동도 보여 임신증상이 뚜렷했다.

그러나 통상 출산 시기인 ‘임신 60~65일’을 넘겨 70일째가 돼도 출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공원측은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배에 새끼가 없었다. 사육장에 CCTV를 설치해 놓고 24시간 교대로 늑대를 지켜봤던 동물원 관계자들은 허탈해했다. 김보숙 종보전팀장은 “늑대는 야생에서 우두머리 암·수 한 쌍만 짝짓기를 하는 습성이 있는데, 임신한 암컷이 죽을 경우에 대비, 다른 암컷이 상상 임신을 해 새끼를 먹여 기를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사육장 환경에서 상상 임신이 일어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인공수정으로 2세 출산에 실패하면서 대공원의 ‘한국늑대 대(代)잇기 프로젝트’도 난관에 부딪혔다. 현재 국내에 있는 한국 늑대는 15마리.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에 암수 한 쌍이 있고, 나머지는 서울대공원에 있다. 이 가운데 9마리(수컷2·암컷7)가 근친(近親)관계여서 교미 대상이 아니다. 남은 6마리(수컷1·암컷5) 중 유일한 수컷은 생식 능력을 잃었고, 암컷 5마리는 사람으로 치면 50세에 가까운 고령이다. 자연교미에 의한 임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공수정도 쉽지 않다. 개과(科) 동물인 늑대는 특성상 배란촉진 호르몬이 듣지 않아 1년에 한 차례 자연배란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미성숙 난자를 배란하기 때문에 발정기라도 수시로 교미를 해야 한다. 한두 차례 인공수정으론 임신되기 힘들다는 말이다.

대공원 관계자는 “한국 늑대 증식을 위한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상상 임신의 충격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며 한숨지었다.

(최형석기자 [ cogito.chosun.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리스 2006-04-1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래 야생 늑대는 상상 임신을 하도록 되어 있었군, 난 그게 더 놀랍다. --;
예전에 우리 원희가 상상임신 했을때도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정말 배도 불러오고 젖꼭지도 부풀어 올랐는데 동물병원 데려갔더니 상상임신이라고.. ㅠ.ㅜ
뭐, 좀 어거지긴 하지만 이거 동물들의 상상력이 이렇게 뛰어난데 인간은 왜 이런가 싶기도 하다. 상상도 본능이라면 더욱..
 

그 식당은 왜 뷔페를 차렸을까
[한겨레21 2006-04-18 08:42]    

[한겨레] 햄버거집 세트 메뉴처럼 ‘묶음 판매’로 다양한 고객을 만족시키는 전략… 소비자들의 메뉴에 대한 최대지불의사가 극단적으로 다를 때 효과 발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묶음판매(bundling)

순수묶음판매(pure bundling)

혼합묶음판매(mixed bundling)

식구들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시장바닥처럼 시끌시끌하고 음식을 하나하나 직접 골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날, 식탁 위에 새로운 메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뷔페 메뉴다. 전채요리와 주요리, 샐러드, 디저트 등을 모두 따로 판매하던 그 식당이 뷔페 메뉴를 추가해 묶음판매(bundling)에 나선 것이다.

실속형과 군것질형 모두 만족

음식을 단품으로도 사먹을 수 있고 뷔페로도 먹을 수 있다면,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뷔페 가격만 내고 더 많이 먹고 양이 적은 사람은 단품 메뉴를 고르지 않을까? 식당 쪽은 괜히 손해보는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식당이 손해 입는 선택을 할 리는 없다. 많은 경우 오히려 돈을 더 벌게 된다. 묶음판매 기법의 마술이다. 사람마다 동일한 상품에 대해서도 최대 지불 의사(reservation price)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단순화를 위해 주요리 스테이크와 디저트 아이스크림 두 가지 메뉴만 있고, 소비자가 뷔페 메뉴를 선택하면 스테이크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내용을 뜯어보자. 그 식당의 뷔페 가격은 2만5천원으로 책정됐다. 단품으로 사는 스테이크가 하나에 2만원, 아이스크림이 1만원이다.

이 식당 고객 중에는 세 가지 유형의 소비자가 있을 것이다. 우선 스테이크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고, 아이스크림은 전혀 먹지 않는 실속형 소비자다. 이 사람의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2만3천원이다. 대신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0이다.

실속형 소비자에게 뷔페 메뉴는 매력이 없다. 2만5천원이나 내고 2만3천원어치의 만족밖에 주지 못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이 소비자는 2만원을 내고 스테이크 하나만 단품으로 사먹으면서 2만3천원어치 만족을 즐길 것이다.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좋아하는 평균적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이 소비자에게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1만8천원,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8천원이라고 하자. 평균적 소비자는 뷔페 메뉴를 선호할 것이다. 하나씩 사면 스테이크 가격도 아이스크림 가격도 자신의 최대 지불 의사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합쳐놓은 뷔페 메뉴의 경우 가격이 2만5천원인데 자신의 최대 지불 의사는 2만6천원(스테이크 1만8천원+아이스크림 8천원)이므로 매력 있는 상품이 된다.

이번에는 스테이크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고, 아이스크림만 좋아하는 군것질형 소비자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의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0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 1만5천원이라고 하자. 군것질형 소비자는 실속형 소비자처럼 1만원에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만 사먹고 만다.

여기서 마술이 일어난다. 분명히 소비자들은 자기 양과 식성을 감안해 메뉴를 선택했다. 그런데 묶음판매를 할 때 식당은 단품 판매 때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묶음판매는 이 세 명의 소비자를 모두 잡는다. 결국 식당은 주요리 하나, 뷔페 하나, 디저트 하나를 합해 모두 5만5천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모두 단품으로 판다면, 앞의 실속형 소비자와 군것질형 소비자는 잡을 수 있지만, 평균적 소비자를 놓쳐 매출은 3만원에 그치게 된다. 평균적 소비자의 최대 지불 의사를 각각의 상품 가격이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품 판매만 하면서 평균적 소비자까지 붙잡아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스테이크 1만8천원, 아이스크림 8천원으로 내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평균적 소비자에게서 매출 2만6천원, 실속형 소비자에게서 1만8천원, 군것질형 소비자에게서 8천원을 얻게 되니 모두 5만2천원의 매출이다. 여전히 뷔페를 추가했을 때보다 적다.

묶음판매에는 순수묶음판매(pure bundling)와 복합묶음판매(mixed bundling)가 있다.

앞의 식당 사례는 기존의 단일 상품 판매도 병행하는 복합묶음판매의 경우다. 햄버거집의 세트메뉴가 대표적인 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따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세트메뉴로 주문하면 두 개를 합친 가격보다 싸다.

어디서든 다양성은 풍요를 부른다

순수묶음판매는 단일 상품 판매를 하지 않고 묶음판매만 하는 경우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처음 개봉됐을 때, 배급사는 <거티의 양말 대님>(Getting Gertie’s Garter)이라는 무명 영화와 함께 묶어 극장에 제공했다. 둘 중 하나만 상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게 순수묶음판매 사례다.

언제 묶음판매 전략을 써야 성공할 수 있을까? 묶음판매는, 소비자가 판매 상품들에 대해 갖고 있는 최대 지불 의사가 서로 역의 관계에 있을 때 판매자에게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햄버거를 좋아하는 소비자는 감자튀김을 덜 좋아하고,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햄버거를 덜 좋아한다면 묶음판매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햄버거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감자튀김도 좋아하고, 햄버거를 덜 좋아하는 소비자가 감자튀김도 덜 좋아한다면 묶음판매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묶음판매 전략이 기업가에게 추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위에서 든 실속형이나 군것질형같이 극단적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풍요를 부른다. 사회에서나 경제에서나, 생태학자에게나 장사꾼에게나 마찬가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리스 2006-04-1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묶음판매.. 다 알면서도 당하는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_-;;
 

책의 날은 ‘책 공원’에 놀러오세요
[한겨레 2006-04-17 22:06]    

[한겨레] 책이 공원으로 나왔다.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만든 공원인 ‘책테마파크’(사진)가 22일 경기도 성남시 율동공원 안에 문을 연다.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책테마파크는 ‘책의 날’을 하루 앞둔 22일 공식개관하면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인다. 대표적인 출판인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도 성남 북테마파크 개관에 맞춰 이곳에서 올해 책의 날 주행사인 ‘북크로싱’ 이벤트를 연다.

22일 개관하는 북테마파크는 한마디로 책을 주제로 꾸민 공원이다. 1500평 규모인 이 공원은 8가지 주제로 공간이 구성됐다. 책카페를 비롯해 명상공간과 야외공연장, 산책로, 상징조형벽화와 진입부 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이란 주제를 공간에 표현했다. 개관기념행사로는 22일 오후 6시부터 기념 콘서트가, 23일 오후 6시에 어린이 뮤지컬 <책키&북키>가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또 인형극 <두꺼비 능선> <강아지똥>을 비롯해 마술쇼, 종이접기로 책만들기 등의 행사도 있다. 문의 (031)708-3588, 708-9088.

책의 날을 맞아 한국출판인회의와 인터넷사이트 네이버가 함께 마련한 ‘북크로싱’ 행사는 토요일인 22일(오후 3시30분~6시)과 일요일인 23일(오후 2시~17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북크로싱이란 사놓고 읽지 않거나 다 읽은 책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누는 운동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출판인회의쪽에서 운동 정착을 위해 신간책 1만5000권을 특별히 1천원에 판매한다. 이 책을 1천원이란 헐값에 사는 대신 다 읽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나보내는 것이 조건이다. 수익금은 어린이 도서관 건립에 쓸 예정이다. 또 네이버 사이트에 별도 사이트를 마련해 이 행사 참가자들이 읽은 뒤 날개를 달아준 책들이 다른 주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네티즌들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리스 2006-04-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은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라는 조건이 이행되는지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만 드네.. -_-;;;

라주미힌 2006-04-1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뢰겠죠 뭐. 그냥 신뢰. ^^

이리스 2006-04-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 돌아오지 않는 우산처럼 될까봐 걱정되어서요. -.-

Koni 2006-04-1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행사는 아무래도 부모와 아이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아이 눈앞에서 나쁜 짓을 하지는 않겠죠.

이리스 2006-04-1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 / 그.. 그렇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