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은주 공연 관람. 기본살풀이군무-승무-시화무-금선무-태평무-한량학무-살풀이춤 순서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여체의 굴곡과 그 움직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알헨틴 땅고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 전통춤을 대하니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공연복이었다. 한복 치마의 미학을 감히 부정하겠느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체를 쌀포대 같은 걸로 무자비하게 뒤집어 씌워놓았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잘록한 허리의 우아함을, 탱탱한 엉덩이의 역동성을, 종아리의 날렵한 곡선을 밝은 세상에 드러내는 게 용납되지 않았던 금욕적 사회, 살아 움직이는 여체의 관능적인 몸선을 몇 겹이고 돌돌 감싸서 숨겨놓아야지만 안심이 되었던 보수적인 동방 국가에서 춤을 통한 끼의 표출은 오로지 발끝과 손끝으로 집중된다. 처연하게. 한국 무용의 에센스는 버선코와 손끝에 있었다.

 

알헨틴 땅고에서는 남녀 모두 팔을 포함한 상체 움직임이 상당히 억압되어있고 남자는 리드, 여자는 팔로우로 그 역할이 엄격하게 나뉘어있는 까닭에, 땅게라(여자)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기회는 오로지 다리에만 국한된다. 때문에 땅게라의 발동작을 보고 있으면 애처로우리만치 현란하고 필사적인데, 한국 무용에서는 버선코와 손끝이 그랬다. 공연 내내 치마 밑으로 슬쩍슬쩍 보이는 버선코가 이토록 내 가슴팍을 콕콕 찔러댈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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