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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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꼭 듣고 싶었던 말이 있나요,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일명 벽돌책과 같은 묵직묵직한 책들도 재독하고 있는 반면에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단편 소설들도 많이 읽고 있다.
자정에 다다른 깊은 밤이 되는 그 순간부터 한두 시간은 나의 야간독서가 시작된다.
며칠 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재독하고선 유튜브에서 TED 영상을 보았는데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꽃을 한참 바라보며 문득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생을 드라마로 일컫는다면, 그 드라마의 주연은 당연히 나 자신인데 더 넓어진 영역에서 바라본다면 대부분 우리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밀려나게 된다.
대개 드라마에서도 남녀 연기자가 주연을 맡고 나머지 수십 명의 연기자들은 조연에 맡는다.
그러기에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또한 주연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는 꼭 주연만을 고집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연만큼, 아니, 주연보다 중요한 것이 조연이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인 남녀 주인공을 더 빛나보이는 것이고 조연이 있기에,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는 등 주연보다 더 많은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잘 흘러갔으면 하고 항상 '주연'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호락호락하지 않아 어쩌면 우리를 더 힘들고 불안한 환경, 말그대로 구렁텅이 속에 떠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밀리고 떠밀려 밑바닥까지 갔어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만큼 스스로 강하고 굳건한 마음을 품고선 삶을 살아야 한다.

닿을 듯 하다 닿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피할 수 없고,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 '삶'이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즉,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날 수밖에 없다.
오밤중에 읽어서 그런지 괜스레 마음이 몰캉몰캉해져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누군가와 대면한 상태에서 위로받은 게 아니지만 책이라는 존재물이 마음을 알아줘서, 이해해줘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찾아올 인생무상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어른에겐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하루가 필요하다. 새털구름 떠다니는 하늘을 가만히 누워서 바라볼 하루가, 어느새 져버린 낙엽 쌓인 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가슴에 책을 올려놓고 한참을 빠져들다 까무룩 잠드는 시간이, 낯선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몰래 듣는 날이 필요하다. 마치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잘 살려면 믿어야 한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한테 씩씩대는 대신, 타고난 것들이 없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대신, 지금 바로 이 자리, 이 시간,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토양이 되리라는 것을. 귀하지 않은 시간은 없고,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길이 보인다는 것을. 그걸 믿어야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다.
인생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도, 자꾸 구석 자리로 밀어내도, 자리에 드러눕는 대신 “나 살아 있다”고 한 번 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저기 “나도 살아 있다”고 손 흔드는 동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의 손을 번쩍 잡아 “아니, 왜 아직 여기 있었느냐”며 이끌어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몸이 힘들다고 짜증이 화로 변하는 순간,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 욱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순간,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과 나는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매일 어제의 우리와 이별하며 살다 결국 모두와 이별하게 될 존재라는 걸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더 넓은 마음으로,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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