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Va' dove ti porta il cuore
수산나 타마로 지음, 최정화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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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주고 싶은 삶의 진실,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나, 책과 마주하다』

읽는 내내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였다.

처음에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외할머니가 외손녀에게 쓴 편지였다.

그래서인지 더 애잔하고 더 애틋했다.

 

나는 지금 부엌에 앉아 네가 쓰던 낡은 연습장을 펼쳤단다.

유언장을 쓰는 거냐고? 그건 아니야.

내가 필요할 때마다 네가 꺼내 볼 수 있는, 몇 년이 지나도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단다.

 

네 엄마, 너를 임신하게 된 과정, 네 엄마의 죽음, 난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너에게 말해주지 않았었지. 넌 그런 내 침묵을 증오했어. 할머니는 그 일들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중요한 일조차도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 일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네 엄마는 내 딸이기도 하단다. 그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 해본 적이 있어도 넌 말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었을 테지.

 

난 어머니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 어머니는 항상 겉으로 완벽해 보이려 애쓰느라 안절부절못했지. 그 거짓된 '완벽함' 때문에 난 늘 내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여겨졌고, 고독해졌단다. 나도 처음엔 어머니처럼 완벽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괴상하고 비참했지. 노력할수록 더 불편해졌어.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 경멸에 빠지고 그게 분노로 이어지지.

 

나이가 들어서야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나. 네 나이 때에는 아무도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 모든 일들이 자기 의지대로 된다고 믿으니까. 마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혼자 닦아나가는 일꾼처럼 스스로를 생각하는 거지. 먼 훗날에야 길은 원래부터 있었고, 누군가 나를 위해 흔적까지 남겨두었다는 걸 알게 된 테지. 우리에게 남은 건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임을 말이다.

 

울지 마라. 물론 내가 너보다 먼저 세상을 뜨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 없다고 해도, 난 네 안에서, 네 행복한 기억 안에서 살아있을 거야. 나무랑 채소들이랑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내 안락의자에 앉을 때도 그렇겠지. 그리고 오늘 가르쳐준 대로 네가 케이크를 만들 때면, 난 저기 네 앞에서 코에 초콜릿을 묻히고 서 있을 거란다.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 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 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엄마를 대신해 손녀를 키운 외할머니는 손녀를 미국에 보내게 된다. 미국에 가는 당일 둘은 정다운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사이가 안 좋은 상태로 손녀를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 손녀에게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멀리 미국에 간 손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혹여 자신이 죽은 뒤에 손녀가 오면 이 편지들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편지에는 할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녀의 사랑부터 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그녀는 손녀에게 할머니이기 이전에 엄마였고 여자였다.

35일간 쓴 15통의 편지를 쭉 읽고나니 눈물이 났다.

그녀의 인생도 참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으며 성장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딸에 관한 출생의 비밀과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그녀도 참 힘든 삶이었다.그렇게 그녀는 딸에 관련된 비밀을 펴지에 털어놓게 된다.

손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편지 곳곳에 감정이 묻어나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외할머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1년에 한 두번 명절 때밖에 찾아뵙지 못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들 중 한 분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와 내 동생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그렇게 기다렸었다. 우리에게는 방학이란 단순히 집에서 노는 것만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방학하는 날이면 방학동안 할 숙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부모님과 함께 외할머니집에 갔다. 부모님은 하루이틀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시고 우리 자매는 개학 일주일 전까지 외가집에 머물며 지냈다. 시골에 지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새벽을 알리는 꼬끼오 소리에 눈을 뜨면 외양간에 있는 소들에게도 마당에 있는 백구와 황구에게도 뒷마당 닭장 안에 있는 닭들과 병아리들에게도 굿모닝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씩 외할머니를 따라 이웃집 할머니들과 뒷산으로 아침 산책을 하며 다람쥐를 심심치않게 보면서 숲 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마당 한 켠에 큰 자두나무에서 자두 하나씩 물고 산책을 마쳤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줬었다. 외삼촌은 우리가 시골에 오고 난 다음 날이면 큰 마대 자루에 과자 몇 십 봉지를 사와 두고두고 먹으라며 방 한 켠에 놔두었다. 꼭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처럼! 외할머니는 어디 나갈때면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고 항상 맛깔나는 음식들을 차려주셨다. 시골에 있을 때면 집청소는 우리가 도맡아 했었는데 집에서는 당연하게 했었던 일인데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하는 행동도 예쁘다며 고마워하셨다.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정말 좋았다. 외할머니와 함께 만두도 빚어서 만두국을 끓여먹고 오이소박이도 만들고 떡도 빚고.

그렇게 날이 깜깜해지면 외할머니는 별구경하라며 마당에 큰 돗자리를 깔아주셨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돈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수만 개, 수억 개의 별들이 촘촘하게 줄을 지어 반짝반짝거려 분명 깜깜한 밤인데도 환하기만 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드니 여기서 충분히 만끽하고 가라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수억개의 별들보다 더 밝고 밝아 참 따뜻했다.

해가 바뀌기 전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써야겠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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