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디자인 - 개정판 
빅터 파파넥 지음, 현용순 외 옮김 / 미진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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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오늘날 그 자체로 이미 윤리적인 표징이자 과제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디자인만을 추구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자 그것들이 불러올 온갖 해로움과 불평등, 질병들에 대한 염려이자 걱정이다. 실제로 흔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적인 관념에 충실했다고 여겨지는 일반적인 디자인의 역사는 계몽과 폭력의 자국이기도 하며 적나라한 자본주의의 횡포를 가리는 미학적 치장이었을 뿐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온갖 생태학적 사고를 내포하고,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충실하며, 필요와 쓸모 사이에 놓여있는 생산과 소비의 문제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절제된 욕망을 윤리적으로 실현하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는 지금까지의 디자인의 역사를 정지시켜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념으로서의 디자인의 역사를 재창조해내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인간의 감각과 관습, 미학적 기준 자체를 송두리째 뒤집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디자인의 본질은 기술의 편리에 발 맞추어 그에 걸맞는 의장을 갖추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디자인은 계급의 차이를 표상의 차원에서 확정짓는데 동원되거나 노동의 숙련을 가속화시켜 착취의 기제로 좀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계의 꾸밈에, 혹은 국가의 규율에 적응하며 보수적인 일상의 패턴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습관을 만들어내는 도구를 꾸미는데 이용되어 왔을 뿐이다. 디자인은 결국 자본주의적 질서 아래에서 명백한 세계의 차이를 보여주는 마지막 표정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때 인간과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구상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구와 절제 사이의 갈등을 전제하는 차원에서 인간적인 디자인을 모색해본다는 차원에서 이것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방안을 탐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빅터 파파넥이 잘못된 디자인의 사례로 예리하게 지적한 대부분의 것들은 산업 디자인 계통의 생산물들과 관계되어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디자인의 문제는 기능주의와 미학주의 사이의 경합과 관련되어 있다기 보다 이것 자체가 인간을 오염시키며 훼손시키는 보다 본질적인 폭력에 가까운 형태라는 점이다. 어떤 물건이나 도구의 사용가치가 충분하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사회적 주기로 설정된 ‘폐물화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게 되면 유행에 뒤쳐진 소비자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오히려 사소한 문제이다. 이 같은 선진 국가의 과잉소비와 조기폐기의 패턴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어가면서 국가 간의 극복할 수 없는 격차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는 모두 디자인과 관계되어 있으며 디자인으로 표현된다.

이제 우리는 잘못된 디자인의 역사를 중단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하며 날조되고 오염된 디자인의 관념 자체를 좀 더 윤리적인 것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란 단일한 감각 혹은 일면적 쓸모만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왔던 ‘개발과 극복에 가까운 디자인’의 역사를 종합된 감각의 상상과 계급 평등의 의식을 바탕으로 쓸모와 소비의 균형을 도모하는 ‘상생과 조화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바꾸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스칼 2009-12-10 15:05   댓글달기 | URL
번역자를 빼고, 저자의 노고에만 점수를 준다면 별 다섯개도 아깝지 않죠. 곱씹어보니 벌써 삼십여년 전에 등장한 이 디자이너의 아름다운 주장에 감동받았음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소이부답 2009-12-11 11:01   댓글달기 | URL
오해님! 이책의 번역의 문제는 지적하셨다시피 조악한 편입니다. 형편없는 문장의 도치 구조나 빈번하게 발견되는 오탈자는 책읽기를 방해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내용으로 보자면 디자이너의 급진적인 정치적 의사 표명이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들더군요. 지금 당장 디자인을 정지하고 그쳐야 한다는 파파넥의 외침은 디자인의 역사와 그 철학 자체가 뒤바뀌어야한다는 사실 자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

오스칼 2009-12-11 14:37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ㅎㅎ 역시 소이부답님은 말보다 글이 더 멋지시군요! ^^

치니 2009-12-11 14:38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세요. :)

소이부답 2009-12-14 13:09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반갑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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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은 <한겨레신문>의 임종업 기자가 한국의 숨어있던 ‘책쟁이’들을 찾아내 그들과 그들이 소유한 책에 관해 신문에 연재하며 쓴 글들을 추려 모아 만든 책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책을 향한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탐욕과 갈망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엄청난 책 보유량으로 집이 무너질 지경에 처해있기도 한 책 애호가들이다. 이들은 이미 자신이 보유한 ‘책더미’로 혹은 독서량으로 해당 분야에서만큼은 일종의 고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책에 관한 책’, 혹은 ‘책쟁이들의 책’이라 부를 수도 있을텐데, 사실 엄밀히 말해 이 책은 ‘책 자랑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러한 삶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책에 대해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삶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거나, 다른 삶에 방해가 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가지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책은 사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인 경우가 더 많다. 책은 그저 생일 선물로나 건네받았던 시집이거나, 필요와 기능에 따라 구매해 작심삼일 경력을 한 가지 더 늘어나게 만들어주고 한 한철만 지나도 훌쩍 낡아버린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실용서적들, 흔히 ‘무협’이나 ‘재밌는 소설’로 불리지만 그 운명은 대여물로 정해져 있는 온갖 이야기책들일 뿐이다.  

이런 현실의 상황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책쟁이들의 삶은 그저 경탄을 자아내는 나와 무관한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실제로 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과 효과에도 불구하고 '책들'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책은 공포와 불안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책만큼 위대한 건 없다. 하지만 책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것도 없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 것은 이 책이 책의 종류에 대한 위계를 설정하거나, 특정 책을 권장하는 말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책과 덜 필요한 책들의 차이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어떤 책이 더 순수하고 더 건전한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책들이 적게 쓰여지고, 덜 읽히며,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언급되는 까닭은 그 책의 효용이 책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일종의 '책 독점가'들에 의해 선취되거나 자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책과 관련된 인간의 삶과 책을 통해 얻게된 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책쟁이들은 이미 너무나 특별해 보인다. 나 역시 제법 읽은 티를 내기 위해서만 책을 가까이 하고, 책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쓰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책을 온전하게 품은 것처럼, 혹은 그 책에 대해 정말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할 때가 있다.  

책을 자랑하는 것으로 책을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책과 멀어져 버린 일반 대중들 모두를 좌절시키지 않으면서 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이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책과 관련된 개인들의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는 느낌때문일 것이다. 책벌레들이 사고, 모으고,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순간 모든 책에서 멀어져 버리는 수많은 대중 독자들의 공통된 상실감이랄까. 

우리의 실제 독서 문화는 이 책이 말하는 책쟁이들의 책자랑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사람도 있겠지만 생활에 밀착된 책읽기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을 쓸데없이 자극하고 위화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의도가 애초부터 그럴리야 없었겠지만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이런 책과 독서와 관련한 '불안감'이 독자들을 힘들게 하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은 틀림없이 이런 경계와 염려 위에서만 좋은 책일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 두려움과 설레임 사이에서 길을 찾다 
가야마 리카 지음, 이윤정 옮김 / 예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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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말은 연애라는 말보다 한층 더 무겁다. 때때로 이 둘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이는 연애와 결혼이 그 의미와 실재의 차원에서 분명 다른 지반에 기대고 있는 사회적 개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발로에서 결정되는 사적 영역의 일이라면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들과 더불어 엄청난 배후의 제도들과 전통과도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공적 영역의 일부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실제로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일'은 무지막지한 '현실'의 문제를 늘 사고하게 만든다.

결혼식이라는 세레모니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들은 지나치게 많고도 복잡하다. 더구나 결혼식이 끝나면 받게 되는 사회적 시선도 만만찮다. 으레 결혼 후 곧 바로 아이 낳기를 기대한다거나, 집을 마련하거나 혹은 평수를 늘려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일 따위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시선의 사례들이다.   

'연애=사랑'이라거나 '결혼=스위트 홈'이라는 등식으로 판타지를 조장하는 것이 현실에서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가 쉽게 알고 있다. 하지만 사라져 가는 것들에 자연발생적으로 부과되는 일종의 낭만성과 새로운 관계를 보다 공식적으로 맺게 되는 상황에서 갖게되는 기대감 따위는 결혼을 설명할 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것을 이 책에서는 '결혼에 대한 설레임'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결혼의 유익도 분명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상상하고 있다. 매일 함께 살을 부벼가며 잠자리에 든다거나, 서로를 위해 근사한 저녁 따위를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고 믿는 일. 혹은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것 같은 파트너를 얻었다는 만족감과 내곁에 날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한다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정신적 충족감. 이런 것들이 바로 결혼의 전형적인 로망이며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계속해서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연장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이런 종류의 결혼에 대한 낭만적 기대와 설렘은 남성들에게 좀 더 많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여자는 결혼 문제에 있어 남자들보다 훨씬 예민하며 감각적이다. 곧 다시말하면 여성들에게는 결혼과 관련된 사고와 행동, 감정과 생각들에 대한 정신분석이 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더 크게 힘주어 말하고 있는 내용도 바로 결혼에 대한 (여성의) '두려움'이다. 외로우면서도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이들(특히 여성)의 이러한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처방과 치유책으로 씌여진 이 책은 결혼을 강권하지도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폭파시킬 것을 주문하지도 않는다. 

결혼을 앞두고 나타나게 되는 소소한 심리적 증상들과 그 이유와 까닭들을 개인과 사회의 문제와 감정과 이성의 문제로 골고루 제시하고 분석하고 정리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결혼에 대한 앎'을 전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생각을 바꾸고 돌려 읽어봐도 이 책이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다 해소시키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러한 반응과 판단은 이 책에 진짜 리얼리티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혼은 실제로 여성들에게 더 불리하거나 심리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고 있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며 여성이 겪어야 하는 변화된 삶과 혹은 그것을 요구받는 압박감이 남성이 겪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언제나 속박과 구속에서 해방되려는 욕망보다 더 큰 심리적 응전을 요구하는 사회적 제도였다.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생각이 훨씬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더 큰 심리학적 증상들을 수반하게 하는 인생의 모험이자 미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심리학 책이 결혼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사실 그럴 수 있는 책은 없다)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민감한 사고와 생각들을 성실하고 감각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1. 결혼의 자유를 許하라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01 22:41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지은이 가야마 리카 상세보기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40대 이상 성인들에게는 낯익은 가족계획 구호들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의 가치였던 개발시대 높은 출산율은 국가 경쟁력 약화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가족계획이 지나치게 실천되어서일까? 2000년대 들어와서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라는 기존과는 정반대의 구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more
 
 
Arch 2009-10-23 09:11   댓글달기 | URL
심리학이 무엇을 말하다류의 책이 요새 인기인가봐요. 어떤 책일지 궁금한데요.
소이부답님 무척 오랜만이에요.

소이부답 2009-10-23 09:27   댓글달기 | URL
저도 반갑습니다.^^ 제 생각에도 이 책들은 얼마전 유행한 '심리학이 뭘 말하다' 혹은 '몇살의 심리학' 류의 연장에서 기획된 출판물 같습니다. 이 책이 그 책들과 다른면이 있다면 일본인 저자 특유의 성격대로 감각과 세대와 젠더를 잘게 쪼개고 나누어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유행에 대한 민감한 판단만큼 쏟아지는 결과물들의 양적 질적 풍성함은 본받을만한 대목이겠죠.

Arch 2009-10-23 10:58   URL
소이부답님의 별점에서 눈치를 챘어요^^

2009-10-23 13:07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3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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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가 먹는다. 아주 적게 먹거나 혹은 너무 많이 먹기도, 때로는 ‘좋은’ 음식만을 골라 먹거나 ‘나쁜’ 음식인지를 알면서도 계속 먹기도 한다. 최근에 먹은 음식이 하나의 추억이 되거나 혹은 삶을 연장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간의 형편이 매우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지금 이러한 ‘먹는 일’은 곧 누군가의 삶과 정치를 설명하는 훌륭한 콘텐츠인 셈이다.

   실제 인류는 저자의 말대로 ‘호모 쿠커스’의 삶을 살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하지만 ‘겨우 얻어먹거’나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들과는 전혀 반대로 ‘골라 먹거’나 ‘알고 먹는’ 사람들을 같은 인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세계 30개 나라의 평범한 가정들(소위 말하자면 중산층, ‘부탄’과 ‘차드’, ‘말리’ 같은 나라에도 이 용어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의 일주일치 ‘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배치하고 찍은 사진들은 매우 객관적인 인류의 생태 보고서인 듯 보인다. 이렇게 카메라에 찍힌 음식들은 그것들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조리 도구, 부엌 환경, 가족들의 옷차림, 마르고 살찐 정도, 심지어 함께 살거나 기르는 동물들의 종류와 목적과도 잘 어울려 보인다.  

   자루나 흙으로 만든 질그릇 따위에 쓸어 담겨져 있는 마른 곡식들과 깡통이나 비닐, 플라스틱 등으로 정교하게 포장된 음식들의 차이가 보여주는 내용은 그것들 옆에 서있는 저 사람들의 삶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이러한 먹는 것의 차이를 계속해서 확장시켜 나간 인간의 서로 다른 욕망의 크기와 역사, 세계의 불균형한 질서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실제로 무참한 국가와 계급간의 차이와 인간의 무지, 부도덕 따위를 고발하는 한편의 보도 사진집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기후와 문화에 따라 먹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리 문화 교과서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먹는 것이 결정되는 국면에 처해있다. 이제 ‘먹는일’은 기초적이고 배타적인 생리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차원이 아닌 매우 엄정하고 때로는 잔인한 삶의 격차를 설명해주는 선명한 행위이자 사례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음식’과 ‘먹다(살다)’라는 말은 실로 매우 가까우면서도 또 너무 멀리 떨어진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먹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경이로운 까닭은 ‘먹고 살기’라는 자명한 속박에서 스스로 해방되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킬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의 누군가에게는 굶는 것과 적게 먹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나 생활의 당연한 일부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먹는 일과 관련된 도덕과 윤리가 새로운 차원에서 사고될 것을 요구받는 이유이다. 

  이 책은 바로 ‘너’와 ‘나’의 정치적 격차를 줄이는 일과 모두의 인간-됨을 실현하는 일이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하거나 선택하는, 지극히 물리적인 방식으로도 관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오직 이러한 단순한 사실을 알게된 뒤, 어떤 음식이 한 개인에게 도착하기까지 과정이 ‘지지고, 볶고, 삶고, 튀기기’ 이외에도 전혀 다른 역사와 질서가 개입되고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우리가 새삼 다시 살필 수 있게 된 계기가 중요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용산 참사를 연거푸 겪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인간의 법이란 언제나 약자들이 따라야 하는 강자들의 법이며 

이 법을 지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평화'와 '안정'이리라. 

국가라는 보편 제도로 환원시켜 생각해 보아도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이기적 민족주의와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흉포함과 자만심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가의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적으로 빚어지고있는 인간 사냥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핏빛 개발 욕망들 앞에서 '휴머니즘'이란 말은 얼마나 치졸하고 조잡한 수사어에 불과한가.

생물학적 종의 기준에서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묶여야한다면 나는 과감히 그 '인간'이라는 개체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없이 졸렬한 이 정권의 조잡한 술수는 대의제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마저 들게 만든다. 

이명박 정권의 남은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정치적 시간 감각을 바꿔서라도 저들을 끌어내리고 싶다.   

오늘은 "3개월간 이어진 촛불집회가 한없이 지루하고 피곤했다"던 위대한 어청수가 더욱 위대한 후임 김석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켜세우고 떠난 날이다.  

또 바로 오늘 그나마 신망하던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 역시 정권의 외압에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동걸 그가 남긴 이임사는 이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염없이 밥벌이를 이어가야 하는 오늘의 내가 슬프고 아프다.   

이동걸 원장 이임사 전문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

저는 이제 한국금융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은 지 만 9년, 원장의 직을 맡은 지 1년 반, 여러분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며 때로는 같이 즐거워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 하고 때로는 같이 분개하기도 했던 값진 추억을 갖고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 금융연구원이 국내의 대표적인 금융정책 두뇌집단(Think Tank)으로, 또한 국내의 독보적인 금융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떠납니다.

1년 반 전, 제가 원장에 취임하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금융연구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자고. 금융연구원의 발전은 국내 금융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우리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원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연구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원장의 몫은 여러분들이 소신껏 오직 여러분의 학자적 양심과 신념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풍을 막아주고, 때로는 여러분을 대신해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대항해 싸우는 일입니다. 때로는 여러분의 입이 되고, 때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이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반 원장으로서의 제 몫의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임기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고 오늘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니, 비판이 아니더라도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

돌이켜 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에는 말입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겠지요.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하겠지요.

여러 가지 사례를 들 필요도 없습니다. 현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살펴봅시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률 개정안을 어떻게 '경제살리기 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개혁입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국제적 조류라고 감히 주장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금산분리가 가장 철저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리고 일부 보수집단 금융이론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세계 선진국에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장 많이 허용된 나라입니다. 그 폐해도 가장 많이 경험한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은 외국의 경우 은행이든 증권사든 보험회사든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제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직 산업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세계적 은행, 세계적 증권사, 세계적 보험사의 예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은행을 제외하면 증권,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주요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산업자본 즉, 재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래도 저희 나라가 전세계에서 금융과 산업이 가장 철저히 분리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불행히도 재벌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나라의 증권사, 보험사들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1류 행세를 하지만 국제시장에서는 2류, 3류 수준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벌의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증권사, 보험사가 세계시장에서 2류, 3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도 재벌의 은행소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주장하기 전에 우선 재벌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증권사, 보험사를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금융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을 재벌에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프리메라 리그의 꼴찌 축구팀에게 야구를 하도록 해주면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될 거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이론을 내세우기도 전에 이런 평범한 상식적 결론을 현 정부는 왜 진솔하게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 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학자로서 --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분야에서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환경파괴의 영향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는 외부불경제성(external diseconomies)과 마찬가지로 은행의 사금고화도 금융체제 위험(systemic risk)을 높이는 외부불경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파괴된 환경은 사후 감독이나 제재로 쉽게 복구되지 않듯이 은행 사금고화의 폐해도 현 정부와 일부 보수 금융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후 감독이나 제제를 강화한다고 쉽게 방지되거나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합니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우리의 경제위기로 키우고 있는 정부의 거듭된 오판과 실정이 또 다른 사례가 되겠지요. 전국민이 합심해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총력 대응해도 부족할 때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진지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의지가 정책으로 결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습니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이럴 때 연구원 동료 여러분의 곁을 떠나는 제 심정도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double standard)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원장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장의 직은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서 제 후임으로 어떤 분이 오실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어떤 분이 원장으로 오시든 여러분께서는 동요하지 마시고 조용히 연구에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장으로 재임했던 기간 중에도 연구원을 이끌어 왔던 것은 제가 아니고 여러분이었습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을 도와드리는 역할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금융연구원에 대한 외부의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두고 보면 그래야만 우리 금융연구원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국가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한동안 쉽지 않은 시절이 금융연구원에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이 세상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금융연구원의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비록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는 하지만 동료 여러분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이 한 평생을 같이 하듯 저는 여러분과 평생을 같이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동료로서 또한 선배로서 저는 금융연구원을 떠나서도 금융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여러분과 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금융연구원을 금융연구자들의 품으로 되찾을 때까지 .....

2009년 1월 29일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이동걸



 
 
치니 2009-01-30 12:38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4년이나 남았다는게 실감이 안 날 지경이에요. 이럴 땐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지...

소이부답 2009-01-30 13:32   댓글달기 | URL
3년하고 300일입니다. 고달프고 피로한 가운데서도 무언가 새로운 전복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인듯 싶습니다.

2009-06-22 10:08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