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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키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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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구성과 스토리 전개를 보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모여 상상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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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키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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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로 짧은 편이지만 결코 짧지 않은 구성과 스토리 전개를 보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모여 상상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재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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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노리코가 다부치 씨의 전처에 대해 알고 있지?

 

전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어서 가즈키는 그녀에 대해서는 책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협조해 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게 어쨌다는 건데?”

 

가즈키는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당시 두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고 들었어. 다부치 씨가 매일같이 비난을 받자 시호 씨는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이혼 신고를 한 다음 아들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지. 다부치 씨가 복역 중일 때는 다부치 씨의 부모님이 그의 아들을 돌보았고, 출소한 뒤에는 다부치 씨와 함께 살고 있고…….”

 

노리코는 빼곡하게 적어 놓은 메모를 읽었다.

 

대단한 취재력이야. 노리코야말로 저널리스트가 적성에 맞는 거 아닐까?”

 

에이~, 설마.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의 내용을 참고해서 취재원을 돌아본 것뿐이야. 가즈키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했더니 다들 자세하게 얘기해 주더라.”

 

노리코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 참, 그래서…… 다부치 씨는 출소 이후 누구에게도 거처를 밝히지 않고 살고 있었지. 하지만 전처인 시호 씨는 친권을 찾는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의뢰해 다부치 씨의 호적과 주민등록표를 조사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

 

가즈키는 자신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낼 수 있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위법은 아니잖아. 제대로 절차를 밟았으니까 말이야.”

 

가즈키는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호 씨는 성매매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각성제 사용 전과까지 있어. 친권을 되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가즈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는 친권을 되찾는 소송을 걸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가즈키가 귀띔을 해 주면서 유도를 했겠지. 그리고 줄곧 아들을 두고 온 것을 후회하고 있던 시호 씨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을 테고 말이야.”

 

노리코가 노트에서 얼굴을 쑥 들어올렸다.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마치 노리코의 몸에서 나는 기계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가즈키는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시호 씨의 상태로는 아무리 소송을 걸어도 친권이 돌아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가즈키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잖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부추겼어. ,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미끼로 가즈키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시호 씨를 이용한 거야.”

 

노리코의 메마른 목소리가 거실 안에 울려 퍼졌다.

 

어떻게 그런 것을…….”

 

시호 씨 본인에게 들었어. 가즈키가 아드님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고.”

 

물론 조금 억지스러운 방법이었을 수는 있어. 하지만 위법은 아니잖아.”

 

노리코의 시선이 다시 노트로 돌아갔다.

 

시호 씨가 의뢰한 변호사 미키 유타카 씨. 이 사람, 가즈키가 대학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지? 책에 있는 감사의 말에 법률 감수도 받았다고 되어 있던데.”

 

그런데, 그게 뭐?”

 

시호 씨는 변호사 비용으로 20만 엔을 지불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가즈키와 미키 변호사가 공모해서 돈을 얻기 위해 승산이 없는 재판을 부추긴 것이 돼. 개인 재산을 침해한 것이라면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어.”

 

거침없는 노리코의 말에 가즈키는 마치 차가운 얼음 덩어리를 집어삼킨 느낌이 들었다.

 

누가 겨우 20만 엔 때문에 그런 일을 해. 미키는 내 저널리스트 정신을 응원해 주고 싶어서 협조했을 뿐인데. 그는 전혀 잘못한 게 없어. 나 때문에 미키가 피해를 입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돼.

 

맞아. 네 말대로 나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호 씨에게 친권 회복 신청을 권했어. 하지만 미키 씨는 관계없어. 그는 그런 나의 속셈 같은 건 모르고 일을 처리해 준 것뿐이야.”

 

그래? 그러면 미키 변호사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노리코는 붉은색 펜으로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렇다면, 가즈키는 다부치 씨가 있을 곳을 찾아낼 목적으로 시호 씨에게 무리한 소송을 권유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야?”

 

노리코가 가즈키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 시선은 가즈키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스캔하는 전자 음의 환청이 들릴 정도로 차가웠다.

 

, 그게…….”

 

더 악랄한 방법으로 정보를 얻는 기자와 언론인들도 많다. 그 가운데 그녀의 방식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가즈키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단념했다. “다른 사람도 하는 짓이니까 괜찮다는 거야?”라며 따지고 들 것이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었다.

 

노트와 펜을 가방에 넣고 있는 노리코에게 가즈키는 서둘러 덧붙였다.

 

나는 반성하고 있어. 시호 씨에게는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해.”

 

그래? 그럼 그 말도 시호 씨에게 전해 줄게.”

 

전한다고? 시호 씨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친권 소송, 아직 계류 중이래.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이 출판되고 다부치 씨가 무죄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영향으로 시호 씨가 아들을 되찾을 가능성은 더 줄어들었지. 그래서 시호 씨, 충격 받았대. 가즈키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네가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송을 하도록 부추긴 것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할 거래.”

 

? 뭐라고?

 

 

바로 그때, 번쩍이는 천둥 번개의 섬광이 방 안을 구석구석까지 비추더니,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 빛은 노리코의 무표정한 얼굴과 매끄러운 피부를 하얗게 비추었다.

 

다케시타 요이치 상의 사무국에도 알려야 할 텐데, 오늘은 아무도 없겠구나.”

 

노리코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주말이 끝나고 평일에 전화해 봐야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이 책을 썼는지는 노리코도 알고 있잖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해서,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잖아.”

 

부패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을 종결시켰단 말이야. 그런 남자가 총리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을 막았다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작은 악행은 해도 된다는 거야?”

 

악행이라니, 그렇게 불릴 정도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노리코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야. 그게 문제라고. 그런 사람이 저널리스트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가즈키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어째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노리코는 이런 식으로 나를 규탄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좋은 걸까.

 

가즈키는 그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협박 전화의 범인을 찾아 준 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노리코는 단순히 범인을 찾아서 벌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가즈키는 과거에 노리코의 정의때문에 인생을 망치게 된 사람들을 떠올렸다.

 

결국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일까. 선악으로만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리코는 역시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차가운 사이보그였어. 사무국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당연히 후보 자격은 박탈당할 거야. 그런 재수 없는 작품에 상을 줄 리가 없잖아. 업계에도 소문이 날 거고, 앞으로 일도 하기 힘들어지겠지. 내가 기획한 책을 내 줄 출판사가 있기는 할까. 아니, 그전에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을 출간해 준 가에데 출판사가 곤란해질 거야.

 

가즈키는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한 표정을 짓던 편집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

겨우겨우 큰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노리코는 자료를 전부 캐리어 백에 다시 넣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주는 시작부터 바쁘겠네. 시호 씨에게 보고하고, 사무국에도 연락하고……. 가즈키도 준비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노리코, 생각을 바꾸면 안 되겠니?”

 

그건 안 돼. 이것은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거야. 정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거니까.”

 

노리코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가더니 레인 코트를 걸쳐 입었다. 가즈키는 멍하니 서서 그런 노리코를 보고 있었다.

 

그럼, 내일 점심 모임에서 보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으며, 노리코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또다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밖을 보고 있던 가즈키는 앉아 있던 소파로 돌아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연보라색 초대장을 커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후, 소파 위에 다리를 올리고 무릎을 감싸면서 몸을 둥그렇게 만들어 웅크렸다.

 

그날 밤에도, 노리코가 떠난 다음에 이렇게 무릎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 모임에 가고 싶지 않아, 두 번 다시 노리코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하며 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두면 작가로서의 내 인생은 끝나고 말 거야. 어떻게 든 노리코를 설득해야 해. 점심 모임이 끝나면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자.

 

그렇게 결심한 가즈키는 다음 날 점심 모임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가즈키는 초대장의 발신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그날, 나는 노리코를 죽였어.

 

눈이 부실 정도의 섬광이 번쩍이더니, 천둥소리가 가즈키의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 연재 끝 ~

 

* 이후이 이야기는 아래의 표지 그림을 클릭하여 단행본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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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실 정도로 눈앞이 새하얗게 빛났다. 가즈키는 움찔 놀라면서 손에 들고 있던 초대장을 떨어뜨렸다. 창밖은 어느새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강한 바람에 나무가 흔들렸고, 세차게 내리는 비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베란다에 부딪치고 있었다. 우르릉 쾅, 하고 지축을 울리는 천둥소리에 이어, 좌악좌악하며 하늘을 찢는 듯한 빗소리가 들렸다.

 

가즈키는 천천히 일어나서 베란다 쪽 창문을 잠갔다. 베란다 바깥쪽에는 폭풍우에 흔들리는 거리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랬다.

 

5년 전.

 

노리코가 마지막으로 이 집에 왔던 날.

 

그날도 이렇게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가즈키와 노리코와의 관계는, 그녀가 각고 끝에 출간하게 된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불법 정치 자금 사건의 진실이 우수 논픽션 작품에 수여되는 타케시타 요이치 논픽션 상의 후보에 오르게 된 것을 계기로 완전히 일그러지게 되었다.

 

가즈키는 힘들게 찾아낸 전처를 통해서 겨우 다부치 본인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고, 집요한 설득 끝에 진실주범은 야마모토라는 사실을 밝혀 낼 수 있었다. 비록 공소 시효가 지나서 법적으로 죄를 추궁할 수는 없었지만, 야마모토의 범법 행위를 파헤친 가즈키의 책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국민들의 비난이 쇄도했고, 차기 총리로 거론되었던 그는 실각되면서 정치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타케시타 요이치 논픽션 상은 신문사가 주최하고 있으며, 후원으로 방송사와 영화사까지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상작은 대부분 TV 드라마 또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저자는 시사평론가로서 각종 매체에서 활약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수상 경력은 앞으로 내게 될 책 출간의 발판이 되기도 하며, 선인세의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협상 자격도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점은 취재 상대가 신뢰해 준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대형 출판사의 명함이 있었지만, 독립한 다음부터는 취재 대상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면서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만나는 것조차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수상을 하게 되면, 그동안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들이 열리게 될 것이다. 포기하고 있었던 거물급 인사에게 접근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가즈키는 그야말로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2년 동안 이 사건을 뒤쫓으며 고생했던 게 드디어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녀는 즉시 가족에게 전화해 이 기쁜 소식을 전했으며 유미코, 리호, 레이카, 노리코에게도 일제히 메일을 보냈다.

 

가장 먼저 노리코로부터 답장이 왔다. ‘우선은 축하해.’라고만 쓰여 있었다. 가즈키는 우선은이라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이어지는 축하 전화와 메일 덕분에 그에 대한 의문은 곧 머릿속 한구석으로 밀려나 버렸다.

 

노리코가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그로부터 1주일 정도 지난 후였다.

 

그전에, [지금 찾아가도 괜찮아?] 하고 노리코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가즈키는 해야 할 일이 좀 밀려 있어서 만날 수 있는 날짜를 다시 잡아 보자.”고 답했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점심 모임의 바로 전날, 가을에 찾아온 태풍 때문에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노리코가 일부러 집에 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즈키는 노리코가 미리 축하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승낙했다.

 

오늘은 다음 책 기획을 구상하는 일밖에 없으니 언제라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와인이 이 있는데 괜찮다면 같이 마시자.”

 

그렇구나. 일단 그건 도착해서 생각해 볼게.”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통화할 때 노리코의 목소리가 딱딱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후보에 오른 것 때문에 들떠 있던 가즈키는 노리코의 말투가 원래 그렇지 뭐, 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부랴부랴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노리코가 찾아왔다. 흠뻑 젖은 레인 코트를 입은 노리코의 발밑에는 캐리어 백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어머, 도대체 뭘 가져온 거니? 후보에 오른 것뿐인데……, 수상하지 못하면 위로 파티라도 해야 할 거 같아.”

 

칠면조 바비큐라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가방 크기에, 가즈키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들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로스트비프일지도 몰라. 아마 오르되브르와 치즈도 들어 있겠지, 하고 가즈키는 생각했다.

 

, 혹시 차게 보관해야 하는 거야?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가려나.”

 

레인 코트를 벗어서 현관 벽에 걸고 있는 노리코 옆에서 가즈키는 비에 젖은 캐리어 가방을 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그것을 방 안으로 옮기려고 들어 올렸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내려놓을 때는 쿵 소리가 났다. 그것은 칠면조와 로스트비프 정도의 무게가 아니었다. 눈으로 본 크기에 비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중량감이 느껴졌다.

 

잠깐, 이거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설마 트로피나 상패 같은 것은 아니겠지, 하고 가즈키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노리코를 거실로 들어오라고 한 그녀는 가까스로 들어 올린 캐리어 가방을 러그 위까지 옮겨 놓았다.

 

그럼 와인 한잔할까? 치즈도 잘라 놨는데 먹어 볼래? 다 먹고 나서 차 한 잔 괜찮지?”

 

냉장고를 열어서 확인하고 있는 가즈키의 등 뒤에서 노리코의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난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

 

가즈키가 뒤를 돌아보니 소파에 걸터앉은 노리코가 작은 물통을 꺼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왔지? 축하하러 온 게 아닌가?

 

가즈키는 그때서야 겨우, 노리코에게서 조금도 축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가즈키는 노리코의 발밑에서 이상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커다란 두 개의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가방들은 도대체 뭘 넣은 거지?

 

은근슬쩍 기분 나쁜 예감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가즈키는 일단 자신의 잔에만 와인을 따른 다음 노리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축하해 줄 것이라고 들떠 있던 스스로를 원망하며.

 

불길한 예감을 진정시켜 보자는 생각에 와인을 홀짝거리는 가즈키의 눈앞에서 노리코가 가방의 파스너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내어 하나둘씩 커피 테이블 위에 쌓아 놓은 것은 가즈키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에서 사용한 참고 자료들이었다.

 

그 책의 참고 문헌은 권말에 열거되어 있었다. 그 수는 30권 이상이었는데 사전같이 두꺼운 서적도 있었다. 노리코는 그런 책들을 차례차례로 가방에서 꺼내고 있었다.

 

이 책들을 전부 가져왔다는 말이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노리코……, 어째서 이 책들을 다…….”

 

가즈키가 제대로 올바른 절차를 밟고 집필했는지 확인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이 출간된 다음부터 조금씩 참고 문헌들과 대조하고 있었는데, 논픽션 상의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서 검증을 끝냈지.”

 

할 말을 잃은 가즈키가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가방에서 자료를 다 꺼낸 노리코는 노트를 몇 권 꺼내더니 그중에 하나를 펼쳤다. 노트에는 전 페이지에 걸쳐 무언가 잔뜩 적혀 있었다.

 

먼저 제1, 1페이지에서 5페이지에 걸친 사건의 개요는 참고 문헌에 있는 불법 정치 자금 사건을 참고한 거잖아.”

 

, 그렇다고 봐야지. ……그래서?”

 

그리고 6페이지에서 12페이지까지는…….”

 

노리코는 이런 식으로 장황하게 자료와 본문 확인 작업을 해 나갔다. 이 정도로 세세한 확인 작업은 담당 편집자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즈키는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저작에 관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도용도 하지 않았으며, 특정의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무책임한 억측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리코의 정의 레이더에 걸릴 걱정은 없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실컷 확인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모든 자료를 읽고 본문과 대조하고 그 출처를 이 방대한 자료 속에서 찾아내는, 가히 초인적이라고 할 만한 노리코의 노력은 역시 사이보그를 떠올리게 하여 등골이 오싹해졌다.

 

가즈키는 와인을 마시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솔직히 어느 부분에 어느 문헌을 참고했는지는 아무리 저자라고 해도 전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줄의 글에 많은 문헌들을 참고한 결과가 압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치즈와 함께 크래커를 먹으면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랐다.

 

노리코의 확인 작업은 다섯 시간이 지나자 겨우 마지막 페이지까지 끝낼 수 있었다. 밤은 완전히 깊었고 점점 더 거세진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참고 문헌의 이용은 제대로 된 것 같군.”

 

노리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가즈키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그녀를 치하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 외에도 확인할 게 있거든.”

 

노리코는 다른 노트를 펼쳤다.

 

다부치 씨를 만나게 된 부분에서 말인데, 어떻게 접촉할 수 있었지?”

 

그거야 뭐…… 발품을 팔았지.”

 

가즈키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랬다. 이 책이 높은 평가를 받은 가장 큰 부분은 끈질긴 노력 끝에 다부치 본인과 접촉해 새로운 증언을 얻어낸 것이었다.

 

1장에 보면, 갑자기 다부치 씨의 핸드폰으로 가즈키가 전화를 해서 그가 무척 놀랐다고 되어 있지. 다부치 씨의 입을 통해서 진실을 듣고 싶다고 열심히 설득했고, 결국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고.”

 

그래, 그랬었지.”

 

그 얘기는 본인이 스스로 가즈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전화번호를 입수한 방법에 위법성이 있었던 거 아니야?”

 

뭐야, 그런 걸 노리코가 걱정하고 있었어?”

 

가즈키는 후훗, 하고 웃었다.

 

물론, 전화 회사의 직원을 매수해서 개인 정보를 입수하는 작가도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 제대로 된 경로를 통했다는 얘기지.”

 

자신 있어 하는 가즈키 앞에서 노리코는 노트를 넘긴 다음, 새로운 메모를 확인했다.

 

제대로 된 경로란, 전처인 오카모토 시호 씨를 말하는 거야?”

 

가즈키는 가슴이 철렁했다.

 

~ 10회에 계속 ~


*출간 전 연재는 총 10회까지 진행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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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가즈키의 생각은 3주 후 노리코와의 재회로 무참하게 무너졌다.

 

어느 날 아침, 아파트를 나서는데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드디어 찾았다. 아무리 전화해도 연결이 안 돼서 걱정했는데.”

 

이 애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가즈키는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근처의 역을 향해 서둘러 걸었다.

 

가즈키, 메일 확인해 봤어?”

 

노리코가 쫓아가면서 물었다.

 

못 봤어.”

 

노리코의 메일 주소도 스팸 메일로 등록해 두었기 때문에 수신함에서는 제외되어 있었다.

 

협박 전화를 건 사람은 니시무라 야스유키야.”

 

……?”

 

가즈키는 무심코 걸음을 멈추었다.

 

“3년 전, 잊혀진 사건 시리즈에서 미성년자 매춘으로 붙잡혔던 배우에 대해서 쓴 적이 있지? 바로 그 남자야.”

 

가즈키는 자신 있게 얘기하는 노리코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 잠깐만, 지금 뭐라고 했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모처럼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는데 과거가 들추어진 것에 화가 나서 그만 협박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 하지만……, 노리코가 어떻게 그걸…….”

 

협박 전화가 시작된 것이 2년 전이라고 했지? 그래서 그 이전의 잊혀진 사건 시리즈에 나왔던 사람들을 찾아가 봤어. 복역 중인 사람들은 빼고 말이야.”

 

2년 전까지 그녀는 일곱 권을 간행했다. 각 권의 소재가 되었던 일곱 명 중에 사회로 복귀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아이를 학대하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아나운서, 대마초를 재배했던 여자 아이돌, 그리고 해외에서 상습적으로 미성년자 성매매를 해 왔던 배우.

 

모두 남몰래 복귀해서 개인 사무실을 차렸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 그리고 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마무라 가즈키에게 협박 전화를 걸지 않았는지 물어봤지. 물론 처음에는 아무도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목소리 감정을 위해 녹음을 요청했더니 세 사람 중 둘은 더 이상 가즈키의 취재 대상이 되어 해를 입고 싶지 않다면서 허락해 줬어. 그런데 니시무라만 다른 반응을 보이지 뭐야.”

 

니시무리는 얼굴색이 변하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이건 제대로 고소할 수 있어. 형법 222, 협박죄에 해당되고 가즈키가 정신적으로도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 증명되면 204조의 상해죄까지 적용될 가능성도 있어.”

 

노리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즈키는 옛날부터 자신의 경우가 되면 완전히 젬병이라니까. 치한 사건 때도 그랬잖아. 의외로 마음이 약해서 자기주장도 잘 못 해. 섬세한 성격이라 그렇겠지? 하긴 뭐,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야.”

 

그래,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다들 거칠고 씩씩한 여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난 언제나 상처도 쉽게 받고 겁도 많은 편이니까. 그런 나를 노리코는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가즈키는 솔직하게 바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었다. 이런 도움까지 받았는데, 도저히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노리코는 나쁜 애가 아니야. 아니, 항상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착한 사람이 틀림없어. 그런데도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량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나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해 준 사람이 있었나? 고등학교 때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도움을 주는 노리코에게 못되게만 굴고……. 인간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노리코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가.

 

노리코……, 고마워.”

 

가즈키가 겨우 입을 열어 감사 표시를 하자 노리코가 미소로 답했다.

 

그럼, 내일 점심 모임에는 나와 주는 거지?”

 

내일?”

 

그래~. 가즈키가 감기로 못 나온다고 해서 연기한다고 했잖아.”

 

벌써 3주가 지났다. 노리코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유미코나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도 가즈키는 일 때문에 바빠서 못 나간다고 핑계를 대 왔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계속 모임을 연기하고 있었던 말인가.

 

그럼, 꼭 나가야지.”

 

가즈키는 어쩔 수 없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 또 거절하면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가즈키는 빠지지 않고 점심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을 도와준 노리코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세 명도 꼭 참석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모임 날이 되어 유미코가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연락해 왔을 때는 아픈 아이를 돌봐 주는 도우미까지 섭외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친구들과의 만남은 처음 1년 동안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 9회에 계속 ~


*출간 전 연재는 총 10회까지 진행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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