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에 미아 삼거리 맞은 편
삼양동에서 살았다.
대지극장 앞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언덕을 올라가야 닿는 고개 마루에 집이 있었다.
비 오면 물이 새는
낡고 낡은 한옥의 방 한칸.
미친듯이 바쁘던 조연출 시절의 전반기를
그 집에서 보냈다.
어쩌다 집에 돌아오는 밤이면
밀린 빨래를 하고 술을 마시며 영화를 봤다.
첫 월급타서 장만한 20인치 티비와 VTR.
그리운 내 친구들.
그 무렵에 이 영화를 봤다.
길고 어려운 말로
이 영화를 논할 수 있을 만큼
여러번 돌려봤다.
그 '길고 어려운 말'을
한 줄로 줄이면
"나는 슬펐다"
유튜브의 세계는 넓고 깊어서
내가 좋아했던 이 영화의
한 씬과 음악이 클립으로 올라와 있다.
세상에나 말이다.
나는 이 버스 정거장 이별씬이
슬프고 또 슬펐다.
살아 두번 다시는
못 볼 운명의 두 사람.
(장만옥 누나는 예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고 다시 봐도
애잔하네.
다시 그 시절이 새삼스레 그립지도
않지만 이 영화를 보던
어느 겨울 밤이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