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읽을 때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야 할 것이다. 물론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어도 가끔씩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픔을 피해가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묵직한 통증을 느껴야 했던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재치와 유머가 빛나면서도 몇 겹으로 세심하게 포장한 슬픔을 빚어내는 작가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이 소설은 아프다는 것. 때때로 깜찍하고 가끔은 유머러스하지만, 대부분 슬프다는 것. 소설에도 주의사항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이 소설에 반드시 그러한 주의사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필요 이상으로 눈물이 많은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시원하게 울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슬픈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든든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나처럼 슬픈 이가 또 있구나, 하는 (지극히 단순한 차원에서의) 위안. 그리고 삶이란 원래 이런 거였어, 라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위안. 이러한 느낌의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늘 책이란 외로움, 슬픔, 고독 같은 삶의 무거운 비밀들을 나누기 위한 은밀한 발명품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떤 소설가는 자신은 잊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말했었다. 쓰고 나면 고통스런 기억을 잊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읽는 자가 그것을 기억해주기를. 치유로서의 글쓰기. 어쩌면 읽는 것도 반대방향의 치유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통해 글을 쓰는 자와 그것을 읽는 자가 아프게 맞닥뜨리는 일.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다.

어쩌면 몇 가지의 열쇠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사건들이 서로 얽혀 있고 각기 다른 화자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 몇 가지 다른 사랑이 한 권의 책에서 서로 겹쳐지고, 다른 듯 보이지만 비슷한 삶이 한 권의 책에서 공유된다. 결국 여러 인물들 사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결국 나와 당신, 바로 우리의 사랑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일은 거울보기와 비슷할 테니 말이다. 거울을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에서 책이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 아픈 감정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책 속에서 벗어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소설의 중요한 두 시선은 레오와 알마다. 사랑하는 알마를 위해 <사랑의 역사>를 쓴 레오. (그러나 불행히도 레오와 알마의 사랑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사랑의 역사>를 통해 결혼하게 된 다비드와 샬럿 사이에서 태어난 알마.(알마의 이름은 <사랑의 역사> 속 알마를 따서 지은 것이다.) <사랑의 역사>라는 책이 없었다면 전혀 연결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것만 같은 두 사람, 여든 살이 넘은 남자, 레오와 열다섯(?) 소녀 알마의 삶이 비슷한 그림자로 겹쳐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은 외로움, 그리움 같은 것들이다. 우편 사고와 같은 운명적인 장난으로 한 생이 그저 긴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버린 레오와 아빠가 죽고 마치 그리움에 갇혀버린 듯한 삶을 사는 엄마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알마의 삶이 자꾸만 겹쳐졌던 것은 살면서 마주치는 너무나 익숙한 감정들 때문이었다. 외면하려 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리움 같은 감정들. 또 때로는 지독한 삶을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그리움.  

지독한 외로움을 어떤 것으로도 지워버릴 수 없던 기억이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 레오와 알마의 시선 속으로 녹아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항상 누군가에게 억지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레오의 모습에서 어떤 것으로도 감출 수 없는 외로움이 잔뜩 묻어난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누구라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마음에서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누가 보게 될까 상상하는 마음에서도, 자신의 이름과 함께 가족이 없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에서도, 그리고 도시의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열쇠장이인데도 자신이 열고 싶은 것은 어떤 것도 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자신이 쓴 두 권의 책이 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도. 작가는 레오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로 그렸다. <사랑의 역사>를 쓴 작가로서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자신의 삶에서는 작가가 아닌 그저 이름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처럼, 희미하게.

알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글들은 레오의 그것보다 좀 더 발랄하고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좀 더 깜찍하다. 그렇지만 너무나 일찍 사랑 그 후의 시간들이 진한 그리움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좀 더 슬프고, 좀 더 아프다. 아빠를 잊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리움 외에는 어떤 것도 마음에 담아둘 수 없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알마는 사랑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남기는 그리움은 어떤 것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니까.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엄마. 알마는 알아차린다.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단어들을 잃어버려도, 그리움이라는 단어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움이라는 책을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삶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빠를 잃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한 권의 책을 통해 연결된 다양한 인물들은 그 책을 통해 사랑하고, 살아가고, 그리워한다. 글을 쓰는 일이 그러한 것처럼, 책을 읽는 일 또한 누군가를 이해하는 방식이고,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책은 사랑의 연결고리였고, 사랑의 원천이었고, 사랑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삶이기도 했다. 친구 레오의 원고를 스페인어로 베껴 적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로사에게 주었던 즈비.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려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아무 것도 줄 게 없었던 그에게 <사랑의 역사>는 사랑이었고, 그리고 모든 것이었다. 사랑하는 남자 다비드로부터 <사랑의 역사>를 받은 샬럿에게 그 책은 사랑을 하는 방법이었고,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이었으며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 외에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엄마를 위해 <사랑의 역사>를 추적하는 알마에게 그 책은 사랑의 암호였고, 그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그 책으로 인해 알마가 태어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레오와 알마의 아들 아이작에게 <사랑의 역사>는 자신의 생부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고 자신의 근원에 대한 추적이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들로 <사랑의 역사>는 쓰이고, 복사되고, 읽혀지고, 번역된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내는 몇 겹의 삶, 사랑들.

작가는 책 속에서 가상의 책 <사랑의 역사>를 통해 책에 관한 은밀한 암호들을 아름답게 숨겨놓았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삶이 되는 비유(그러므로 결국 마지막 페이지는 죽음으로 장식될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다시 한 권의 책이 되는 비유(레오의 삶은 레오의 아들에게 보내는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진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겹쳐지는 과정(레오와 알마의 만남, 나아가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같은 것들. 결국 작가가 숨겨놓은 비밀들을 풀기 위한 암호는 ‘책’이고, 그 해답은 ‘삶’ 속에 있다. 

"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같으리라고 믿을 때도 있다. 내 책이 끝나면 나도 죽을 거라고. 방 안으로 바람이 불어와 내 종이들을 날릴 것이며, 날아가던 하얀 종이들이 모두 사라지면 이 방은 적막해지고 내가 앉아 있던 의자도 텅 비리라."

 

이 소설 속에 숨어있는 책을 둘러싼 비밀들은 결국 책에 대한 사랑 고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몇 부가 읽혀지고, 몇 부는 책방에서 두꺼운 먼지를 입은 채 쌓여있고, 또 몇 부는 반품되어 책의 운명을 다하게 되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만은 특별한 인생의 책이 되기를 바라는 욕심. 그것은 소설 속에서 <사랑의 역사>를 쓴 레오의 간절한 바람이자, 또한 그 속에 투영되어 있는 작가 니콜 크라우스의 작가적 욕심이기도 할 것이다.(그렇다면 그녀는 성공한 셈이다. 여기, 이렇게 책의 여운을 길게 늘어놓는 독자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 독자는 이 책 속으로 너무나 깊이 빠져버린 것 같으니까.) 그녀는 가상의 책 한 권을 통해 책과 삶에 관한 아름다운 이중주를 연주해냈다. 나는 사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부드러우면서도 차갑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절묘한 문장들에, 그리고 책의 곳곳에 숨어 있는 절묘한 문학적 감각들에 약간(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일이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데에는 감사한 마음마저 생겨났다.

소설 속에서 다비드가 여행 중 우연히 아르헨티나의 헌 책방에서 운명의 책, <사랑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 것처럼, 지금도 어느 헌 책방의 창가 외진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단 한 권의 책을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두근거린다. 내 마음의 껍질을 벗기고, 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올 그 미지의 책들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내가 너무 늦으면 안 될 텐데, 너무 오래도록 그 책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될 텐데,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레오에게 글쓰기가 아픈 것처럼) 책읽기 또한 아픈 것이라 해도, 책 속의 문장들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기꺼이 아플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조금 더 아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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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01-2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처럼 슬픈 이가 또 있구나

저, 무슨 이야긴지 알아요. 아린님, 저 알아요.

아린님. 여기 한번 들어왔다가는 못 나가겠어요. 이 서재 정말로 좋으네요. 이런 곳을 몰랐다니 지난 시간이 아깝지만 신나기도 해요. 아무도 모르게 여기 와서 정말 뒹굴뒹굴하다 가겠어요. 아린님의 문장들이 얼마나 단정하고 따뜻한지, 뭐라 답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기분 좋게 당황한 네꼬 드림.

ALINE 2008-01-24 22:31   좋아요 0 | URL
네꼬님. 이렇게 들러주시고 발자국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리뷰만 간간이 올리는 서재라 썰렁하기만 한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고요^^;
그리고 특히 그 문장을 이해주셔서 정말 반갑고 기쁘고 그래요^^
네꼬님이 뒹굴뒹굴하다 갈 수 있게, 여기 이 곳...좀 더 따뜻하게 데워놓아야 할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