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불과 천년이 넘지 않는다. 물론 그전에도 책은 있었고, 지금과 별단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때의 책은 지금의 개념과 사뭇 달랐다. 책 한 권이 집 한 채인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가 손에 넣고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종이의 발견, 즉 중국의 한지의 발견과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 중국의 종이가 유럽으로 넘어가 인쇄의 발달과 더불어 지금의 책이란 개념이 만들어진다. 종교개혁은 책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다. 아니 가능했다. 그러니 종교를 역사에서 배제할 수 없고, 문명을 종교에서 불리할 수 없다.  




읽기의 확장은 지식의 확장과 밀접하나 사생활과 쾌락에 더 친밀하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와 피셔의 <읽기의 역사> 중에서 독서, 즉 읽기에 집중한 것은 알베르토 망구엘이고 '역사'에 가까운 것은 피셔이다. 여행은 일종의 탐닉이고, 여행이다. 18세기 유난히 여행 소설이 많이 출간된 이유를 여행하지 못한 이들의 대리만족 때문이었다고 한다. 읽기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여행 자체다.  


















2015년 카트린 지타의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 아니 이유를 밝히니다. 많은 공감을 일으키지만 실제로 편한대신 위험이다. 요즘처럼 혼자 여행 부추기는 시대도 없지만 낯선 해외여행의 경우는 위험천만하다. 필자는 혼자 여행을 권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것을 권한다.  


난 여행하면 항상 책을 챙긴다. 독서는 여행을 방해한다. 보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한다. 책에 몰입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리 유명한 곳에 가도 볼 것이 없다. 차라리 책이 좋다. 그래서 책은 여행을 위해서, 여행 때문에 읽는다. 그리고 여행 후에도 읽는다. 독서보다 좋은 여행을 보지 못했다.  



독서는 읽기, 앎, 호기심, 성찰, 반성, 상상, 수많은 수식어를 갖는다. 책 속에 길도 있다고 말한다 꿈도 책 속에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책은 나를 읽는 것이고, 나를 보는 것이다. 그것에 실패하면 독서도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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