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인간, 그들을 보는 시


이번에 북인더갭에서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차브' 생면부지의 단어다. 경제학에 젬병인 탓에 불가피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며 찾았다.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잉여인간'이다. 한국일보의 박주희 기자의 차브에 대한 설명이다. 

차브(chavs)는 영국에서 “무식쟁이 하층계급”을 뜻하는 신조어다. 영국사회에서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차브를 공격하는 법’ ‘차브를 마주치지 않는 루트가 담긴 여행상품’ 등 이들에 대한 비아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주류인사들은 차브를 ‘복지 식객’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렇다고 차브가 불한당이거나 세금에 의지해 살아가는 식충이는 아니다. 청소부, 슈퍼마켓 계산원, 패스트푸드 점원 등 평범한 노동자다. 그럼에도 이들은 “더러운 돼지” 취급을 받는다.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웨인 루니, 가수 셰릴 콜도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브라고 놀림 받는다. 이 단어는 2008년 옥스퍼드 사전에 정식 등재됐다.


중산층의 모멸대상인 차브, 그러나 그들은 어엿한 생존을 위한 노동을 지불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러나 풍성할 수 없는 수입으로 삶을 겨우 '지탱'한다. 이 책에서 두 소녀의 실종 사건을 다루면서, 결국 두 소녀의 실종은 현상금을 노린 자작금임을 밝혀지면서 차브 계층에 대한 모욕적인 태도로 돌변하게 된다. 영국 시민들은 소녀의 부모를 비도덕적인 존재로 비아냥 거리며 '너희들은 어쩔 수 없다'라고 단정 짓는다. 현재 영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들은 왜 차브가 되었는가? 먼저 잉여인간부터 들여다 보자. 잉여인간은 1958년 소설을 통해 생겨난 말이지만, 우습게도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한다. 성정을 엉망으로 받아로 아들을 향해 아버지는 말한다. 

"너 대학 안가면 뭔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剩餘)는 사전적으로 쓰고난 나머지란 말이며, 사회적으로 있을 필요가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를 뜻하다. 예를 들어 노숙자, 거지, 깡패, 저능아, 천민계층 등을 뜻한다. 차브를 번역하면 '잉여인간' 쯤 될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차브, 즉 잉여인간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저자는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1980년 탈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이 사양길로 접어 들고 소수가 이익을 독식하는 금융산업을 육성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 노동은 존재의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로 보는 순간 노동과 돈을 치환시킨다. 노동계급의 소멸이 일어나고 비정규적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이 때 언론은 삶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의지로 몰아간다. 결국 가난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차브의 등장이 과연 개인의 문제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장하준은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동일한 일을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수십만원을 벌고, 어떤 나라에서는 고작 몇 달러에 머무는 현상을 찾아낸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에 10달러 이상 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게으른 탓인가? 그들이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장하준은 뉴델리의 버스기사와 스웨덴의 버스 기사 수입을 비교해 스웨덴이 뉴델리 버스보다 50이상 수입이 높다. 50배 이상 운전을 잘해서일까? 아니다. '보호주의 덕택'이다. 만약 스웨덴 버스 기사가 뉴델리 버스 기사와 함께 지원서를 낸다면 사장은 누구를 선택할까? 운전을 50배 잘하는 스웨덴 버스기사를 선택할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차브를 만드는 것은 저자의 주장처럼 개인의 능력차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리 일해도 부자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법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도 어느새 '알바'와 시급제 노동자가 급속하게 많아졌다. 심지어 노동회사에서 기업에 파견하는 파견 노동자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형태다. 실제 현장 직원들과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하고 동일한 작업을 해도 수입도 반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7월 10일 한겨레 신문에서는 바로 이점을 들면서 실제적으로 삼성이 모든것을 간섭하면서도 사고가 일어나거나 노동문제가 일어나면 파견된 노동자이기에 삼성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595214.html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직접 일했던 아줌마는 하루 8시간을 일해도 100만원도 안되는 수입에 질렸다면서 두 달만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수고한 노동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수억에 달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진짜 노동자는 착취 당하고 있는 것이다. 차브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그들을 무능하고 게으론 존재, 복지비용이나 탐하는 존재로 낙인찍고 있다. 이러한 낙인 배후에는 구조적 착취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복지비용을 더욱 줄여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은 배분함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를 만들어 내고, 강화 시킨다. 출판사의 소개문을 그대로 옮겨 보자.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섬유, 탄광, 자동차 등 한때 잘나가는 제조업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대처가 집권하면서 거대한 탈산업화가 시작되었고, 영국은 금융과 정보, 엔터테인먼트 같은 비제조업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처는 노동조합을 강하게 탄압했고, 광부노조를 힘으로 굴복시킴으로써 노조가 더이상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90년대 집권한 신노동당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는 모두 중간계급’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노동 유연성을 강조했고 누구든 실력만 있으면 중간계급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대처 시대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이미 좋은 일자리는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으며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했다. 한때 존경받는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안정된 소비층을 형성했던 노동계급은 사라지고 대형 할인마트 판매원, 콜센터 직원, 비정규직, 파트타임 노동자, 경호원, 간병인, 중소 자영업자 같은 저숙련 일자리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이들 신 직업군은 바로 오늘날 끊임없이 경멸당하는 차브의 직업군과 일치한다. 


흔히 정치인들은 노동계급 개개인의 게으름과 열망없음이 차브 같은 부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결정적인 원인은 다수 노동계급을 먹여살리는 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금융 같은 산업에 올인한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게다가 차브를 식객으로 몰아붙이는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은 하층민 사회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국 총리 제임스 캐머런 같은 부류는 대부분 사립학교 출신에다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를 나와 부모의 재력과 연줄 덕분에 무급 인턴으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난 40년간 노조와 산업에 전쟁을 선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춤으로써 부자들에게 돈을 퍼주었으며, 서민들의 세금(부가가치세 같은)은 올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한바 상층의 부가 아래로 떨어진다는 ‘낙수 효과’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차브'는 곧 '낙인'이며, 라벨링 효과를 부른다. 차브라는 용어를 통해 그들을 차브라는 단어로 정의함으로 단어 안에 가운다. 그들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역겨워한다. 이곳에 또다른 배제와 차별이 존재한다. 낙인은 결국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며, 그들은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편견에 빠지게 된다. 차브 곧 잉여인간의 탄생은 가진 자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부당하고 비열한 계급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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