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 34회 

근대는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되었다

 


스티븐 브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교황청의 필사가로 있던 포조가 교황의 권위가 무너지고 붕괴되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한 권의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는 역사상 유명했던 책 사냥꾼(book-hunter)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lrerum natura)]을 찾아 세상에 퍼뜨린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저자인 루크레티는 고대 헬라철학의 한 분파였던 에피쿠르스학파의 의 후계자이다. 이 책은 우주는 신의 도움 없이도 움직이고, 사후세계에 경험하게 된다는 종교적 공포는 인간생활의 적이며, 쾌락과 미덕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러 뒤엉켜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루크레티의 사상적 배경은 현세적 쾌락을 추구했던 에피쿠르스학파의 원자론이다. 원자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가장 작은 것이다. 원자들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영속적으로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여 일탈의 결과로서 물질이 생성 된다고 보았다. 근대에 들어서 원자론은 막스주의 사상적 기원이 되며, 행동주의 심리학이 뒤따른다. 주인공인 포조는 동반자인 니콜리에게 이 책을 필사하게 함으로써 중세 천 년 동안 금기시되었던 이단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르네상스 운동을 발흥시키며, 종교개혁과 인문학적 정신을 배양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술에 스며들어 보티첼리와 다 빈치에게 영감을 주었고, 몽테뉴는 이 책에 심취하여 종종 읽었다고 전해진다. 갈릴레오, 프로이트, 다윈,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저자인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의 권위자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기원전 4세기의 에피쿠르스와 기원전 1세기의 루크레티우스, 15세기 포조 브라촐리니로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을 박학다식의 풍성한 역사적 배경과 다이나믹한 필체로 그려 낸다. 근대의 탄생을 위한 정신적 기원이 된 이 책은 신에게 종속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독립적인 자유를 소유한 존재로서 인간을 이야기 한다.


 

주인공인 포조가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의 필사가로 있을 당시 젊은 인문주의자였던 라포 다 카스틸리온키오가 [로마 교황청의 탁월함과 존엄성(De Curiae Commodis)]이 유행했다. 키케로 풍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가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타자의 입을 통해 고발하는 형식이다. 라포는 상상 속 대담자인 안젤로를 통해 교황청의 도덕적 타락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교황청은 범죄의 소굴이며, 가족 잔혹행위, 사기, 속임수가 횡행하는 곳으로 치부한다. 상대 대담자로 라포 자신이 나와 교황청을 옹호하는 변론을 전개한다.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야한 농담이 책 전반에 흐르며, 교황에 대한 조롱과 타락상을 고발한다. 주인공인 포조의 눈으로 볼 때 교황청의 사무국의 모든 사제와 수도사들은 모두 전부 위선자였다.’ 중세적 경건으로 포장된 교황은 포조의 눈에는 그저 욕망의 육체일 뿐이었다. 결국 그로 하여금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lrerum natura)]을 찾아 떠나게 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영향을 받은 보티첼리의 그림. 고대 신화적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 있으며, 

루크레티우스가 계절의 부활을 노래하던 것에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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