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사회 읽기



정지

진입금지

금연

철조망

빨간등


우리의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게 속박하는 것들이다. 자유를 위한 속박이다. 잘 지키면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있다고 꼬득인다. 하기야 길가에 꽁초가 버려진 것을 보고 누가 좋아하랴. 나 같은 금연가가 음식점에서 담배냄새 맡아가며 밥을 먹는 것이 어찌 반갑겠는가. 최소한의 배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지 말라고 할까. 하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고, 구속된다고 겁을 줄까. 이것이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굴욕적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당신의 지혜로운 선택을 믿습니다!'라고 하면 안 될까. '당신 자신의 건강을 위해 타인을 위해 금연을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안될까. 왜, 이곳에서 흡연시 몇조 몇항에 의거 얼마의 벌금이 부과됩니다.라고 해야할까.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단속하고 금지당함으로 억압당하게 된다. 심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나고 모르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이유는  금지사회의 암울한 풍경이다. 서로 합의하여 만들어가는 '우리'의 거리가 아니가, 단속되고 금지함으로 만들어진 '억제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남의 것이 되고, 숨어서 하는 것이 더 맛있는 것이다. 불법을 저지름으로 오는 쾌감을 즐기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다. 


금지사회의 치졸함은 단속을 통한 통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단속은 색출작업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밝히려는 의도다. 누군가의 잘함이 아닌 못함을 지적하는 가장 비열한 방식이다. 금지는 한계를 설정하고, 권한을 축소하고,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에 염장을 지른다. 어느 아파트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배달원들의 엘리베이터 탑승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기사) 기가 막힐 일이다. 놀라운 사실은 새벽기도회를 나가는 교인들이 민원을 많이 넣었다는 것. 새벽에도 배달하는 곳이 있나? 이 또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단속하회는 불가피하게 투명사회라는 가면을 쓴다. 투명하게 하자고 외친다. 그리고 그곳을 들여다보고 입을 막는다. 돈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왜? 나의 경쟁자를 도와준 자를 살려 줄 수는 없는 일ㅇ다. 한병철은 '투명사회'를 '폭력'으로 단언한다. 숨어서 욕하는 재미 없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세상물적의 사회학>과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역시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욕망을 읽어냄으로 진정한 사회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준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마치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원시용 안경과 근시용 안경이 있다. 선글라스도 있으니 여름에 쓰면 제격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는다. 네 권의 책이 이 시대를 읽은 중요한 혜안을 던져준다. 필독서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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