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자기혁명, 그곳에 자기혁명은 없었다.  

 

너무 가혹한 주장일까? 너무 유명하고 깊이있는 인문학의 수준을 쉽사리 비판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쓰는 책들은 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그에대한 평판은 매우 높다고 해야할 것이다. 나에게도 박경철씨의 책이 세권이나 있다. 한 사람의 저자의 책을 세권이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결코 범상치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후는 자기혁명)은 아무래도 실망감을 감출수 없다. 2주 전에도 책을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짧게 쓴 적이 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자기혁명이 무엇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혁명에 관한 주제를 알기 위해 다른 서평자들의 서평도 읽어보고 미디어 소개란에도 들어가 읽어 보았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혁명이 분명히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이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혁명이란 고작 자신을 좀더 나은 사람으로 계발하고 성공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저자가 혁명적이라고 말했던 부분을 살펴 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틀에 스스로 가둔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두 스스로 만든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그 틀을 유지하느라 애를쓴다. ... 그 경계는 그의 사유와 행동을 제약하게 한다. 이때 중요한것이 혁명성이다. 혁명성은 안주하려는 인간의 속성과 달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슴없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것을 타파하는 행동이 바로 혁명성이며, 그것을 행한 결과가 바로 혁명이다."(159쪽) 

저자는 혁명성은 안주하려는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혁명성으로 주장한다. 두번째는 '심리적 감옥'이라고 말한다.(159쪽) 다른 곳에서는 혁명성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달리 부르고 있다. 분명 혁명과 진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라는 개념은 혁명성과 일치시킴으로 혁명=진보의 공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것에 '권태'를 느끼면서도 '변화를 이끌 용기가 없다'고 말한다. 다시 저자는 '보편성과 초월성'을 대립시키며 이중적 속성을 인간이 부여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데, 보편은 초월적인 의미이며 서로 보완적 단어이다.(164쪽) 보편은 플라톤의 초월적인 세상인 이에아를 말하며, 현실은 '개체'이다. 대립구도는 보편과 개체이며, 종교적으로는 초월성은 내재성과 대립된다. 그는 심지어 철학이나 종교, 명상에 심취하는 것과 자연주의자가 되는 것을 현실을 등지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패배주의에 물든 무력한 초월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나아가 저자는 점점 애매한 말로 논리를 전재한다. "사회(타인)에 대한 나의 의존을 극복하고 홀로 서려는 자아는 초월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은 독선이다. .. 사회에 참여하는 나를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166쪽) 

저자는 분명 초월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를 버리는 극단적 초월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과 떠난 초월은 진정한 초월이 아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원론적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즉 보편=초월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개체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지만, 이것이 자기혁명과는 어떤 연관을 갖고 있는가를 분명치가 않다.  

말콤글래드 웰의 [아웃라이어]를  비판하면서 '일만시간의 법칙'의 모순을 지적한다. 

 

 저자는 일만 시간을 다 채운다고 해도 전문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시간을 채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명은 '달인'이지만 다른 사람은 비달인'이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그들을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었을까? 저자는 그 답을 '재능'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주요 논점은 노력보다는 오히려 재능이다."(193쪽)  

말도많고 탈도 많은 재능이 이곳에 등장한다. 저자의 주장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 자기혁명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주제를 끌고 나오고 말았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중세적으로 표현하면 '신의 은총'을 입은 자들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능의 탈렌트는 헬라어 성경인 달란트에서 가져온 몰로 신에게서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자기혁명은 물건너 간 것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재능을 곧바로 '잠재력'이라는 확장된 주제로 이어간다.(194쪽)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은 경험-체험이다.(198쪽)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체험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있다고 주장한다.(198쪽)  

 

그럼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계발할까? 버트란트 러셀은 인간을 원죄형, 자아도취형, 과대망상형이라는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번째 인간인 원죄형 인간은 기존의 사회가 가진 전통적인 가치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원죄형 인간은 기존의 가치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분노를 내면서도 주저 앉아있는 대부분의 사람을 말한다. 자아도취형의 인간은 비겁하고 권력에 쉽게 타협하는 출제지향의 인간들이다. 세번째 과대망상형은 스스로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완고하고 유연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절벽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마차같은 대책없는 인간이다. 저자는 이곳에 한 가지의 사람을 더 추구한다. 그 사람은 자기만의 색깔로 도전하는 인간이다. 박경철씨는 이 사람을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한다.(231쪽) 주인의식이란 무엇인가? 태풍에 흔들리고 휘더라도 바닥에 뿌리 내린 '갈대'같은 인생이다. 즉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확신과 주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 애매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바람은 기존의 부패한 세상의 유혹이고 낙엽은 그런 가치에 떨어지고 수긍하는 수동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진정한 도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거부하는 것이 혁명이란 말인가? 독서는 결국 지금까지의 전통을 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진정한 혁명은 기존의 것을 거부함으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또한 분명한 오류다.  

필자의 짧은 소견인지는 몰라도 2독을 통해 감?잡은 박경철씨의 자기혁명이란 자신 안에 내재된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는 것을 독서이고, 이것을 훈련하는 것은 소극적인 면에서 기존의 가치를 버리는 것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현실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학과 습이 병행되어야 진짜 공부다' 부분에서 명확해 진다.(272쪽) 저자는 이곳에서 거짓된 학습을 주도하는 '스펙문화'를 비판하며 자신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부는 배움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익히고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학습을 경험론적으로 풀어가고 있음을 본다.  앞서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 진정한 학습이란 머리가 아닌 삶 즉 경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저자는 실천적 삶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에 이르는 것임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좋은 책이며, 좋은 내용이다.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제목에 '자기혁명'과 내용의 자기혁명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자기계발'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많은 것을 본 받고 배울만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아쉬움은 제목과 거리가 먼 저기계발의 문제 였다는 점과  청년의 시기를 형이상학적으로 도전의 시기라고만 정의하고 실천적면에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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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se 2012-01-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추상적이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법한 좋은 내용들의 열거를 보면서 자기혁명의 이름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미소 2012-01-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은 누구나 변화하고 싶지만 또한 변화한다는 것은 나의 고정된 습성과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깨치는 것으로 불편하고 성가셔서 쉽게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작심삼일'이 되지요. 저는 자기혁명이라는 것이 원대하고 획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배우고 느낀것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도 자기혁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서와 사유에서 온 저자의 철학을 보는 것 같아 책을 보는 내내 줄을 긋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제 속에 꿈틀대는 변화의 기대를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작은 실천들을 행하고자 목표를 정했으며 당장 오늘부터 하고 있습니다. 제속에 자기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안 2012-01-26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랑 같은 의견이시네요^^
영수국중심으로 열심히만 하면된다는 것의 학문적 "키치"의 새로운 박경철씨 버전이라고 봅니다
인기에 편중한 이들의 이목을 끌어
책만 몇권 더 판 샘이된거죠

남의 얘기만 잔뜩 끌어다 모은 씁쓸한 논문집
정작 자기가 정의해 놓은 말은 있는데 조심스러워 대강 마무리지은 자기혁명적 저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