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평점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시기적절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격하게 표현하면, 사회가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찬반을 일으키는 다양한 현안을 지켜보며 으레 '뭐 저렇게 반대하니까 그렇게 안되겠지.'했던 것들이 거의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을 목도하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지 않으면, 더불어 나와 생각의 궤를 함께 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손쉽게 무너질 수 있겠구나, 실제로 무너지는구나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수순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낸 것이 시민단체 활동이었다. 그러면서 각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나는 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직접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데, 단체들은 회비나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인 듯 보였고, 시민이 직접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미있는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아.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을 활동가들이 대신해서 하고 있으시 회비라도 열심히 내야겠다.'라는 답이 나왔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건가?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는 국회의원'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세금을 회비로, 국회의원을 활동가로 바꾸기만 하면 시민단체라는 것도 똑같이 대의제가 적용되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닌데!
이런 의문이 답답함으로 바뀔 때쯤, 이 책이 그 답답함이 내 개인적인 소회가 아님을, 구조적인 것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 (중략) ... 그 세대의 후예들이 자신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설득력 있는 호명을 누구로부터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력할 것일 가능성을 무시한다. 시민권의 쇠퇴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일 수 있는 것이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30쪽
이익집단들이 대중적 회원 기반을 동원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틈새시장의 출현은, 시민사회의 쇠퇴가 아니라 정부 제도의 변화에 그 책임이 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31쪽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든지 뭉치지 못한다든지 하는 견해에는 늘 "자기만족과 자긍심을 중히 여기는 문화적 맥락(23쪽)"에서, 혹은 "사회자본이 침식된 것의 정치적 결과는 정치 참여의 원천들을 뒤흔들어 놓았다(28쪽)"라는 식의 해석이 가장 많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문제는 개인주의'인 것이다. 나도 이런 견해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고 있던 터였는데 그것을 제도적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고 또 희망적이었다. 사람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제도에 변화를 꾀해보려는 시도가 훨씬 해 볼만한 일이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족일수도 있겠지만 이는 몇년 전부터 일반화된 20대에 대한 (성토성의) 평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IMF를 겪으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더 중시 여기게 되었고 그 결과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게 되었으며, 혹여나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386세대처럼 집단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싶은 20대들이 적지않고 그 뜻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은데 단지 뭉쳐본 경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관점에서는, 87년 체제 이후에 민주정부가 등장하면서 실질적으로 20대들은 "설득력 있는 호명"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페리클레스를 언급하면서 "최고의 포상이 있는 곳에, 포상을 위해 경쟁하는 최선의 시민들도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 (중략) ... 이른바 정부를 민주화-법원에 접근하거나 행정 규칙의 제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 등-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오늘날의 개혁 조치들은, 실제로는 정치 엘리트들이 대중 정치의 장을 우회해 민주적 지지를 동원하지 않고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21쪽 中
다른 한편에서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낀 강렬한 인상은 바로 '역설'이었다. 민주화의 조치들이 오히려 민주적이지 않은 현상을 빚어내는 그 아이러니함. 그것을 드러내주는 것이 나에겐 이 책의 매력이었다. 저자들의 말마따나 "그렇다고 미국 민주주의가 죽은 것은 아니다. (중략) 이런 변화가 미국 정치에서 일반 대중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어떤 거대한 음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15쪽)" 그저 민주화의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것들이 "서로 결합해 작동하면서, 정부에 대해 개인으로서 접근하는 새로운 정치를 낳았고, 그 가능성을 이용할 수 있는 지위의 사람들을 위한 '개인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17쪽)"낸 것이다.
잘못된 결과는 응당 잘못된 출발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인과론적이고 단선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쉽고 편리한 접근이 잘못된 해석을 낳을 확률이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특히 현대사회의 현상들을 저런 식으로 파악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뒤돌아서면 그 사실을 까먹고 다시 단순한 해석과 방법을 내놓는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 책에서 느꼈던 역설은 저자들의 날카로운 분석때문에 가능했고, 그 분석에 허를 찔린 것 같으면서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조를 보고, 또 그 관점에서 역설적인 지점을 짚어낸 것만으로도 이 책은 굉장한 몰입도를 가지고 책을 읽게 만들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그들의 관점과 분석이 다방면에서 응용되고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은 해부학의 교과서 격인 '그레이스 아나토미(Gray's Anatomy)처럼 최근의 민주주의에 대한 훌륭한 해부학 교과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