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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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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이후로 '문과'라는 영역(인문학, 사회과학 등)에 줄곧 있어온 나는 과학에 대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안경'이라는 기대를 해왔다. 그래서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과학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과학을 접하고 나를 확장시켰던 경험은 없었다. 뭐 유사한 경험이라 한다면 대학 시절,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나와는 생각의 경로가 판이하게 달라서 대화가 잘 안 통했다는 씁쓸한 경험이었다.

 

세상만사는 과학에서 시작하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의 배후에도 과학이 자리 잡고 있다.(4쪽)

 

그리고 서문을 펴자마자 나는 그 씁쓸한 경험이 떠올랐다. 과학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하지도, 부인할 길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는 과학만능주의, 과학지상주의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책과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객(客)이 된 듯한 느낌도 불편했다. 마치 이과생들 수업에 문과생이 들어가서 수업듣는 느낌, 아니면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었는데, 실상은 그 반대이다보니 수강취소를 하고 수업에서 나오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이 책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러한 태도는 거두어졌다. 물론 이 책이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며 손에 꼽을 만한 책이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책이 주는 어떤 신선함때문에 생각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과학은 증거에 뿌리를 내리고, 끈질긴 의문을 제기하여 바른길을 걸으며, 자기비판과 엄정한 연구방법이라는 틀 속에서 움직이는 방법론이자 철학이다.(6쪽)

 

사실 나에게 있어 인문학, 쉽게 말하자면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이 영역은 어느 분과학문보다 우월한 존재이다. 피라미드를 그린다면 가장 꼭대기에 있다. 학창시절, 수학을 참 못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수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것의 철학적 성격때문이었다. 과학도, 생각해보면, 역시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의 초입부터 내가 분명히 하도록 요구받았던 건 내가 생각하는 과학이란게 무엇이냐는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었다. 신간을 살피면서도 늘 과학분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나에게 과학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과학은 인문학에 포섭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철학화 된 과학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등이 인문학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게 했던 그 '과학'을 전제하고 이 책을 접할 것을 요구하는 듯 했다.

 

 

과학은 복잡한 문제를 관찰 및 해결하고, 나라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고, 민주주의를 고무하거나, 심지어 민주주의의 불꽃을 새로 지피게 해주는 렌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렌즈 덕분에 인간은 눈앞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이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는다.(6쪽)

 

확실히 '인문학적 사고방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은 차이가 있는 듯 하고, 나는 두 개를 분류하는 것이 유용하고 유익한 것 같다. 이러한 분류가 좀 더 가시적으로 사고의 차원이라는 것을 만들어주고 그것을 넘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문장에서 이 책의 기획자는 한 쪽의 방식이, 즉 과학적 사고방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고, 앞서 언급했듯 나는 이 책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2개의 주제에 대한 44명의 대담자들이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갖고 있는 것인지 크게 걱정이 되었다. 물론 기획자의 의도는 내가 받아들인 바와 다를 수 있으나 몇 번을 읽어도 나의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밀고 간 것이 아닌가하는 판단을 했고, 그것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22개의 주제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스토리텔링을 진화론과 연결시키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지점이 내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의도 아니었나 싶다. 즉 '과학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도 깔려있다!!' 목차의 제목만 보면 (내가 생각하기에) 인문학의 전형적인 주제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어떻게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이해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든 현상에 대해 과학이 가지는 지분을 강조하거나 확장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분'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쑥스러워졌다. 정말. 오히려 '과학은 이런 주제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거야'라는 나의 오만을 신선한 방법으로 깨트려 주었고 편가르기하며 지분을 정산하려 했던 건 나였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읽으며 그리고 분과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최근의 추세를 지켜보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배움의 폭을 확장시켜 나가겠다는 나의 의지는 말뿐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부터, 나도 모르게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각 챕터를 시작하기 전에 대담자들의 사진을 크게 박아 넣은 것에 조금은 당황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44명이나 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 대해 지면을 할당해 사진을 넣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첫 장을 장식했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라는 개념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바로 첨단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는 앞으로 이들의 이름과 대화를 기억하며 예의주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도 인문학과 과학을 직조해나가는 이들의 감각을 계속해서 복기하며 체득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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