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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계약이다 -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박수빈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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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나이를 쌓아올려 가면서 사람을 볼 때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성격은 어떤지, 취미는 무엇인지, 가치관은 비슷한지.. 이런 기준을 종합해 누군가를 만날 떄 들이는 돈이나 시간만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관계를 지속하고 아니면 서서히 멀어지는 나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 정도 되니 인간 관계도 어느 정도의 투자, 계약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속물이다 싶으면서도 시간과 돈에서 부자유한 속인이다보니 내 생각에 좀 더 타당성을 주기로 했다.

사람이 맺는 수 많은 관계 중 돋보이는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연인관계’를 내세울 것이다. 다른 관계들도 정신적 교류는 기반으로 하지만 특별히 연인관계는 ‘신체적 교류’ 도 플러스된다. 이 은밀한 교류는 타인과 조금 더 긴밀한 결합을 할 수 있게 한다. 크게 보면 온 인류가 대를 이어 가게 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개를 빼어 둘러보면 영화고 책이고 온갖 곳에서 사랑,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환상적이다. 어떤 굴곡이 있더라도 끝끝내 극복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당연히’ 연애를 해야 한다 생각하고 그 결실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저것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로.

그 때문인가 이것 저것 재보지 않고 시작한 사랑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듯 그 둘이 엮어내는 이야기도 같을 수 없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 사이의 일’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인권 침해’가 너무도 많다. 가볍게는 사생활 감시한답시고 핸드폰을 몰래 보는 일이나 상대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가스라이팅. 요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데이트 폭력’ 과 ‘디지털 성범죄’까지. 특히나 피해자가 대개 특정 성별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사랑이라는 확실하지도 않은 감정을 위해 심하면 본인의 목숨도 걸게 되었다. 여기에 ‘사랑’ 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가.

‘연애’와 ‘계약’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의 두 단어를 연결짓는 제목이 사람들에게 여러 물음표를 띄우겠거니 싶었다. 허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연애를 계약에 비유하고 법제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이 책이 지금 나오지 않았더라도 머지 않은 미래에 나왔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시간들을 만들어 가는데, 이것 저것 재보고 비교해 보고 관계를 맺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감정에 혹해 관계를 시작하기엔 확인하지 못한 충돌 요소가 시시각각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혹시나 내 솔직한 의견에 그 사람이 애정을 거두어 갈까 두렵다면 그런 사람은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는 게 좋다. 상대의 눈에 들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은 애초에 오래 가지 못할 것이거니와 자기 입맛에 맞춰 상대를 바꾸려는 사람도 좋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상호 존중과 신뢰가 기반이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이지도 않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연애인데 나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사람과 상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손절’ 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짚신도 짝이 있단 이야기가 괜히 있을까. 당장 눈 앞의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되어있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려면 그에 걸맞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맞음. 어쨌든 누구든 연애를 한게 된다면 이 책의 부제처럼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로운 속에서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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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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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30대를 꼭 1년 앞둔 20대 여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첫째' '딸'로써의 기대와 역할에 충실히 부응해 왔고 25살에 취직하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 4년차다. 19살엔 대학만 가면, 24살엔 시험에만 붙으면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매일 배수진으로 내몰며 '의지와 노력' 이라는 단어로 점철된 생활 끝에 맞이한 스물 다섯. 턱 끝까지 숨 차게 하던 레이스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 내 앞에 내밀어진 것은 '예의바르고 친절한 1등 신붓감으로써의 역할' 이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다음 경기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었을 뿐, 어느새 내 앞엔 새 출발선이 있었다. 

  어렸을 땐 당연히 달려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건 줄 알았다. 어딜봐도 모두 나와 비슷했고, 열심인 나를 모두가 제대로 하고 있다며 칭찬했다. 거의 다 왔다며 조금만 더 힘내라고 격려해 주기까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돌아보니 옘병, 구라였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주변 모든 것이 뒤틀려 보였다. 눈 앞에 그려지는 것 이면에 내가 진짜 알아야하고, 봐야할 것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탈주하기로 했다. 뛰쳐나가는 나를 두고 어른들은 피와 살이 될 충고인양 제각기 한 마디 했다. 처음엔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하는 건 아닐까 마음 졸였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일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한 사람들 말에 마음 쏟느니 스스로의 말에 신경 쓰는게 훨씬 더 의미있다에 도달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2832를 조심하라.' 결혼에 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저 나이 대가 되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듯 결혼을 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막 그 시기에 진입했다. 아직까지는 주변에 결혼 소식이 자주 들리지 않아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면서도 대화 주제로 심심찮게 오르는 '결혼'을 보며 경계해야 겠다는 다짐도 종종 한다. 

  그렇게 '결혼'이 내 앞에 빈번하게 등장할 수록 '사랑' 이라는 가치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이 결혼을 선택했지만 최우선에 사랑이 있진 않았다. 훌라후프를 자유롭게 돌릴 공간 여유가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 신혼 부부를 위한 법의 테두리 속에서 보호 받고 싶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지난한 삶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줄 것 같아서 등이 먼저 등장했다. 하지만 결혼에 작은 기대라도 하면 안 되는 것 마냥, 내가 1만큼의 기대를 하면 10에 상응하는 짐을 지우는 것이 여성에게 결혼이 뜻하는 것이었다. 가정을 위해 나의 커리어를 내어주어야 하고, 나의 주장도 슬그머니 접어야 하며 그러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어느 샌가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그런. 정세랑 작가님 신간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이 내가 달렸을 그 트랙 위에 있었다. 이미 나를 무수히 앞질러 갔거나, 내가 탈주 하지 않았다면 같은 곳을 달리고 있을 그들, 또는 나처럼 자신을 위해 트랙에서 벗어난 여성들까지.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마중나갈 인물들이 이번 가득했다.

 소설은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꼭 그 트랙 위에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다양한 선택지를 여성 또한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를 불러주는 사람을 따라갔지만 좋아하는 것을 위해 선택을 번복해도 되고, 결혼에 기대도 되고, 그러지 않아도 되고. 힘들면 도망쳐도 되고, 이혼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나'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자고, 찬 바람 맞으며 머리도 식힐 겸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그렇게 소설은 우리를 부른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큰 일 날 듯 으르렁댄다. 예전엔 그런 모습에 움찔했을 수도 있다. 이젠 겁내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색을 찬란하게 빛내고 있다. 당신이 그곳에 있어주기에 나도 이 곳에서 빛낼 수 있다. 서로의 빛을 확인하며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된다. 


 
 p. 20  결혼은 겉의 포장을 걷어내면 결국 법의 문제, 제도의 문제, 보호의 문제이니 말이다.

 p. 24  더 좌절할 때는 젊은 세대의, 충분히 개인주의자가 될 기회가 있었던 세대의 사람이 비슷한 말들을 할 때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기성세대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여 여자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말들을 할 때, 여자는 마음속 리스트에서 그 이의 이름을 지웠다. 너는 이제 그만 만나야 하겠구나, 

p. 128 되게 바보 같은데, 사랑받는 기분이다? 클라이언트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거나 무서운 윗사람한테 칭찬을 들으면, 프로답지 않게 갑자기 눈물이 글썽 고여. 나는 사랑도 꽤 받고 컸는데 왜 하필 그런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까? 미쳤나봐. 고장났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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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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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도 아닌 일에 울컥하는 요즘이다. TV를 넘기다 익숙한 그림체가 등장하기에 봤더니 '벼랑 위의 포뇨였다극적인 갈등 없이 동화 같은 서사로 진행되는 그 영화에서 가장에 기억에 남는 건 포뇨가 정말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는 부분이었다이전에 한 번 본 적 있는데도 그 장면의 전후가 어땠는 지는 기억 나지 않고 포뇨가 까르륵 웃는 장면만 자꾸 맴돌았다여기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같이 보던 여동생이 알면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 해도 나를 유난이라 생각할까봐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었다이 외에도 빨강머리 앤이 자신에게 무례했던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솔직하게 화를 낼 때즐거운 멜로디의 자우림 노래를 들을 때 눈물이 핑 돈다내가 생각해도 너무 사소해 민망할 정도다하지만 이젠 나이도 적당히 먹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만큼 어리숙 하진 않다. 8장의 제목인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처럼 상황보다 내 감정이 우선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살피고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내가 무어라고 느끼건 간에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까봐괜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침묵을 지켰다그 순간엔 마음이 편했고표면적으로는 어떤 문제도 없어서 잘 넘어가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석연찮은 무언가가 마음 한 켠에 쌓여갔다그건 내 맘 하나 편하자고 했던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덮었던 상처를 다시 한 번 건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가격과 실용성을 따져 구매했기에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그 물건의 생산 업체는 우익 단체를 후원한다던지내가 즐겨 듣는 밴드 보컬이 성추문에 휩싸여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던지와 같은 일들나에게는 즐거움으로편리함으로 다가왔던 많은 것들의 뿌리를 찾아 파고들어보면 마냥 진실되고깨끗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고민할 때 마다 주변 사람들은 뭐가 그리 예민하냐며그런 거 하나하나 다 따지면 뭘 입고뭘 먹고 살아야 하냐너무 융통성이 없는 것 아니냐며 작은 핀잔을 주곤 했다자라고 배울 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항상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 속에 살게 하고선 막상 사회에서는 그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니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건네주었던 책이나영화어른들 모두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되받아치고 싶었다그렇게 조금 더 영악하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던 차 경애와 상수를 만나게 됐다.

 

   경애와 상수는 모두 소신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다경애는 회사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그렇게나 절실한 마음이었건만 그 안에서 생긴 또 다른 약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성희롱을 당한 동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비록 파업이 흐지부지 되긴 했으나 경애의 마음 덕에 피해자는 큰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나는 소설 내내 경애의 단단함이 좋았다한 번 마음 먹으면 주저하지 않는 경애의 소신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경애도 정말 멋있는 인물이었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큰 인상을 남겼던 건 상수였다처음에 상수 이야기를 읽었을 땐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고 집 구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염탐하는 변태 오타쿠인 줄 알았다얼굴이름도 모르는 온라인 상의 관계라도 내밀한 감정까지 내보일 정도로 믿고 따르던 '언니'가 상수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받고 뒤돌아 설 회원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그런데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세심한 상수의 마음 씀씀이가 보였고 상수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침식과 풍화의 과정을 거쳤을 지를 상상하게 됐다특히 심한 상하 관계를 가진 남자라는 성별 속에서 지난하게 이해받지 못했을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상수가 '언니'로 변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얻는 취미를 갖게 된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처음엔 두 사람의 어색하고 서툰 시간을 보고 '참 답답하다싶었다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소설 속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둘이 얼른 모종의 연인관계가 되어라'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낭만주의자이자 세심한 상수와 무뚝뚝한 경애가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비슷한 감정의 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인 '은총'이와 '언니'가 있어서 쉽게 가까워지진 않았다그럼에도 읽는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은총이라는 친구를 매개로 엮여있던 걸 알게 되는 것도상수가 '언니였던 과정이 드러나는 순간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서 소설의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내달렸던 것 같다대범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 거듭 고민하는 상수를 보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하는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일영이조선생창식씨헬레나에일린 등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으로 봤을 때는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했을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도 따뜻한 일이었다자세히 보아야 예쁘고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님의 시가 읽는 내내 떠올랐다작가님이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어루만져 주는 지 느껴졌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소개글을 보았을 때누군가의 죽음으로 엮여진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 너무 무겁진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부채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소설은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내게 밝고 따뜻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그리고 경애와 상수로 인해서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고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도 괜찮다는 용기를 갖게 됐다그게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도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화가 나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는 지 조목 조목 얘기하고아닌 것 같으면 아니라고 말 할 것이다소설 속에서 경애와 상수가 보여준 것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자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을 거쳐간 무수한 영화와 소설을 확인하는 것도 큰 재미였고소설 곳곳에 있는 적절한 은유들을 찾는 것도 흥미로웠다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을 때따뜻함이 필요할 때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을 책이다제목인 '경애의 마음'은 주인공인 경애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님 만의 공경와 애정의 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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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요일 어플에서 인기 있었던 시들을 엮어 나온 시집이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라는 제목은 황인찬 시인의 <무화과 숲>속 한 구 절을 차용한 것이다시집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테마로 나뉘어져 있고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이 실려있다.

 

 

   최근 들어 시집이 조금씩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길지 않아서 읽을 때 부담이 되지 않고 'fast'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감성을 찾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마음을 울릴 수 있는 구절과 배치를 위한 적절한 여백의 조화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 최적화 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그에 접속하면 요즘엔 시와 관련된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도 시를 읽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예전엔 시를 읽어도 시가 가진 의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무료하고 따분하게 느껴지기만 했다그 때까지 내가 접한 시는 고등학교 때 입시를 위해 분석적으로 읽었던 것들 뿐이였다조금씩 나이를 먹고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한계를 자각하면서 나는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제일 먼저 만난 것이 음악이었고 다음이 문학이었다많은 소설과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이 나쁘지 않고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 말로 하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을 얻었다다른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면서 거기서 정답을 찾듯나는 나를 거쳐간 많은 책들에서 정답을 찾고 거기서 나온 말들에 내 믿음을 걸었다그러면서 점점 시의 행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가 나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시를 읽을 때 내가 쌓아 온 시간 중 일부를 연결 시킬 수 있어야 한다간결한 문장들과 정제된 단어가 주는 여백은 읽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고 상상하며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기 때문이다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55명이 겪은 제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떠난 연인을 잊기 위해 눈썹을 밀고는이 눈썹이 다시 자라 초승달이 될 때면 모두 잊을 거라 생각했던 장면이나꿈 속으로 떠나면서도 놓을 수 없어 '당신 생각을 켜 둔 채 잠이 들었던장면이나내가 가장 가진 게 없고 가난한 모습일 때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순간이면 남루한 나조차 잊을 수 있던 장면들헤어진 연인을 잊으려 노력하다 문득 나마저 지워가고 있던 걸 깨달은 순간들 모두 가슴 아릿한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가장 와닿은 구절은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 있었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아직까지는 삶의 어려움고독을 노래한 시들이 좋다그래서 최승자 시인님이 좋고 신현림 시인님이 좋다이번 시집은 사랑을 많이 담고 있고 내게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특정 시의 여운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하지만 문학의 재미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었을 때 내가 그간 쌓은 새로운 경험과 어우러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의미를 만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앞으로 생각날 때 마다 거듭거듭 읽히게 되길그 사이에 내가 많은 경험들을 쌓아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감상을 열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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