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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역사 강의 -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ㅣ 새움 총서 1
한형식 지음 / 그린비 / 2010년 7월
평점 :
내가 쓰는 이 글은 책 자체에 대한 평이기도 하고, 백승욱 교수의 서평에 대한 단상이기도 하다.
일단 백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일단 일리있는 지적이란 생각이 든다. 백교수가 지적한 문혁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긴 하지만) 오류가 있다면 응당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당'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도 나도 책을 읽으면서 살짝 그리 느꼈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는 독자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백 교수가 지적한 얼마간 학술적인(물론 그것이 불가결하게 실천과 연결되는 것이긴 하지만) 지적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그와 전혀 다른 뉘앙스의 언론 서평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참세상의 최인기, 오마이뉴스의 임승수의 서평만 봐도 책에 대한 호평일색인데, 이게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백 교수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내용상의 부족함을 살짝 눈감아 준다고 본다면 매우 훌륭한 대학 1-2학년용 세미나 교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책의 서술과 형식이 뛰어나기 때문인데, 부족한 식견이나마 맑스주의 개설서 중에 이렇게 쉽게 쓰여진 책은 사실 잘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맑스주의 입문서로 그나마 대학 저학년 사이에서 많이 읽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도 이만큼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알렉스의 책이 한형식의 책보다 풍부하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형식의 책은 (변호론적 입장이긴 하지만) 맑스주의가 남겨놓은 오류에 대한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지만, 알렉스의 책은 아예 그 문제를 부정한다. 이렇게 무턱대고 '맑스가 짱이에요!'를 외쳐대는 책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먹힐리 없으니 이 책 읽지 말자고 한다해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로 맑스를 해석한 온갖 2차 문헌들 또는 알튀세르가 해석한 맑스에 대한 또다른 2차, 3차 문헌들을 짬뽕해서 보는 방식으로 대체 하곤 했는데, 내 경험에 기초해 평가해보자면 그런 식이라면 아예 안하는게 낫다. 세미나 간사를 맡은 사람조차도 제대로 읽어오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요즘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비난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도 없다. 최소한 입문서를 표방하고 나오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좀 더 세속의 언어에 가깝게 쓰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고 느낀 반가움은 예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를 읽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강신주의 책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알튀세르를 소개하면서 오직 '클리나멘'이라는 소재를 붙들고 '우발성의 유물론'만을 강조하며 에피쿠로스-맑스-니체-들뢰즈 등의 계보에 집어넣는 게 올바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책 후반에 나오는 마음의 수양 등에 관련한 부분은 대체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약간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순도 100%의 책을 찾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던 2006년에 여기저기에 세미나 교재로 써먹어 볼 것을 권하고 다녔다.(내가 하도 광고하고 다녀서 실제로 교재를 바꾼 이들도 있었다) 대개 학회에서 철학 세미나 할 때 많이 읽힌다는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보다는 실용성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맑스주의 세미나 교재로 뭐가 좋겠냐고 묻는다면 (약간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나는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권하겠다. 망설임 속에서도 굳이 이 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자면, 이 책 만큼 맑스주의를 둘러싼 세간의 오해를 성실하게 해명하고 이겨내려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세속의 시선과 눈높이를 맞춰가며 그 시선의 맹목을 깨려는 노력을 이 책 만큼 성실하게 하는 경우가 있던가?
굳이 예를 들자면 이런거다. 예전에 학교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할 때 콜론타이의 <공산주의와 가족>이란 텍스트를 봤다. 그런데 얘들이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는 제껴두고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갑자기 북한이 어쩌니, 김일성이 어쩌니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오로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납시다'라는 것 말고 뭐가 있었나? 이 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논박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 책은 어차피 '맑스주의의 쇄신'을 염두해 두고 쓰여진 책이 아닌 것 같다. 그걸 감안하고 보면 책의 의도는 성공한 거다. 여전히 맑스주의는 현실 비판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 오직 '본연의 맑스로 돌아가자'는 선언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맑스주의는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모습을 변모시켜 왔음을 확인했다는 선에서 보자면 충분히 성공이라는 거다. 사실 이 정도 노력을 했는데도 백 교수의 호된 비판을 받는 것은 저자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백 교수는 그린비 출판사와의 문제 때문에 이 책을 비판한 듯 한데, 내가 볼 땐 출판사 문제만 아니라면 비판의 화살은 원숭이 따위를 끌어들여 맑스를 설명하려는 임승수에게 맞춰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책이 미흡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니 나중에 개정판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 몇 가지 독자로서 부탁만 하고 끝내보련다. 첫째,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시아 공산주의 얘기는 차라리 빼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책의 분량 때문에 소략하는 방식으로 줄인 것 같은데, 좀 억지스럽게 동남아 지역의 공산당 문제를 하나하나 다 설명하려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만 어지럽힌 느낌이다. 그냥 아시아 공산주의 문제 자체가 아직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많고, 더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새움의 다음 세미나에서 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정도만 얘기하고 끝내는게 낫지 않았나 싶다.
둘째, 내가 봐도 제2인터 논쟁에 대한 서술은 진부한 감이 있다. 그 뒷부분의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재밌게 읽긴 했는데,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 읽으면 진부하게 느낄 것 같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이 진부함이라는 게 단지 내용의 진부함이라기 보다는 해석의 진부함이기 때문에 보완이 시급한 것 같다. 제2인터에서 개량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을 소개하는 부분에 할애된 분량에 비해서 충실도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셋째, 책의 뒷날개를 보면 새움총서를 소개하면서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쓸데없고 사실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군데군데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 기초한 해석이 보인다. 맑스주의 자체가 원래 당파적인 입장에 기초한 것이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아니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이 당연한 것을 굳이 중립적인 입장에 선 것 같은 포지션을 취하며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입문서의 형식을 띄면서 갖는 이 책의 장점은 알겠는데, '국정 교과서'를 쓸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이런 노력은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