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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마술 라디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다가 우연치않게 2권이 생겨버린 책.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책 <마술 라디오>. 어느날, 책의 출판사인 '한겨레출판'에서 이상하게 무슨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선정되었다고 말하며 책을 받게되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던 와중에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도 이번달 리뷰도서로 선정되어버렸다. 그래서 책이 2권이 되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에서 주는 도서는 '드림'이라는 도장이 찍혀있고, 보통 출판사에서 개인적으로 보내오는 리뷰도서들도 '드림'이나 '증정'따위의 도장이 찍혀있다. 재판매할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있으나마나한 표식이긴 하지만 남들에게 선물할 때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번 책 <마술 라디오>의 원판, 즉 아무런 도장이 없는(한겨레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을 지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라디오가 특정 주파수를 통해 무언가를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행위라 한다면, 누군가에게 책을 준다는건 일종의 라디오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2권을 받을 때부터, 책 제목처럼 나에겐 <마술 라디오>가 되었다.


책 밑줄긋기

"사실 내 가슴속에는 라디오 한 대가 있을 수도 있어. 그것은 내가 들은 이야기들로 이뤄진 라디오일 거야. 내 가슴속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라디오일 거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쩐지 사람들 가슴속에도 라디오가 한 대씩 들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 라디오는 자신들이 살면서 들은 이야기들, 그런데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 잘했건 아쉽건 자랑스럽든 후회되든 잊히지 않고 반복적으로 혹은 기습적으로 생각나는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겠지."


 책은 참 희한하게도 엄청나게 긴 프롤로그로부터 시작한다. 보통 책들은 프롤로그는 간략하고 임팩트있게, 한마디로 독자가 빠르게 읽어보고 책의 전체를 훑어본다음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중요한 포인트인데, 거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담고있는 이 책의 프롤로그는 그냥 책 자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형식의 파괴'라 부르지만, 내 눈에 비춰진건 출판사 편집자를 설득한 바로 그 자신감이다.


20년 동안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저자는 방송 편집 과정에서 잘려 나간 릴테이프들을 이어 붙인 보물 같은 120분짜리 릴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저런 소리들. 한숨 소리, 콧물 소리, 기침 소리, 이상하게 꼬인 발음, 얼토당토않은 어리석고 진부한 의견들, 애매하고 불확실한 주장들. 우리들의 일상적인 것들과 '다시 할 수 있는'용기를 품었다고 해석된다. 여러가지 정황상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라디오 릴테이프에 '실패'한 표본이 저장되었다는건(릴테이프를 잘라내었다는 사실은) 실패를 밑거름삼아 다시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철학적 요소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이야기한다.


책 밑줄긋기

"나는 그때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나는 삶에서 뭘 느끼고 싶어 할까? 내 마음의 주파수가 있을까? 내가 삶에 짓눌리지 않고 추구하는 어떤 멋이란 게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내 인생의 질문. 그것은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거였어.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인생이 부럽다고 느낀적이 있다. 그것은 라디오 작가로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과 패널로 만나게되고 이야기하게되며, 서로의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했다. 게다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라디오에 출연할 정도급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책 밑줄긋기

"살다 보니 알게 된 건 인생에 쓸데없는 것은 없더라는 거예요. 그걸 모아서 선물을 하려고 맘만 먹으면요. 다 소용이 있어요. 돈 없어도 폼 나게 사는 것 어렵지 않아요. 나는 가구들도 직접 만들어요. 거실 탁자, 아내의 서랍장. 다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내가 만들고 칠한 거예요. 이 거실 탁자에서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먹죠.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줄 아니까 폼 나게 살아요."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자신의 이야기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라디오에서 인생의 정수를 찾는 한 편의 연대기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노점상 할머니들이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우린 고생스러워도 버티니까, 살아내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하지 않았거든.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행복할 줄 아니까 강한 인간이다'라고 말했거든. 사실 이 말은 이후로도 내가 슬픔에 빠져들 때 자주 생각나."


책의 부제목은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반면 오래 걷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와 치열하게 토론하고싶은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차있는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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