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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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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번에도 알게 됐다. 나는 문학의 깊이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사실 많은 작가군을 아는 것도 아니고, 작가를 생각해서 찾아보는 스타일도 아니고, 책을 읽는 스타일 같은 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보니 신간평가단을 해 오면서 만난 책 속 작가들은 낯선 이름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오에 겐자부로>도 마찬가지다. 이땐 내가 주목신간 추천을 건너 뛴 바람에 어떤 종류의 새책들이 있는지도 전혀 살펴보지도 못했던지라, 만남부터 당황스러웠다. 700쪽 되는 책이 두 권이나 배달이 됐으니 말이다. (시스터 캐리도 오에 겐자부로도 첫인상은 '겁나 두껍다'부터 시작했다.) 문학상을 받았다고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고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오에 겐자부로'라는 이름을 모르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알고보니 굉장한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60년동안이나 꾸준하게 글을 써왔고,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일본 내에서 우익들의 지나친 활동에 반대하고, 자신의 개인적 경험들을 녹여낸 작품들을 썼으며, 굉장히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들을 많이 쓰신 분이라고 한다. 깊이라고 이야기해 봤자 나는 그 분의 최신작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어떤 느낌일지는 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철학과 시를 좋아하며 굉장히 관념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쉽게 읽히고 생각하면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점점 곱씹을거리들이 많아지는 소설인 듯 하다. 하지만 이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초기작품부터 모아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관념적이라기보다는 주제가 쉽게 드러나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놀랐던 건 소설들의 주제들보다는 그 소설들이 언제 등장했느냐의 이야기였다. 대학생때 썼던 글이 상을 받게 되면서 대학생때 이미 진로가 결정됐던 오에 겐자부로. 별 뜻 없이 쓴 소설이었다고 본인이 회고했으니, 그렇게 대단한 소설은 아니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읽어봤는데 이게 웬걸. 참신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라는 소설인데 등장인물의 개백정이라는 직업도 그랬고, 대학병원에서 실험용으로 기르던 개를 죽이려고 개백정을 고용했다는 설정도 그랬다. 개 150마리를 죽이는 '기능적인 비열함'도, 개백정이 '독극물을 쓰지 않고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으면서 그 아르바이트에 비관적인 느낌을 쏟아내는 대학원생의 캐릭터도, 그로인한 소설 속 잔인함들도. "우린 개를 죽일 생각이었지. 그런데 도리어 우리 쪽이 살해 당한 셈이네." 같은 이야기들은 꽤나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저자 후기에서 저자는 이 이야기는 본인이 초등학교 3학년때 겪었던 일과 친구가 해 줬던 이야기를 이중구조로 써보고 싶었으나 잘되지 않아서 <사자의 잘난 척>이 나오게 됐다는 얘기도 전했다.

 

한 남자가 거의 50년이라는 세월동안 글을 썼다면 처음과 끝의 글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구분해 놓은 후기 파트는 내게는 어려운 소설들이었다. 글 속에 내포하고 있는 뜻이 있는 것 같은, 한국말을 보고 있는데도 한국말 같지 않은 글이었달까. 예를 들면 이런 것. "개체를 초월한 그리고 개체를 품은 [나의 영혼]의 빛의 군집을 향하여 하 마리의 반딧불이로서 빛을 발하면서 날아간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나의 삶이 있는 거다. 이런 건 벌써 아주 이전부터 [나의 영혼]에 연결되는 자신이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의 것은 [나의 영혼]의 외부 개체로서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나의 영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네 / 그러나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라는 시를 이렇게 해석하는 소설이라니. <불을 두른 새>라는 단편은 기본적으로 두줄의 시구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에세이 형식같기도,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과 자신의 교감이 이야기도 다루기 위해 이 시구를 꺼내든 듯 했다. 이야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의 수준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듯 싶었다. 후기의 소설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초기의 슉슉 잘 읽히며 스피드하던 글들은, 나이가 들고 (역자의 후기로 짐작하건대) 굉장히 많은 책을 읽은 후 바뀌었다. 그리고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조금 힘든 글들이었다.

 

<오에 겐자부로> 단편집은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 80이 넘은, 글솜씨와 명성을 모두 가진 노작가가 이제 그만 글을 그만 쓰고 싶다면서 자신의 문학인생을 정리하면서 만든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자신이 여기 저기에 실었던 원고들을 복사해서 쌓아두고, 그 많은 단편 소설들 속에서 본인이 가장 괜찮다 생각하는 작품들을 추려내서, 다시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쓰는(거의 내용들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지만) 번거로움까지 마다하면서 만든 책. 더불어 그때 그 작품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혹은 어떻게 쓰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간혹 등장한다. 저자의 후기가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인 셈이다. 원래 작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늘 재미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좀 더 소설이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에 나는 이런 후기들을 환영하는데, 여기 그 후기가 있어 이건 이것대로 내 취향저격 포인트.

 

어려운 글들이라 느끼는 것들은 그 후기들로나마 친근하게 다가오니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를 모르는 이들이 처음 보기에 딱 좋은 책 같다. 선입견을 없앨 수도 있고, 작가의 처음과 끝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점차 난도를 올려가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왔다갔다 하며 읽고 싶은 제목들을 골라 읽었던 내가 처음부터 읽어내려갔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그렇다. 더군다나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작가가 직접 선별했다는 것이 의의가 있는 듯 하다. 그 많은 단편들 중 23편만 추려내는 작업이 어디 쉬웠겠는가. 이 책은 '작가 인증 단편'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테니. 최근의 글보다는 초장기의 글들이 다가가기 편한 것을 보니, 나의 소설보는 안목은 아직 멀었나보다..싶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꺼운만큼 책의 할 도리를 다하는 아주 야무진 책 같다, <오에 겐자부로>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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