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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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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자'와 '거주민'에게 와 닿는 것이 다른 법이다. 생각하는 것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한 번 스쳐 지나가야 하는 여행자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간직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 다시 와 볼 지 모르니 한 번 왔을때 무언가라도 남기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서다. 뽕을 빼자!라는 마인드는 차치하더라도.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이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보는 흔한 것들이고, 어떤 마음을 품기엔 생활이 팍팍하다. (왜이렇게 삶은 어디서나 팍팍한 걸까) 그래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차이도 생긴다. 여행자는 볼 수 없는 아주 세세한 것을 거주민은 볼 수 있다는 것. 유명한 곳이 아닌 나만의 장소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즐길 수도, 또 정말 아무도 모르는 괜찮은 곳을 찾을 수도.

 

그래서 여행자의 에세이와 거주민의 에세이 그것 각자의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의 사적인 도시>는 후자이다. 뉴욕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일기처럼 두서없이 다루고 있지만, 흔하게 봐 왔던 여행서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내게는 좀 신선한 책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녀가 블로그에 썼던 일기를 추려서 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서문에 등장한다.) 자귀짚다,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로 서문의 제목을 달았기에 이 말뜻이 뭔가 했더니 짐승을 잡기 위해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뜻이란다.

 

나라는 짐승은 무슨 먹이를 찾아 어떤 발로, 어떻게 걷고 있을까. 어떤 길을 다니고, 어떤 풀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물을 먹으며, 가끔씩은 멀리 보기도 할까. 실제로 원고를 읽어나가니 길고, 암담하고, 눈물나고, 때로 눈앞이 환해지기도 하는 여행이 시작된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 스스로 내 발자국을 쫓는 일은 낯익기도, 낯설기도 했다. 내 안에서 이미 체화된 어떤 사실들이 꿈틀거리며 내 몸안에 자리잡기 시작한 순간이 보였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들도 있었다. 어떤 글을 쓰던 무렵 일어났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마땅히 생각나야 하는 어떤 사실들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찍은 발자국 사이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보였다. 기억이란 상실의 역사이기도 했다. (p. 10)

 

불과 어제의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려 몇 년전의 이야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쓴 일기같은 글 속에서 그때의 자신들을 떠올렸고, 잃어버린 기억들 사이에서 새로운 길도 발견한 듯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니 그 짐승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발자국을 되짚는 일은 그만두고 이제 앞으로 함께 걸어나가고 싶다. (p. 11)

 

 

 

 

이 책은 그녀가 쓴 아주 사적인 뉴욕의 기록이다. 뉴욕에서 사는 사람, 일명 뉴요커로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아주 단편적이지만 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꼈던 뉴욕에 대한 감상을 간접 경험하는 것은 둘째로 하고, 그녀의 생각들이 하나같이 생소한 것들이어서 (그러니까 나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들이어서) 재미있었다. 블로그에 그냥 쓴 글이었고, 그것들을 다듬었어도 여전히 연속성은 없는 글들이지만, 하나하나의 글들이 그 길이에 관계없이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거니와, 글쓰는 방식이나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호감으로 다가와서다.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흔적 위에 다시 쓴" 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이다. 메모아르memoir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쓴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문서- 팰림프세스트와 메모아르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이야기를 했던 글이다. 여기서 메모아르에 내가 꽂힌 것이다.

 

기억은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시간을 거쳐 구성된 세계이다. 선택하고, 삭제하고, 지워지고, 다시 프레임하고, 지워졌던 것이 결국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억의 구성 과정은 썼다 지우고 다시 쓰는 고대 문서의 형태와 닮았다. (p. 93)

 

고어 비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메모아르까지 넘어간 것인데, 팰림프세스트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문서인데다가 기억과 연관지어 이야기하니까 재미있었다.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이야기들은 내가 겪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각자만의 사적인 도시가 있듯이, 작가의 사적인 도시는 뉴욕이었다. 이 책으로 뉴욕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아주 사적인 이 기록이 뉴욕을 조금이나마 친근하게 느끼게 해 준 것만은 사실인 듯 하다. 아주 먼 나라가 아닌 굉장히 가깝게 느껴지게 된 느낌.

 

그녀의 기록을 보니 내 인생도 기록하면 <나의 사적인 서울> 정도의 퀄리티가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냥 재미도 없고 늘 살아왔던 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테니까. 글쎄- 가장 사적인 것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생각한다는 그녀의 글은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읽기 더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뉴욕이 특별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 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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