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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심하게 아파본 적이 없다. 환절기때마다 가벼운 감기는 달고 살았을지언정,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큰 교통사고 혹은 수술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다리가 부러지거나 해서 깁스를 한 적도 없다. 유리에 베인 적도, 불에 데인 적도,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입원한 적도 없는 평탄한 삶이없다. 이럴 수 있던 건 엄마가 소녀였던 시절에 다리에 큰 화상을 입은 적이 있어 크면서는 늘 내게 '안전제일' '조심조심'을 상기시켜서인 것 같다. (제일 속상한 건 정작 나한테 조심조심을 상기시키는 엄마는 여기저기 잘 아프다는 일이지만.) 병은 불시에 닥쳐오는 거라지만, 내겐 아직 그런 불시에 닥쳐온 병도 없었다. 이런 내게 파킨슨 병에 걸린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라..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조금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아주 살짝 아파본 적도 없는 내가, 저자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일테니까.
잘못된 길이라면 아예 내딛고 싶지 않은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번 실패를 경험한 그녀가 많이 지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 결정을 미룬 채 고민을 더 해 봐야 시간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게 옳은 선택이든 아니든 이제는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 그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가서 경험을 해 봐야 자신과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p 6)
프롤로그에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에게 상담을 받던 환자에게 해 줬던 이야야기다. 잘 읽어보면 무언가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책 속에는 비단 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꽤 많은 것을 품는 지혜들도 엿볼 수 있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니 참 당황스러웠다. 책을 읽기 전에 가늠하기로는 이 책은 병을 이겨내는 저자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예의 자신은 이만큼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는 같잖은 위로의 책 말이다.
실제로 책은 그녀가 겪었던 파킨슨 병을 앓으며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 책은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 사이의 선을 그어 놓고 '내가 이만큼 아팠다'라는 것을 내세우듯 이야기하며 희망을 주려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이 책은, 안 아픈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상황들을 겪으면서 얻은,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그 깨달음은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였고, 간간히 정신과 의사였던 시절에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생각했던 이야기들과 현재를 엮어가며 설명해 주기도 해서 다가오는 느낌이 기존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아, 한 발짝이구나.'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p 24)
물론 아프면서 느꼈던 생각들은 누구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얻는 깨달음도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p 33)'의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이의 생각은 이미 충분히 다른 관점이 아닐까. 고통이 지나가고 아픔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언젠가부터 희망이 되었다는 저자의 생각이 말이다.
왜 신입을 뽑지 않느냐고 물으면 언제 키워서 사람 만드느냐고 되묻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앞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하니까 신입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초보가 찬밥 신세밖에 안 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초보의 서툶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p 69)
물론 책은 저자가 병과 싸우면서 얻은 이야기만을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면서 느끼고 겪었던 일들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고(충고를 하지 않는 까닭,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방법) 4장 같은 경우는 아들과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고, 마지막 5장 같은 경우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제목 옆에 붙어 있는 파킨슨 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은 아마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절대 깨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이 책에 호감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굳이 그런 부제를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자신있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라. 잠시 멈추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함은 줄어들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 148)
오히려 난 지금이 좋다.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진 나 자신이 좋고,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웬만한 일들은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게 되어 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 또한 세월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p 250)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든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팁이 될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도 많기 때문이다. 인생의 선배가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삶의 비밀'이라는 뒷표지에 적힌 단어가 나를 붙잡는다. 이 책은 '삶의 비밀'이라는 단어가 참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의 생각과 마음들은 모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니 말이다.
저자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것이 재미있다 말한다. 버텨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저자는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텨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녀가 지내온 삶의 길 속에서 얻은 이야기들이 내게 얼만큼의 양분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 속에 그녀의 삶 속에 좋은 기운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