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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말투와는 상관없이 난 이 책을 다 읽고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광고 카피였던가, 아니면 어느 기업의 캐치 프레이즈였던가. 굉장히 낯익은 문장이면서도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문장인 것 같아서 적어봤다. (적고 나니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라디오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무릇 나와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라디오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 혹은 라디오에 출연했던 사람들과 관련된 일, 라디오 대본에 적었던 사연에 관한 일 등. 살면서 읽어봤던 라디오 관련 서적들은 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이번에도 별다른 생각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또 비슷한 내용인 줄 알았거든. 하지만 내 예상은 프롤로그를 읽어가면서 산산히 부서졌다.

 

프롤로그부터 읽기 힘든 책은 너가 처음이야!라고 정색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도입이었다. <마술 라디오> 이 책은 뭐랄까. 글자 크기가 깨알같아서 책장이 안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용이 어려워서 안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책장이 도통 넘어가지 않는 그런 것. 도대체 프롤로그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걸까 알수 없는 그런 것. 느껴본 적 있는가? 프롤로그가 길기만 해서 읽기 어렵다고 하는 건 아니다. 프롤로그에 펼쳐져 있는 대단히 정신없는 이야기들이 읽는 이를 미궁 속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 포기도 생각했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끝까지는 못 읽겠다ㅡ물론 신간평가단이라는 중책 때문에 읽기 싫었다 하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다 읽었어야 했겠지만 그래도 힘들어!ㅡ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프롤로그 읽기를 포기하고 중간 어느지점쯤을 펼쳐서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 걸. 프롤로그와는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훨씬 읽기가 편했다. 중간중간 작가의 무궁무진한 독서지식도 보였고, 유려한 흐름으로 여기저기 생각의 장소에 들렀다가 나오는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프롤로그는 이렇게 쓴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내가 작가가 아니므로 작가의 의중까지는 알 수 없으니 패스. 나는 중간의 그 글을 잠깐 보고는 프롤로그는 가볍게 점프한 채 첫번째 이야기인 '어부와 사랑'부터 다시 돌아와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서평은 힘들었던 프롤로그는 차치하고 본문들의 쌈박한 이야기들로 넘어간다.

 

 

 

 

<마술 라디오>는 제목이 무색하게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란색 표지에서 보이는 발랄함과는 다르게 무거운 이야기도 들어있고, 되게 별 거 아닌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도ㅡ소소함이라는 것은 등장인물이 이야기 하는 삶이 아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에 관한 소소함이다ㅡ들어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라디오 PD가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엔 사람냄새가 난다. 내가 좋았던 게 이 부분이었다. 사람냄새가 난다는 점. 요즘같이 모든 것들이 빨라지고 바빠지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시대, 누군가를 만나서ㅡ물론 일 때문이었다 할지라도ㅡ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속이 깊던 아니면 농담 따먹기던 어떤 이야기든 같이 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아보였다. 작가의 질문은 때로는 현재 인터뷰이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이들은 그런 질문에도 잘 응답해주었고, 오히려 그런 질문들이 기폭제가 되어 더 좋은 이야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을 '공상을 좋아한다'고 책 속에서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데, 아무래도 인터뷰이와 인터뷰할 때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 속에서 공상을 하다가 엉뚱한 질문을 내놓곤 하는 것 같았다. 꽤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능력.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것은 작가의 이런 능력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원전에 관한 관심이 높다보니 사람들은 '주먹맨' 에피소드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듯 하다. 물론 나도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들 중 하나였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련된 에피소드 '제일 부러운 사람'편이다.

슬픈데도 행복하니까 강한 인간이다.

굉장히 역설적인 말을 내뱉으면서도 웃는 할머니들. 사실 제일 부러운 사람과는 상관없는 초반에 나오는 시장 노점상 할머니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풀어놓은 밑밥정도의 이야기였을테다. 하지만 버섯아저씨나 노점상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와 닿았던 건 현실의 팍팍함을 이겨내는 굳건한 사람들이 바로 내 주위에도 걸어다니다가도 볼 수 있어서였다. 참 별거 아닌 이야기가 맞다. 그저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작가는 그런 사소함을 지나치지 않고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인터뷰어가 가져야 할 좋은 점을 작가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책의 뒷쪽에는 만화가 윤태호의 추천사가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그녀가 앞에 있으면 좋다. 그녀는 나를 이해하려 굳이 애쓰지 않고 지레 공부하지 않고 미리 짐작하지 않는다. 선량하고 호기심 어린 눈빛만 준비해 온다."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문장들이 작가의 느낌을 대신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에필로그 또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이 책 <마술 라디오>는 내게 굉장히 신선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지만, 중간의 14가지 사람냄새를 맡을 땐 따뜻한 느낌이 절로 들었다. 프롤로그만 보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프롤로그를 건너 뛰고 읽기 시작하면 분명, 이 책을 다 읽을 때 쯤에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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