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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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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매력 있는 책이었다.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분야는 과학과 종교, 그리고 미술을 들 수 있겠는데, 이 책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거기다 어느 한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설명하고 있으니, 나와 같은 종교에 대한 문외한들에게는 좋은 책이 아닐까도 싶었다.


책이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바로 종교적인 교리나,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가기보단, 역사적인 고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역사적인 고찰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를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우르라는 도시를 이야기하기 앞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즉 수메르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고 있었다.(우르는 수메르 문명의 도시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전개가 괜찮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책은 적절한 깊이로 수메르 -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의 역사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었으며, 각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했고,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끝나지 않는 현대의 종교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사실 종교에 대한 깊은 지식을 이야기할 줄 알고 긴장하며 책을 봤었는데, 생각보다 편안했으며, 한 편의 역사책을 보는 느낌이라, 부담 없이 세 종교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기원전 신석기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청동기의 수메르 문화를 시작으로 고대와 중세 현대를 적절하게 고찰하며, 인류의 발자취를 종교의 발전에 따라서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이 자세하고 잘 돼있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 역사를 돌아본 것 같았었다. 생각 외로 책은 어렵지 않았으며, 다소 복잡한 인물 구도가 나오긴 했지만, 비종교인이 보기에도 적절한 수준의 설명이라 만족하며 읽었었다.


 야훼의 선택을 받은 민족 유대인들이 신봉하는 '유대교', 유대인에게만 적용됐던 야훼의 축복을 더 많은 대중들에게 확장했던 '기독교' 그리고 유대인 아브라함의 또 다른 자손에게서 파생된 '이슬람교' 그 3개의 종교 역사를 보며 느꼈던 것은, 극단적 교조주의가 만연했을 때에는 항상 분쟁이 뒤따르고 있었다. 유대인에게는 이 교조주의가 지금 팔레스타인에게 그대로 분출되고 있다. 극단적인 시오니즘에 입각하여 팔레스타인을 억압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같은 경우도 그들이 성전이란 이름으로 자행했던, 십자군 전쟁. 그것은 어쨌든 교조주의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슬람 역시도 멀리 볼 필요 없이 최근 핫이슈의 수니파 근본주의 사상에 움직이는 ISIS 사태를 꼽을 수 있겠다. 


종교가 태어나게 된 본질은, 인간의 풍요와 인간의 내적 성숙을 위해 생겨났다. 인간 스스로의 존재의 자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극한의 시련 앞에서의 대처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의 의지. 그리고 나와 타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의 염원. 이 모든 고민들의 결론을 제시한 것이 종교다. 특히나 위의 3가지 종교는 뿌리가 같았다. 역사적인 고찰로 봤을 때, 한 집안에서 태어난 형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나온 세 종교들의 역사를 보면, 항상 그랬다. 극단적 교조주의와 편가르기, 나와 너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순간 종말과 재앙이 왔다. 그리고 그 피의 대가는 엄청났다. 항상 종교적 분쟁이 불러온 희생은 상상을 초월했다. 극단적 종교인들은 그러한 교조주의를 신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런 부분은 대중에게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비치기 쉽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굉장한 이기주의, 베타 주의적 태도라고도 나는 생각했다.   


그럼 사실 또 문제인 것이, 그럼 온건주의적 태도로 종교 간 상호 인정을 하게 될 때 그때는 과연 좋은 세상이 도래할까?라는 물음이 일어날 수 있겠다. 책에서는 그 해답을 역사적인 예시로 들어줬다. 바로 이슬람 - 유대교 - 기독교가 공존했던 이베리아 반도 예로 말이다.


책의 342쪽에서 345쪽,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왕국 우마이야 왕조의 사례다. 책을 조금 인용해보자면,


'그 무렵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 내에서 무슬림과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이 평화롭게 살면서 공통의 관습과 문화를 오랫동안 형성했던 유일한 지역이었다. 3대 종교와 문명이 이곳에서 용광로처럼 융합하면서 암흑기였던 중세 유럽의 한 줄기 빛을 비추었다. 아랍 학자와 유대인 학자들이 코르도바(수도)에서 연구한 그리스 철학, 천문학, 의학, 수학이 기독교 세계(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다양한 문화들이 혼합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을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가 온건한 형태의 이슬람교를 실천했던 결과였다. 그로부터 2세기 동안 문화와 정치발전, 번영과 세력이 절정을 이루었다. '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시대를 제외하고는 세 종교가 뭉치는 일은 없었다. 한 뿌리의 세 종교는 항상 반목했었고, 그렇게 지금도 반목이 진행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책의 불만사항은, 책 제목 <세 종교 이야기>와 같이, 세 종교의 이야기라기보단, 유대인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고, 보조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 이야기를 다룬 느낌이 든다. 역사적인 사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챕터인 '반목과 갈등의 역사'라는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유대인의 관점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 덕에 유대인이 겪었던 아픔과 희생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게 됐고,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 그들의 생활을 총칭)에 대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인종 말살 특히 유대인) 정책과 같은 부분도 잘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독립과 팔레스타인 내전 등 극단적 시오니즘에 입각한 유대인들의 모습도 잘 고찰하고 있다. 다만 이슬람 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뤄줬으면 어떨까 싶었다. 이슬람의 과격단체나 그들의 테러 등을 다루는 것도 사실 기대했는데, 끝까지 시종일관 유대인 중심으로 현대사를 풀어나가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물론 뭐 이 한 권에 그 방대한 현대사들을 다 다룰 순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가 아쉽다.


그래도 유대인에 대한 역사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봤었다. 핍박받은 그들이 왜 역사적으로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지를,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그들이 왜 자꾸 팔레스타인을 핍박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는 했지만, 피는 피를 부른다고, 그들의 피해 의식을 교조주의로 승화하여 정당화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사실 책을 보며, 유대인들에게 배울 점도 많지만, 나쁜 점도 되게 많은 것 같았다. 어쩌면 그렇게 핍박받은 데에는 그들 자신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일단 너와 나를 가른 것은 유대인이 먼저 시작했었다. 책을 읽으며 유대인에게 가장 싫은 부분이, 바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극단적 민족주의 의식이다.


어쩌면 국가를 잃은 유대인들을 살린 것은 그 정신적 우월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자부심을 잠시 거두고, 포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들의 학살과, 현 이스라엘이 자행한 가자 지구 하마스의 수많은 민간인 살상. 사람의 수를 따지지 않고 행위의 본질을 보자면, 두 행위는 똑같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이미 국제 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을 보이지 않게 두둔하고 있다.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 국민들도 이제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독립했을 때, 예루살렘에 이렇게 기록했다.  '용서는 하지만 망각은 또 다른 방랑으로 가는 길이다.' 독일이 유대인에게 자행했던 것을 용서는 하되 잊지 않는다는 취지로 썼다고 한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 문구를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해석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자국이 하는 짓은 과연 팔레스타인에게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어쩌면 팔레스타인에겐 이스라엘 자체가 나치로 인식되는 것처럼 비치진 않을까?


피는 피를 부르고, 보복은 보복을 부를 뿐이다. 그것은 책에서 나온 역사적 사례로도 충분히 증명되며, 역사를 떠나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 종파들은 이런 일을 자행하며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이 국제적 분쟁들의 핵심은 종교적인 부분에 있다. 인간의 평화화 행복을 위해 태어난 종교가, 지금은 인간 현세에서 가장 큰 분쟁거리를 선사하고 있는 이 기막힌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좀 더 온건하고 관용적인 태도로 서로를 틀리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닌, 다르다고 인정하는 자세,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자세가 갖춰질 때, 인류의 화약고인 중동과 이스라엘 지역은 분쟁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비단 중동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단체들도 이러한 부분을 숙고하는 마음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전 세계가 다름을 인정하는 제2의 우마이야 왕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서평을 작성하고 나니 이웃님의 포스팅에서 봤던 한 편의 시가 생각난다. 부디 종교가, 다른 종교에게도, 그리고 궁극적인 인류의 사회에도 이런 모습으로 다가와 주길 기원하며 남겨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사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문정희 시인의 시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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