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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내 대부분의 독서 장소는 지하철. 지하철에 앉아있는 30분 동안 무료해 가방 속에 책을 꼭 가지고 다닌다. 그렇게 한 번 펼치면 지하철만큼 집중이 잘 되는 곳도 없는 듯. 특히나 이번 책은 더더욱 그랬다. 700쪽이라는 엄청난 양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하며 내려야할 정거장을 잊게 만든 소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작가,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작, <케미스트>다.
<트와일라잇>시리즈는 엄청났다. 근 8년 전, 여중생이었던 나에게 친구가 건넨 <트와일라잇>은 그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책 속 벨라와 에드워드에 심취해 잠도 자지 않고 읽었던 뇌리에 깊이 남은 책이었다. 시리즈가 나오고 영화화가 되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는 건 거의 불가능 했고, 개인적으로 산 친구들이 돌려가며 봤지만 그것도 몇 번의 순번을 지나쳐야 읽을 수 있었던 엄청난 소설이었다. 확실히 잘생긴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인간인 벨라의 사랑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책의 흡입력과 묘사는 피닉스라는 곳을 가본 적 없는 피닉스를 머리 속에 그려낼 수 있을만큼 놀라웠다.
그런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작, <케미스트>가 나왔다. 전작,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스파이다. 그것도 여자 스파이.
<케미스트>의 주인공은 여자 스파이, 줄리아나 박사다. 하지만 줄리아나라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이름은 매일, 또는 몇 시간마다 바뀐다. 그녀의 생존을 위해. 매일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개인 인터넷은 절대 이용하지 않으며,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근 도로를 다 돈 후 들어간다. 집 앞에 만들어둔 잠금장치를 푼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면 침대 위에 흐르는 전류 사이로 앰플을 끼워두며 누군가의 침입을 막고 매일 밤 방독면을 체크하며, 욕실에서 잠든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그녀가 매일 이렇게 사는 이유는 정부의 배신으로 쫓기고 있기 때문. 줄리아나 박사는 원래 심문 전문가다. 줄리아나가 만든 특제 약품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고 심문을 한다. 빠른 처리와 정확한 심문. 그녀의 능력은 다른 심문팀에 비해 월등했고, 모든 정보를 독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이유로 정부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된다.
"철칙 하나, 이름과 신분을 수시로 바꿔라. 둘, 다양한 변장술을 활용하라. 셋, 절대로 한곳에 머무르지 마라."
그런 그녀에게 예전 동료가 100만명의 생명을 지키도록 테러리스트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예전 동료이지만 자신을 배신했던 곳에서의 부탁. 이제는 쫓기는 도망자가 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을 배신했던 그 곳에 다시 발길을 들이는 것에 그녀는 스스로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그 곳을 어슬렁 거릴 수 밖에 없다. 100만 명의 생명이 자신의 손 앞에 달려있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그녀의 갈등에 많이 감정이입했던 장면이었다. 스스로 '믿지 마.'라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으로 판단력을 잃지 마. 헛된 희망 때문에 멍청해져선 안 돼.'라는 부분에서 그녀가 얼마나 완벽하게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얼만큼 그녀가 배신 당해 고통받았으며, 그로 인해 의심해야하는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얼마나 큰 복선인지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테러리스트 심문. 하지만 테러리스트라고 지목된 사람은 녹갈색 강아지 눈을 가진 평범한 교사, 대니얼이다. 하지만 한 번도 심문자와 개인적인 연결고리를 만든 적 없는 그녀에게(이제 그녀의 이름은 알렉스다.) 대니얼이 다가온다. 살인자이자 테러리스트인 대니얼. 하지만 알렉스는 대니얼에게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를 심문하면서 또 다른 사실과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소설은 미궁으로 빠진다. 과연 누가, 왜, 이런 짓을. 그리고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태에 알렉스는 지금 자신이 유지하던 생존방식을 완전히 바꾼다. 그런 알렉스를 보면 정말 걸크러쉬...
무엇 하나라도 스포가 될까봐 쉽게 말하기 힘든 소설이다. 하지만 정말 흥미롭다. 700여쪽의 소설이 이렇게 후루룩 읽힌다는 건 역시 대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알렉스가 대니얼을 심문하는 장면. 그녀의 새로운 인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하고 강인하며, 또렷한 느낌. 할리우드 영화가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속도 덕분에 지하철에서 읽으면 타임리프도 가능하다. 첩보, 스파이, 스릴러, 과학, 로맨스가 두루두루 들어간 <케미스트>.
올 여름, 휴가 읽을 책을 고민한다면 <케미스트>를 추천한다.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박진감 넘치고 지루하지 않다. 그 외에도 전작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비교하며 읽는 것도 괜찮은 듯 하다. 대니얼과 에드워드의 매력이 남달라 신선하기도 하며, 알렉스의 걸크러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영화로 어떻게 보여줄지 매력적인 알렉스는 누가 맡을지 아주 궁금하다. 대니얼은 왠지 에디 레드메인이 떠올랐다. 강아지 눈에서 이미 대니얼은 나에게 에디 레드메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