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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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진자부로/ 김원식 옮김,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녹색평론사, 2006.




책 읽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부터 이야기해야 되겟다. 김원식이라는 사람. 처음 듣는 사람이다. 근데, 책 마지막 옮긴이의 글 제일 끝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원자력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최근의 작태, 새만금과 천성산에서 발악하고 있는 개발망령들은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묘혈(지구멸망)을 파고 있다. 내 나이 어느덧 80을 넘었지만 나는 앞날을 똑바로 바라보고, 오늘도 자본주의와 싸우려고 한다."
80을 넘은 노인이다. 근데 그가 '앞날을 똑바로 바라보고 오늘도 자본주의와 싸우겠다고'고 한다.
책 뒷표지 안에 있는 약력을 보았다. "현재 아나키즘에 기반한 반전, 평화운동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나와 있다.
머리 숙인다.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다 본다.

본래 이 책을 쓴 것은 1985년이라고 한다. 그 후 증보를 한 게1998년이라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래서인가 조금은 식상한 내용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1985년에 이미 사태를 예측한 것이다. 그가 이 책을 쓰자마자 체르노빌 사건이 터졌다. 그러니 식상이 아니라 선지적 지식이었던 셈이다.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목 그대로 이것이 이 책의 핵심적 질문이다. 그리고 답은 자연을 인간보다 밑에 놓지 말라는 것이다. 자연 속의 인간이지, 자연 위에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철저하게 상대화하고, 근대의 인간을 인간답게 했다고 여겨진 인간지성의 절대적 보편성(또는 다른 자연에 대한 우위)을 버리자는 것이 에콜로지즘의 본질인 것이다."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산자락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볼 때의 자연, 이것은 시인의 자연이다. 그러나 천체운행을 설명할 때의 자연은 과학자의 자연이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후자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회복이 필요하다.

근데 사실 책이 좀 어려웠다. 집중해서 읽지 않고 들고 다니며 읽어서 그랬는지 잘 들어오지 않은 대목이 많았다. 게다가 책의 처음엔 고대 서양철학의 자연관부터 다뤘다. 그랬으니 내가 좀 헤맸을 수밖에.

특이한 해석을 보였던 게 프로메테우스 신화였다. 그는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다. 그래서인가 지금까지 그 신화에 대한 해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 개척을 상징했다고 말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영웅이고 제우스는 악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다카기 진자부로는 다른 해석을 내린다. 제우스가 그를 벌 주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적 문화와 테크놀로지의 대립이라고 말한다.

이후 자연은 점차 로고스가 되었다. 감성과 직관은 사라지고 오직 단순한 논리만이 중시되었다. 한 예를 보자.
태양이 왜 가라앉는가를 물으면 그것은 지구의 자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답이 아니다. 어떻게를 답했을 뿐, 왜에 대해서는 아직 말한 게 아니다. 왜 자전하는가. 우린 이쯤되면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로고스를 말한다. 아 허약한 로고스여.

소위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서도 말을 한다. 이 말은 본래 부르트란트위원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 사고다. 출구가 없는 임시 방편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대해야 한다. 열려있는 생명 시스템으로서의 지구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근본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구환경문제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지구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환경에 문제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의 결과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문제에 핵심에 서 있다. 인간 중심을 벗어나야 한다. 환경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인간이 잘못을 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환경문제라고 한다니, 그의 지적이 옳다.

특히 이런 자세는 생태주의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경종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태주의가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선 것 같은 이른바 '전투적 생태주의'로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더 자유롭고 더 자연스러운 정신과 신체의 존재양식의 지평일 것이다.

언젠가 이 책을 읽고 평을 썼던 최성각이 인용했던 구절을 여기 다시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우리 대지 위에 사는 사람들 모습과 이 풍경이 허물어지고 죽어가는데,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인간적인 정경, 그 하나하나에서 들녘을 달리는 신(神)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놈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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