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저자는 이런 질문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의 역사를 개괄한다.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 영국에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당대의 신학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모두 8차례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강연한 내용이라 그런지 잘 읽힌다. 수많은 신학자가 언급되지만 주석이 충실하게 돼 있어서 신학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도 읽어나가기 어렵지 않다.
저자가 결론에서 하는 얘기가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서 내가 가지는 질문과 닿아 있어서 앞으로 그의 사상이 어떤 경로로 뻗어갈지 궁금해졌다.
"신학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에게 진정한 상대화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고 신학은 현대 사회의 관용 없는 그릇된 절대주의, 그 반대편에 있는 무절제한 상대주의, 그리고 그 양쪽에 잠복해 있는 자기절대화 모두를 거부하고 비판한다. .... 그리스도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함으로써 신학은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현대인, 특히 대한민국에서 사는 대다수는 초월에 대한 믿음이나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나'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나' 바깥의 세계와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나 바깥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SNS나 미디어를 통해 바깥의 세계를 만나는 것 같이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신과 같은 시각의 무수한 변주를 보면서 "음 나와 같은 생각인 사람이 많군=내가 맞군"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더 크다.
굳이 타인을 만나야 할까? 왜 낯선 세계와 조우해야할까?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일이다. 사전투표 첫날 투표를 하고 온 사람들 중 일부가 "후보자들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어서 엄청 긴장하면서 도장을 찍었다"고 온라인에 올렸다. 후보자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으면 공식투표용지와 다르기 때문에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지적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면서 무효표를 만들기 위한 음모일지 모른다고 흥분했다. 이들은 "바로 몇시간전에 내가 투표하고 왔는데, 분명히 후보자들 이름 사이에 빈틈이 없었다"고 확신하고 맹세했다. 투표조작 우려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사전투표 이틀째에는 그런 보고를 한 사람이 없었고, 최종투표 뒤 개표에서도 그런 표는 나오지 않았다. 후보가 많아서 칸이 좁아졌는데, 신중하게 투표하느라 긴장한 사람들이 착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더 큰 진실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 착각을 주고 받으며 잘못된 확신을 키웠을 뿐이었다.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자폐적 나르시즘에 머무는 미숙한 존재가 되기 십상이다.
초월적인 세계가 있든 없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So I don't care).
내가 보기에는, 어떤 면에서 현대(한국)인은 자신의 세계에서 신의 존재를 지우면서 타인의 존재마저 삭제해버렸다. 나보다 더 큰 어떤 존재-그것이 생명이든 세계이든 에너지든 우주든-앞에 나를 상대화시키는 경험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대로 관용없는 절대주의나 극단적인 상대주의의 오류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다.
그런 길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학이 이 시대에 해야하는 역할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깊이 공감이 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비기독교사회에 사는 우리는 이 지점에 머물지 못하고,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친다.
그 구원의 길이 굳이 기독교의 야훼여야 하는가? 그것이 굳이 예수이어야 하고, 그 세계를 교회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도 우리는 비기독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오늘 한국(과 일본)의 모든 기독교인에게 놓여진 질문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장식으로 걸고 있지 않는 한 기독교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답들을 함께 내어놓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교회에선 정해진 답만을 말하기를 바라고, 신학은 그런 교회에 복무하기만을 요구 받고 있다.
기독교인도 아닌 일반인들이 신학자와 이런 강연회를 가지고 또 그 내용을 책으로 정리해 펴내는 일본사회와 교회의 힘이 조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