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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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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현재의 20대(보다 정확히 20대 중후반)를 3포세대라고 한다. 근래 들어 유독 많아진 20대 청년들의 성향을 지칭하는 말 중 하나인 이 '삼포'세대는 말 그대로 3개를 포기한 세대다. 연애, 결혼, 출산. 한국에서 이 셋 모두를 감당하고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지 보여주는, 다소 해학적이면서도 슬픈 별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을 다루는 소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듯 한데, 아무래도 연령대가 비슷한 탓도 있을 테고, 현재 20대가 경제적으로 워낙 어려운 세대로 지목되면서 여러 세대갈등 양상이 나타나는 탓도 있을 것 같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는 이런 한국 청년이 가지고 있을 법한 고민과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맛깔스럽게 풀어낸 소설이다. 본래 공대를 나와 회사에 다니다가 기자가 되고, 이후 전업작가가 된 장강명의 놀라운 이력이 증명하는 그의 유연성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분명 지금 약 40대의 작가가 쓴 글인데, 꼭 옆에 앉은 친구가 하는 말처럼 친근하고 부드럽다. 더군다나 그 글에서 느껴지는 묘한 여성스러움과, 살아 숨쉬는 듯한 인물이란. 아주 잘 읽히는 글이어서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을 것만 같지만, 기실 그렇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글솜씨가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싫어서』는 제목에 충실하게,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 살 수가 없어서, 한국의 경쟁구도와 그 모든 '참고' 살아야하는 것들을 포용할 수가 없어서 호주로 떠나기로 한 계나의 이야기다.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계나는 나름대로 좋은 학교를 나와 나름대로 대기업에서 일하며, 오래도록 만나온 남자친구까지 있지만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왜냐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질식시킬 것 같은 경쟁 문화나 대화가 허공에 떠도는 것만 같은 인간 관계 등, 그녀가 토해내는 불만에 공감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 계나에게 호주는 꼭 꿈의 나라처럼 보이고, 계나는 호주로 떠난다. 

물론, 그런 호주가 유토피아처럼 서술된다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호주는 당연히 사람사는 곳이지 유토피아가 아니며, 한국만큼이나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종차별 같은 것들. 하지만 계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에 살기를 선택한다. 장강명은 계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여주면서, 계나와 대치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다른 삶의 가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1인칭 화자인 계나가 가진 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탓에 소설이 조금 편협해보이는 것이 단점.) 약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분명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맞는데, 꼭 작품이 한 쪽편에서 서술되어있어서 상대방이 괜히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 (그것을 작가가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특히 그 점이 두드러지는 장면은 계나가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다.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이 시어머니 흉을 보고 IT회사 흉을 보는 친구들을 만난 계나는 친구들이 '본질적'인 문제를 바꿀 용기는 없고 그저 불평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느낀다. 물론, 계나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나의 친구들이 선택한 그 방법(말하자면, 그저 불평하기)은 문제적일지 언정, 분명히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시어머니에게 대놓고 화를 내지 않는 이유가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하게 존재한다. 

작품 후반에서, 계나는 이 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행복한 사람, 저렇게 행복한 사람, 우리는 유형이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지속적으로 발화한다. 호주에서 사는 게 여기서 사는 것 보다 나을껄? 호주에서 웨이트리스 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 일 하는 것보다 나을 껄? 계나는 호주에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을 향해 그런 말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그런 계나의 모습은, 글쎄, 쿨해보이기는 하지만 그것 이상을 느끼기가 어렵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뒷부분에 붙어있는 해설에서 평론가는 그것을 '존재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체 '존재'하는 삶이라는 건 뭔가? 그리고 대다수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나는 친구들에게 '본질'적인 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문제적 상황에 부닺힌 계나 본인의 선택은 호주로의 도피였다. 나는 계나가 무슨 운동가처럼 제도와, 팽배한 사회 분위기와, 고정관념, 혹은 이른바 '꼰대' 들과 싸워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녀는 적어도 본질이 무엇인지는 보여주어야 했다. 계나의 말은 너무 가볍고, 외피만을 건드린다. 이런 저런 투정, 이런 저런 행태, 이런 저런 것들, 그런 것들은 그런데 왜 생기고, 왜 한국은 그것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나아가려고 한단 말인가? 소설은 그 핵심에 대한 발화는 살짝 피해간다. 대신 이런 저런 현상들을 쭉 펼쳐준다. 물론 그것으로도 좋다. 소설이기 때문이다. 계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꽤 즐겁고 경쾌하다. 다만 아쉽다. 묵직하게 물음을 남기는 것 없이 넘어간 페이지들이 기억을 치고 올라올 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계나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 물음과 그녀의 견해가 조금은 궁금했기 때문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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