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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ㅣ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류.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선정도서 소식과 함께 와서 반가웠던 마음도 잠시, 책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사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고, 그 중에서도 일본 본격문학작가라고 할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오에 겐자부로(하루키와 그를 병렬로 배치하면 그가 화를 낼까..?)의 소설은 정말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나는 근 10년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외국작가라는 하루키의 작품 중 당당하게 '읽었다'라고 말할 만한 작품이 없는데, 너무 어릴 적에 읽어서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자 괜히 피하게 되어서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라카미 류'를 알고 있었다.
그를 알게 된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인 삼촌을 통해서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게 삼촌은 당신의 서재를 아낌없이 개방해주셨는데, 그 서재 한 구석에 꽂혀있던 책이 무라카미 류의 '이비사'였다. 지금에야 이비사(=이비자)가 뭔지 알지만, 당시만해도 나는 그 말이 주는 왠지 모르게 하늘하늘한 어감과 하얀 날개가 그려져 있는 책의 표지를 보며, 아 이건 어떤 부드러운 소설일까 생각했더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삼촌 당신께서도 그 책을 무라카미 하루키와 혼동한 탓에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하루키의 책이 아님을 알고 읽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 책을 가져가는 것을 방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라카미 류의 장편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소설은 매우 난폭하다. 사실, 그 텍스트 자체에 어떤 문학성이 깃들어있는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떠나 나는 이비자를 나에게 '레즈비언 섹스' '게이 섹스(강간)' '쓰리썸' '레즈비언 쓰리썸+코카인' 등등의 여러가지 조합이 가능함을 알려준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런 어릴 적 기억 탓에, 아 대체 '55세부터 헬로라이프'라는 이 명랑한 제목을 달고 이 작가가 또 무슨 섹스와 퇴폐의 향연을 선보일까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져서 놀랐다.
소설은 총 5가지 중편, <결혼상담소>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캠핑카> <펫로스> <여행도우미>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 충실하게, 각각은 중/장년 나잇대의 주인공들을 다룬다. 그들은 각각 그들의 나이에 일어날 법한 문제로 곤경에 처해있다. 이를테면 <결혼상담소>의 주인공은 남편과의 황혼이혼 후 결혼정보업체에 다니고,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의 주인공은 퇴직 이후의 삶이 막막한 순간, 노숙자로 전락한 과거의 동창을 만난다. 5가지 작품 모두 주로 '황혼의 사랑'과 '퇴직 이후의 삶'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아무래도 그 두 가지가 중장년층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여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최근 개봉한 <장수상회>도 그렇고 요 근래는 노년층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한국이 초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 자꾸 상기되다보니 그런 노년층의 이야기, 은퇴 이후의 이야기들에 자꾸 마음이 쏠린다.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건 아마도 육체적인 한계와 함께 온 '삶' 이후의 생활 때문 아닐까. <55세부터 헬로라이프>에는 이 지점을 짚어내는 구절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안간힘을 다해 정리한 끝에 돌아온 업무가 빌딩경비나 청소라는 건 슬프지 않아?"
"꿈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캠핑카> 中
꼭 이런 느낌이다. 열심히 뛰라고 해서 열심히 뛰어왔는데, 어떤 결실도 없이 낙하한 것 같은 느낌. 뛰라고 해서 뛰었더니 단물은 다 빨리고 퉤 버려진 느낌.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내가 뛰었던 그 레일에서 뛰고 싶은 거다. 왜 거기서 내가 뛸 수 없지? 물으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이 먼저 말을 해준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중장년층은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지만 과실을 얻지 못한 사람들 같다. 정서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그런 현실과 5-60대 인물상들을 나름대로 '희망'차게 그려낸 글이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 세상에 희망이라는 건 사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5편 모두에서 모든 상황은 부정적이고 암울하지만, 어떤 경험을 통해 인물들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발견한다. 사실 이 지점이 <55세부터 헬로라이프>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사실, 이 중편집을 읽으면서 몇 번 의심을 했더란다. 이게 무라카미 류가 '지금' 쓴 게 맞나? 마지막 작품을 보면 방사능 얘기가 나오니까 최근작은 맞는 것 같은데, 이게 정말 일본의 중견작가가 쓴 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도리어 이 분위기는 한때 붐을 일으켰던 일본 여류작가 몇몇과 굉장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었던 '무라카미 류'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더 이질감이 컸는지는 모를 일이다.
혹은, 이게 일본소설의 풍일지도 모르겠다.(내가 좋아하는 일본소설 작가는 이사카 코타로 정도인데, 그가 워낙 이 풍에서 저 풍으로 날아다니는 데다가, 최근에는 또 읽지 않아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확실히 그가 주제를 있는 그대로 내뱉는다는 점이, 그리고 이를 거의 온전히 주인공의 내면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나는 좀 낯설게 느껴졌다. 그림 속에 숨겨져 있었더라면 조금 더 은근했을 것을 끄집어 내어 보여주자 흥이 식어버린 느낌이 들었달까? 아마도 곧 한국의 미래가 될(그리고 사실 지금 한국의 현재이기도 한) 중장년층 문제를 상당히 온유하게 다루고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가독성도 높았다. 공감되는 부분도 물론 많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직설적이라는 점이 이 소설과 나를 조금 멀어지게 한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라고 뒤에 적혀있던데, 어쩌면 신문연재소설의 특성상 무라카미 류가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조금 굽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소설은 때로 공감과 설득이 아니라 낯설게 함으로써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웠던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